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서 20장: 불신의 유산

해설:

유다 백성이 포로로 잡혀간 지 7년째 되는 해(주전 591년) 5월 10일에 유다의 장로 몇 사람이 에스겔에게 찾아와 주님의 뜻을 묻습니다(1절).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답해 줄 말이 없다고 하신 다음(2-3절), 그들의 조상들이 저지른 죄악에 대해 열거합니다. 

먼저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불쌍히 여기셔서 이집트에서 구해 내셨다는 사실을 언급하십니다(4-6절). 주님은 그들을 구원 하시면서 우상숭배를 하지 말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살라고 하셨는데,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우상을 섬겼습니다(7-9절). 그들이 광야에서 유랑할 때 주님은 율법을 전해 주셨는데, 그들은 그것을 무시하고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10-13절). 그 일로 주님은 그들을 심판 하셨지만 아주 멸하지는 않으셨습니다(14-26절). 그들의 우상숭배는 약속의 땅에 정착한 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과 유다는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27-31절).

여러 민족 사이에 흩어져 살게 된 이스라엘 백성은 그곳에서 마음 놓고 우상숭배를 하려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곳에서도 그들을 심판 하시겠고, 그들을 여러 나라에서 불러내실 때에도 그들의 죄를 심판하실 것입니다(32-35절). 그들은 잡혀 갔던 곳에서 돌아 오겠지만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지는 못할 것입니다(36-38절). 

그러나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영영 버리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 민족 사이에서 당신의 백성을 구해내어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실 것이며, 그 산에서 주님을 예배할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이스라엘 백성은 비로소 주님이 누구이신 줄 알게 될 것이며,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마음 아파할 것입니다(39-43절). 주님께서 이렇게 자비를 베푸신 이유는 당신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함입니다(44절). 

이렇게 말씀하신 후, 주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얼굴을 남쪽으로 돌려 심판을 예언하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심판은 마치 숲을 불사르는 들불처럼 유다의 모든 땅에 임할 것입니다(45-49절).

묵상: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과 배신의 역사를 읽으면서 인간의 죄성이 얼마나 고질적인지를 느낍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만, 정말 인간의 죄성은 고쳐지지 않습니다. 기회만 주어지면 죄악으로 기우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동시에 이스라엘의 역사는 인간의 죄성보다 더 질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줍니다. 인간의 죄악을 그대로 두고 보지 못하여 때로 심판의 팔을 드시지만 완전히 끝장 내지는 못하십니다. 심판에서 살아 남은 자들을 다시 불러 모아 새롭게 시작하게 하십니다. 그 모습이 사고뭉치의 자녀로 인해 잠 못 이루며 뒤척이는 부모의 모습을 생각나게 합니다.

인간의 죄성은 구제불능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꺾지는 못합니다. 징계와 심판도 그분의 뜨거운 사랑의 이면입니다. 사랑하기에 때로 성화를 부리시고, 사랑하기에 때로 징계 하시며, 사랑하기에 심판도 하십니다. 우리가 희망을 가질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죄성으로 속속들이 오염된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 결국 십자가를 통해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5 responses to “에스겔서 20장: 불신의 유산”

  1. 허락하신 심판도 주님의 사랑을 깨닫는 귀한 말씀입니다. 끝까지 심판 하시지 않고 십자가의 거룩한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현혹하는 이방인들의 우상에 너머지지 않는 결단을 원합니다. 십자가를 꼭 붙잡고 친족 들에게 향하신 구원의소망을 인고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모든 시련과 고난과 박해를 덮고도 남는 풍성한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하며 참으며 기다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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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나님은 당신이 택한 백성은 절대로 버리지 않으심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신 하나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환경과 재물, 권력에 따라 드러나는 죄 성은 언제든지 하나님을 반역합니다. 그러나 수많은 예언자들을 통해서 당신의 마음을 전하시면서 으름장으로 경고하십니다. 그러나 당신의 자녀인 고로, 당신의 이름이 더럽혀질까 봐 사랑(예수님)으로 보류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를 생각하니 눈물이 납니다. 주님! 사랑의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 사랑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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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내 인생의 희망이며 소망인 하나님의 변함없고 놀라운 사랑을 붙잡고 오늘도 겸손히 살아갑니다. 부질업고 소망없는 나의 죄성 가운데 놀라우신 하나님의 사랑을 허락해주심에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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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이스라엘의 죄는 하나님을 멀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20장에 “지키기만 하면 살 수 있는 규례와 율법”이라는 표현이 세 번 나옵니다. 규례와 율법은 여호와와 백성 사이의 징표였습니다. 징표와 언약은 대상이 있음을 전제합니다. 설령 혼자 하는 약속, 혼자 갖는 징표라 해도 그때의 혼자는 약속과 징표를 나누어 가진 자기 자신으로서 이미 상대화된 자아입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음으로 당신의 명예를 백성에게 위임했습니다. 신뢰가 계약의 바탕이 되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신뢰할 수 없는 상대와는 약속을 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죄는 계약을 어긴 것입니다. 지키겠다고 약속해놓고 지키지 않았습니다. 계약을 위반한 백성을 벌 주는 것은 하나님의 권리이기도 합니다. 마땅히 벌을 내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보자 불쌍한 마음이 생겨 (17절)” 멸망시키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말씀이 계속 되면서 백성이 여호와를 알게 되면 과거의 모든 악한 일들을 기억하고 스스로를 미워하게 될 것 (43절)이라고 하십니다. 마음에 회개가 일어나면 나 자신의 잘못과 추함이 드러납니다.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르는 나의 무수한 죄가 나를 부끄럽게 하고 비참하게 만듭니다. 나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게 되는 때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때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과 내겐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동시적으로 일어납니다. 눈물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나는 한없이 추하고 하나님은 한없이 아름다우시기에, 나는 한없이 낮고 하나님은 한없이 높으시기에 눈물 없이는 감당할 수 없는 분리와 대비가 마음 속에 일어납니다. 그래서 죄를 ‘씻는다’고 하는 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피가 눈물이 되어 나를 또 씻어 주시는 것인지 모릅니다. 지키기만 하면 살 수 있는 율법은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지켜 죽지 않는 길을 사랑을 해서 생명을 늘리는 일로 바꾸어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길은 긍정의 길 via positiva 입니다. 에스겔을 통해 주님은 오늘도 새 언약의 미래를 보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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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죄하는 것이 단지 생명력이 없는 더러운 물질이라고만 과소평가했으나 다시 생각해보면 바이러스처럼 분명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생각을 합니다. 생명력이 없는 더러운 먼지나 페인트는 아무리 지우기 힘들어도 언젠가 완전히 지울수 있겠지만, 죄라는 것은 내 몸과 영혼에 늘 기생하며 내가 약해지면 그 기세를 늘려 나를 하나님에게서 멀리 하게 합니다. 인간이 원죄를 가졌기에 죄없이 살수 없고 그러므로 이 죄를 힘쓰지 못하게 누르고 압도하기 위해 기도와 성경 찬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몸이 게으르고 교만하려할때 의연하게 자리에서 일어서서 주님을 위해 나의 힘을 부지런히 키우려는 마음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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