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우상숭배를 음행에 비유하여 책망하십니다. 예루살렘은 가나안 땅에 있던 도시로서 다윗에 의해 정복될 때까지 이방 도시였습니다. 그 도시는 버려진 아이와 같았습니다(1-5절). 그 아이를 걷어주고 양육하여 아름다운 보석처럼 키운 것은 하나님이셨습니다(6-7절). 주님께서는 그와 언약을 맺으시고 온갖 영화를 그를 높여 주셨습니다. 그는 마침내 왕비와 같이 대접을 받았습니다(8-14절).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을 그토록 아름답고 귀하게 가꾸어 놓으셨는데, 그 도시의 주민은 온갖 우상숭배로 음행을 자행하였습니다. 심지어 자녀들을 우상에게 제물로 바칠 정도였습니다(9-22절). 주님께서는 받은 은혜를 망각하고 우상숭배로 몸을 더럽힌 예루살렘을 심판 하겠다고 하십니다. 예루살렘만이 아니라 그와 음행을 즐기던 나라들도 모두 심판 하겠다고 하십니다(23-43절).
예루살렘의 음행을 보고 사람들은 그의 부모는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이며, 그의 언니는 사마리아이고 그의 동생은 소돔이라고 조롱합니다.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이 언니(사마리아)와 동생(소돔)보다 우상숭배에 있어서 더 심하다고 고발하십니다(44-52절). 예루살렘이 멸망의 재앙 가운데 있을 때 사마리아와 소돔은 회복될 것이며, 그들은 예루살렘을 보고 비웃게 될 것입니다(53-58절).
예루살렘을 심판하심으로 주님은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깨뜨리겠다고 하십니다(59절). 하지만 주님은 영원한 언약을 세우겠다고 하십니다(60절). 영원한 언약이 맺어지는 날, 그들은 누가 주님이신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61-63절).
묵상:
예루살렘에 대한 주님의 고발은 유대인들이라면 눈 감고 귀를 틀어 막았을 것입니다. 이 고발에 사용된 표현들은 19금을 훌쩍 넘어서는 것들입니다. 게다가 주님은, 예루살렘이 사마리아와 소돔보다 더 타락했다고 하십니다.
예루살렘 주민들은 130년 전에 앗시리아에게 멸망 당한 사마리아에 대해 영적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마리아는 멸망하고 예루살렘은 아직 든든한 이유는 그들의 의로움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아브라함 시대부터 지옥행 도시의 상징으로 불렸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사마리아와 소돔을 예루살렘의 자매라고 부르십니다. 그들이 더럽다고 여기며 멀리했던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이 그들의 조상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그들의 영적 자만심에는 참을 수 없는 망발이었습니다.
아마도 악행의 정도와 우상숭배의 정도에 있어서 예루살렘이 사마리아나 소돔보다 더 심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이렇게 심하게 고발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거룩한 도시로서의 위상 때문입니다. 정치인과 사업가와 성직자가 동일한 죄를 범했을 때 성직자가 제일 비난을 받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삶으로 성별된 사람이 그 자리를 벗어날 때 더 심한 질책과 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이렇게 심하게 고발하시는 이유는 그 도시를 눈동자처럼 아끼셨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은 모두 거룩한 삶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그렇게 살겠다고 서약하고 헌신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죄를 범할 때 그 죄는 더 심하게 악취를 풍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름에 어울리게 살게 되기를 두렵고 떨림으로 기도 드립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