에스겔서 9장: 유다 멸망에 대한 환상

해설:

에스겔의 환상이 계속 이어집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벌할 사람들을 부르시자 여섯 사람이 무기를 들고 나타납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모시 옷을 입고 허리에 먹통을 차고 있었습니다(1-2절). 하나님의 영광이 지성소의 그룹에서 떠올라 성전 문지방으로 이동하더니, 먹통을 찬 사람에게, 성을 돌아다니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역겨운 일에 대해 애통하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하라고 명하십니다(3-4절). 그의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마에 표를 받은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를 죽이라고 하십니다. 노인과 젊은이, 처녀와 어린 아이, 부녀도 예외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그들은 성전 앞에 서 있던 장로들부터 죽이기 시작합니다(5-6절). 주님께서는 성전을 시체로 가득 채우고 성전 바깥으로 나가 계속 죽이라고 하십니다(7절). 

이 때 에스겔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이러다가는 이스라엘에 아무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주님께 하소연을 합니다(8절). 그러자 주님은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의 죄악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들의 행실 대로 갚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 땅을 버렸고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비난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고 쳐다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믿는대로 해 주는 수밖에 없습니다(9-10절). 

에스겔이 주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모시옷을 입고 먹통을 찬 사람이 돌아와서 주님의 명령대로 다 행했다고 보고합니다(11절).

묵상:

유다 백성은 재난을 당하여 “하나님께서 이 땅을 버리셨고, 쳐다 보지도 않으신다”(9절)고 불평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기에 그런 재난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고, 쳐다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망각하고, 율법을 업신 여겼습니다. 당장의 물질적 필요를 채우기 위해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우상 숭배는 윤리적인 타락을 불러 왔고 그것이 심해지자 국력이 쇠했습니다. 

하나님은 잘 살고 있는 유다 백성을 심판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그들의 타락한 욕망에 내버려 두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그들이 당한 재앙은 그들 스스로 자초한 것입니다. 그래 놓고는 그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불행을 당할 때 자주 “하나님이 왜 나에게 이러시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하게 됩니다. 그런 불행이 오래 지속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다거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에게 버림 받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잠잠히 앉아 곰곰이 따져 보면, 많은 경우에 그 불행은 우리가 자초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며 그분의 뜻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불행은 닥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믿음으로 그 불행을 대면하고 통과합니다. 불행을 당하여 그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고 그분을 비난하는 행동은 그 스스로 그 불행을 자초했다는 증거입니다. 

6 responses to “에스겔서 9장: 유다 멸망에 대한 환상”

  1. 너무 늦기전에 자신들의 죄와 잘못으로 당한 고난과 시련을 깨닫고 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끓고 회개 하기를 원합니다. 너무나 답답 하셔서 큰 소리로 외치시는 주님의 경고를 듣고 순종하는 결단을 간구합니다. 지금 당하고 있는 어려움이 사랑의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인도하시는 숨겨진 축복인것을 깨닫고 감내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마에 표를 받은자 즉 십자가의 은혜를 받은자들 보다 은혜를 망각하고 주님을 등진자 들을 위해 이웃과 함께 간절히 기도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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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운이 없어 그렇게 됐다고 불평하며 살아왔던 지난 날들을 회상해 봅니다, 잘못의 윈인을 내 안에서 찾으려하지 않고 남을 탓하고 주님을 원망했던 미숙함을 자백합니다.
    주님의 넓은 자비에 감사하며 주님의 길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도록 성령이 지켜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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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서운 심판을 생각하며 나의 교만과 의심을 회개합니다. 죄를 짖는 중에 저를 쳐서 깨닫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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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나님은 유다 백성이 행한 대로 갚으신다고 하십니다. 인간은 고난이 닥쳐오면 하나님을 원망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고난이 임하면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눈물의 회개로 용서함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시고 또한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는 제가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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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오늘도 엄중한 심판 가운데, 한가지 제 눈에 띄는 것은, 모든 사람을 심판 하시지 않고, 즉 이마에 표를 한 사람들은 제외 한후에 모두를 죽이라고 한 부분입니다. 어둡고 진리가 가려진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의를 지키려는 자들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 이마의 표를 받지 않은 사람이 되기를 기도하며, 주님의 긍휼과 보혈을 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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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에스겔서를 읽으며 참고로 보는 책 “하느님과 사람의 말씀 시리즈 예언서”는 해설서, 입문서 같은 성격의 책입니다. 에스겔서에 대한 설명 중에 글과 책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에스겔이 사용하는 글의 형식이 시가 아니라 산문의 형식이라는 점도 다른 예언서와 차이가 있습니다. 두루마리를 받아먹음으로 예언자와 말씀이 일체라는 의미가 잘 전달됩니다. 에스겔하면 두루마리를 먹는 것과 마른뼈의 환상부터 떠오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루살렘을 심판하는 모습에 옆구리에 글쓰는 도구 (먹통)를 찬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성을 두루 다니면서 성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더러운 일 때문에 한숨 지으며 슬퍼하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시를 해 (4절)” 두는 임무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야 그를 따라 죄를 지은 백성들을 죽이는 일을 맡은 사람들이 누구는 죽이고 누구는 건너 뛸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마에 표시를 하는 것은 유월절의 기원을 연상 시키기도 합니다. 또 이마에 표시를 받는 사람은 예루살렘에 만연한 죄를 보며 한숨짓고 슬퍼한 사람인데 그것은 곧 에스겔이 받아먹은 두루마리에 가득했던 탄식과 아픔과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마음이 속에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어떤가 생각해 봅니다. 사회의 온갖 병폐와 부조리, 의식하지 않고 따지거나 고민하지도 않고 넘어간 잘못의 누적 앞에서 이제라도 마음이 괴롭고 부끄러운지 스스로를 들여다 봅니다. 다 남이 한 일, 높은 사람들이 한 잘못이라고 하면서 나에게는 셀프 면죄를 주는 것은 아닌지. 내 마음이 슬플 때 그건 왜 그런지 물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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