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애가’를 부릅니다(1절). ‘애가’는 장례식에서 한 사람이 고인에 대한 애통한 마음을 표현하여 부르는 노래를 가리킵니다. 주님께서는 유다가 이미 패망한 것으로 전제하고 애가를 부르게 하십니다.
첫번째 애가에서 에스겔은 암사자의 새끼 사자들에 대해 노래합니다. 암사자는 다윗 왕가를 상징합니다. 그가 낳은 새끼 사자 하나가 성장하더니 폭력적인 통치를 행하다가 이집트에 잡혀갑니다(2-4절). 이 사자는 여호아하스 왕을 가리킵니다. 그는 느고 왕에게 사로잡혀 이집트에 끌려가 그곳에서 사망합니다(왕하 23:34). 암사자는 다른 새끼를 키웁니다. 여호아하스 대신 왕으로 세움 받은 시드기야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 사자도 함부로 폭행을 자행하다가 바빌로니아에 잡혀 갑니다(5-9절). 시드기야는 느부갓네살에게 눈이 뽑히고 사슬에 매어 바빌로니아에 잡혀가 그곳에서 죽습니다.
두번째 애가에서 에스겔은 다시 포도나무를 비유로 삼습니다. “물가에 심은 포도나무”(10절)는 유다 지파를 상징하고 “그 가지 가운데 가장 센 가지”(11절)는 다윗 왕가를 상징합니다. 그 포도나무를 말라 죽게 한 “동풍”(12절)은 바빌로니아의 공격을 의미합니다. 다윗 왕가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가물고 메마른 땅”(13절) 즉 바빌로니아에 유배 당합니다. 그를 마지막으로 그 포도나무(다윗왕권)는 죽어 버립니다(14절).
묵상:
두 가지의 비유를 사용한 이 애가는 유다의 마지막 왕들의 어리석은 통치 행위에 대해 애석함을 토로합니다. 여호아하스 왕은 폭력적인 통치로 악명을 떨쳤고, 시드기야 왕은 외교적인 오판으로 멸망을 자초했습니다. 그들은 나라의 운명이 기울어져 가는 것을 보면서도 예언자들의 말에 귀 기우리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야망과 술책을 따랐습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아니라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키우는 것에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백성을 섬기는 도구가 아니라 억압하고 착취하는 도구라고 여겼습니다. 그로 인해 결국 나라의 운명이 돌이킬 수 없도록 기울었고 그들 자신도 참담한 종말을 맞았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신에게 맡겨진 권력을 섬김의 도구로 여기는 지도자들은 찾기 어렵습니다. 권력의 맛에 탐닉하여 그 권력을 통해 사적 욕망을 만족시키는 일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권력을 사유화 하고 오용한 사람들의 종말이 어떠한지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증명 되었음에도 그들은 역사의 교훈을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인간의 죄성은 구제 불능입니다. 그런 점에서 죽음은 인간의 죄성에 대한 ‘신의 한수’입니다. 사유화 된 권력이 영구화 되면 그 악도 극대화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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