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서 19장: 유다 멸망에 대한 애가 

해설: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애가’를 부릅니다(1절). ‘애가’는 장례식에서 한 사람이 고인에 대한 애통한 마음을 표현하여 부르는 노래를 가리킵니다. 주님께서는 유다가 이미 패망한 것으로 전제하고 애가를 부르게 하십니다.

첫번째 애가에서 에스겔은 암사자의 새끼 사자들에 대해 노래합니다. 암사자는 다윗 왕가를 상징합니다. 그가 낳은 새끼 사자 하나가 성장하더니 폭력적인 통치를 행하다가 이집트에 잡혀갑니다(2-4절). 이 사자는 여호아하스 왕을 가리킵니다. 그는 느고 왕에게 사로잡혀 이집트에 끌려가 그곳에서 사망합니다(왕하 23:34). 암사자는 다른 새끼를 키웁니다. 여호아하스 대신 왕으로 세움 받은 시드기야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 사자도 함부로 폭행을 자행하다가 바빌로니아에 잡혀 갑니다(5-9절). 시드기야는 느부갓네살에게 눈이 뽑히고 사슬에 매어 바빌로니아에 잡혀가 그곳에서 죽습니다.   

두번째 애가에서 에스겔은 다시 포도나무를 비유로 삼습니다. “물가에 심은 포도나무”(10절)는 유다 지파를 상징하고 “그 가지 가운데 가장 센 가지”(11절)는 다윗 왕가를 상징합니다. 그 포도나무를 말라 죽게 한 “동풍”(12절)은 바빌로니아의 공격을 의미합니다. 다윗 왕가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가물고 메마른 땅”(13절) 즉 바빌로니아에 유배 당합니다. 그를 마지막으로 그 포도나무(다윗왕권)는 죽어 버립니다(14절).

묵상:

두 가지의 비유를 사용한 이 애가는 유다의 마지막 왕들의 어리석은 통치 행위에 대해 애석함을 토로합니다. 여호아하스 왕은 폭력적인 통치로 악명을 떨쳤고, 시드기야 왕은 외교적인 오판으로 멸망을 자초했습니다. 그들은 나라의 운명이 기울어져 가는 것을 보면서도 예언자들의 말에 귀 기우리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야망과 술책을 따랐습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아니라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키우는 것에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백성을 섬기는 도구가 아니라 억압하고 착취하는 도구라고 여겼습니다. 그로 인해 결국 나라의 운명이 돌이킬 수 없도록 기울었고 그들 자신도 참담한 종말을 맞았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신에게 맡겨진 권력을 섬김의 도구로 여기는 지도자들은 찾기 어렵습니다. 권력의 맛에 탐닉하여 그 권력을 통해 사적 욕망을 만족시키는 일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권력을 사유화 하고 오용한 사람들의 종말이 어떠한지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증명 되었음에도 그들은 역사의 교훈을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인간의 죄성은 구제 불능입니다. 그런 점에서 죽음은 인간의 죄성에 대한 ‘신의 한수’입니다. 사유화 된 권력이 영구화 되면 그 악도 극대화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4 responses to “에스겔서 19장: 유다 멸망에 대한 애가 ”

  1. 너무나 초라하고 연약하고 구제불능의 존재인것을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은총에 감사를 드립니다. 함께 하시겠다는 그 엄청난 축복을 꼭 붙잡고 살기를 원합니다. 험난한 세상에서 주님의 언약에 소망을 두며 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함께 사랑과 은혜의 임마누엘 하나님을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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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가정이나 기관, 국가의 통치자 들은 부족하고 연약할 때는 자신과 맡겨진 사명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과 눈을 가지고 있어 속해 있는 구성원들을 잘 살피고 보호 본능이 발동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풍부 하고 부족함이 없는 상황에서 사탄이 교묘하게 찾아와 재물과 권력 만을 바라보게 하고 고통에 신음하는 구성원들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온갖 역겨운 생활을 영위함으로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집니다. 주님! 오늘도 자만하고 교만하지 않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여 그 말씀대로 살아 내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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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죽음을 “신의 한 수”라고 부른 목사님의 표현을 조금 더 확장해보고 싶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압니다. 사람 뿐 아니라 생명을 지닌 생명체는 다 소멸한다는 것을 압니다. 죽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언제 죽을 지를 모른다는 것이 우리를 바르게 살게 하기도, 그르게 살게 하기도 합니다. 죽음을 기억하는 것, 언젠가 끝이 온다는 것을 아는 것은 삶의 꿀 – 성공과 승리, 부와 명예 -속에 들어 있는 독을 중화 시키는 유일한 처방인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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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늘 말씀과 영감으로 우리를 이끄시는 주님. 올바른 길을 알아차렸으면서도 귀찮고 손해나니까 모르는척 외면하기도 하고, 나의 눈과 귀가 세상에 너무 팔려있다보니 전혀 당신이 주시는 경고를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저희의 마음을 깨워주소서. 저희를 영적으로 민감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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