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서 14장: 모순적 신앙

해설:

포로들 가운데 장로들 몇 사람이 에스겔에게 찾아와 주님의 뜻을 묻습니다. 에스겔이 그들의 질문을 가지고 주님께 여쭙자, 주님께서는 그들이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어서 대답을 줄 수 없다고 하십니다(1-3절). 그러면서 주님은, 우상을 섬기면서도 문제가 생겼을 때 예언자를 찾아와 주님의 뜻을 묻는 유다 백성의 행태에 대해 책망하십니다(4-5절). 우상을 섬기면서 예언자를 찾아와 주님의 뜻을 묻는다면 주님께서는 그 사람을 심판할 것이라고 하십니다(6-8절). 만일 그런 상황에서 예언자가 주님의 말씀이라면서 거짓말을 한다면, 질문한 사람과 예언자를 모두 심판 하겠다고 하십니다(9-11절). 

그런 다음 주님은 일단 심판이 시작되면 누구도 그 심판을 막을 수 없다고 경고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겠다고 하실 때 아브라함이 의인 열 명만 있으면 심판을 취소해 달라는 약속을 얻어냈습니다(창 18:16-33). 하지만 유다에 대한 심판은 누구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최고의 의인으로 인정 받는 노아와 다니엘과 욥이 그 중에 있다 해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12-20절).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그 정도로 참혹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심판에서 조차 살아남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의롭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멸망 당한 사람들처럼 악한 사람들이지만 요행으로 살아 남은 것입니다. 신실한 유다 백성은 그들의 소행을 보고 ‘과연 하나님의 심판은 정당하다’고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21-23절).

묵상:

우상을 섬기면서도 예언자를 찾아와 하나님의 뜻을 묻는 유대인 지도자들의 모습은 모순적입니다. 그들은 그것이 모순되는 행동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일상사의 사소한 일들에 대해서는 우상의 도움을 받고 국가적이고 세계적인 거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 된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온 우주를 창조하신 주님은 가장 작은 원자의 운동까지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국가와 세계 역사를 지배 하는 동시에 개인의 사적 문제들도 다스리십니다. 그분의 통치권이 닿지 않는 곳이 없고 벗어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자신과 세상의 모든 영역을 그분의 통치권 아래에 두어야 옳습니다. 

유대인들의 모순적인 행동은 오늘 우리 자신에게도 자주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다급한 일을 만나면 무당이나 점술가를 찾아갑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나 자식이나 쾌락을 신으로 섬기면서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생각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요,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을 속이려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기를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갈 6:7)라고 했습니다. 내가 진실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지, 두려운 마음으로 돌아 봅니다.   

5 responses to “에스겔서 14장: 모순적 신앙”

  1. 통계치를 보면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중 반 이상이 점쟁이한테 점을 친다는 기사를 보며 우리 인간 심성에 오래동안 자리잡고있는 미신을 연상하게 됩니다, 본인이 직접 열켜있는 일에 하나님이 뜻이 무었인지 묵상하며 구하기 보다는 점쟁이를 통해 직접 귀로 듣기를 원하는 어리석음이 인간 본연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하루하루 지혜롭게 주님의 뜻을 구하며 따르는 믿음이 더욱 성숙되기를 기도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에 매이지 않고 깨어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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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나님은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히13:5)”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당신이 보시기에 역겨운 행위를 하는 백성은 반대로 반드시 전쟁, 기근, 전염병 등으로 멸망시키심을 말씀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주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신의 욕망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면서 무당, 점쟁이 등을 찾고 하나님을 뒷전으로 팽개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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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의 헛된 우상(부귀영화, 명예, 권세, 쾌락 그리고 성도들에게 걸림돌)을 쫓아왔습니다. 허락하신 전쟁 자연재해 질병의 원인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꼭 붙잡고 무릎을 끓습니다. 십자가외에는 다른길이 없는것을 고백합니다.허락하신 모든재난을 감내하며 부활의 언약을 소망으로 삼고 이웃과 함께 힘든중에도 감사하며 베풀고사는 삶을 살아내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사랑 선하심 긍휼 이시고 좋으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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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됩니다. 다시 백성의 잘못과 그들이 받을 심판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우상을 만들어 섬기면서 하나님의 뜻을 묻는 자들은 죽음이 답이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백성 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후대를 위한 표본과 속담거리가 되게 만드시겠다고 하십니다. 예언자에게 묻는 이나 예언자나 모두 죄값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서 (5절)라고 하십니다. 죄의 경중을 따지는 것은 의미없어 보이지만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섬기는 죄는 가장 심각한 죄임에 틀림 없습니다. 에스겔서의 환상과 예언은 줄곧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을 따르는 백성의 심판에 관한 것입니다.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죄가 내 안에는 없는지 묵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점을 보러 다니거나 어떤 그림이나 상 앞에서 절을 하거나, 혹은 이상한 종교를 따르거나 하지 않으니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연예인이나 정치인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며 지지하는 일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우상을 숭배하는 죄에 빠진 사람인가? 그 답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판단한다면 그런 것 같은데,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우리의 겉모습 뿐 아니라 생각과 동기까지 꾸짖으십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다소 불편한 이름은 우리의 전존재적인 숭배와 관심을 요구합니다. 이 부분에서 걸립니다. 부부 사이에서 흔하게 보는 갈등 중에 같이 있어도 마음은 떨어져 있는 것 같은 상태, 혹은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하지 않는 상태가 있습니다. ‘건성으로 대한다,’ ‘관심이 없다,’ ‘변한 것 같다’ 등등의 말은 아무렇지 않게 별 생각없이 하는 말이지만 위험 신호로 들어야 합니다. 꼭 부부 사이 아니어도 친밀함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는 다 그렇습니다. 오늘 아침에 ‘마음의 우상’까지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돌아 선 마음의 상태를 잠깐 들여다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간음’이라는 행위를 말하면 ‘음욕’이라는 동기를 지적하셨습니다. ‘살인’이라는 범법행위를 말하면 ‘미움’이라는 내적 죄악을 짚으셨습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전부를 원하십니다. 일부만 떼어 드리는 옹졸하고 치사하고 성의 없는 대접을 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부끄러운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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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하나님의 영광과 통치를 인정하고 그 분의 뜻대로 사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스라엘의 이중적인 행동은 내 삶에서도 드러남을 인정합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을 소흘히 여기지 말고, 그분을 닮아가고 따라가는 하루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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