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유다 백성이 포로로 잡혀간 지 7년째 되는 해(주전 591년) 5월 10일에 유다의 장로 몇 사람이 에스겔에게 찾아와 주님의 뜻을 묻습니다(1절).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답해 줄 말이 없다고 하신 다음(2-3절), 그들의 조상들이 저지른 죄악에 대해 열거합니다.
먼저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불쌍히 여기셔서 이집트에서 구해 내셨다는 사실을 언급하십니다(4-6절). 주님은 그들을 구원 하시면서 우상숭배를 하지 말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살라고 하셨는데,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우상을 섬겼습니다(7-9절). 그들이 광야에서 유랑할 때 주님은 율법을 전해 주셨는데, 그들은 그것을 무시하고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10-13절). 그 일로 주님은 그들을 심판 하셨지만 아주 멸하지는 않으셨습니다(14-26절). 그들의 우상숭배는 약속의 땅에 정착한 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과 유다는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27-31절).
여러 민족 사이에 흩어져 살게 된 이스라엘 백성은 그곳에서 마음 놓고 우상숭배를 하려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곳에서도 그들을 심판 하시겠고, 그들을 여러 나라에서 불러내실 때에도 그들의 죄를 심판하실 것입니다(32-35절). 그들은 잡혀 갔던 곳에서 돌아 오겠지만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지는 못할 것입니다(36-38절).
그러나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영영 버리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 민족 사이에서 당신의 백성을 구해내어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실 것이며, 그 산에서 주님을 예배할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이스라엘 백성은 비로소 주님이 누구이신 줄 알게 될 것이며,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마음 아파할 것입니다(39-43절). 주님께서 이렇게 자비를 베푸신 이유는 당신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함입니다(44절).
이렇게 말씀하신 후, 주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얼굴을 남쪽으로 돌려 심판을 예언하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심판은 마치 숲을 불사르는 들불처럼 유다의 모든 땅에 임할 것입니다(45-49절).
묵상: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과 배신의 역사를 읽으면서 인간의 죄성이 얼마나 고질적인지를 느낍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만, 정말 인간의 죄성은 고쳐지지 않습니다. 기회만 주어지면 죄악으로 기우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동시에 이스라엘의 역사는 인간의 죄성보다 더 질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줍니다. 인간의 죄악을 그대로 두고 보지 못하여 때로 심판의 팔을 드시지만 완전히 끝장 내지는 못하십니다. 심판에서 살아 남은 자들을 다시 불러 모아 새롭게 시작하게 하십니다. 그 모습이 사고뭉치의 자녀로 인해 잠 못 이루며 뒤척이는 부모의 모습을 생각나게 합니다.
인간의 죄성은 구제불능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꺾지는 못합니다. 징계와 심판도 그분의 뜨거운 사랑의 이면입니다. 사랑하기에 때로 성화를 부리시고, 사랑하기에 때로 징계 하시며, 사랑하기에 심판도 하십니다. 우리가 희망을 가질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죄성으로 속속들이 오염된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 결국 십자가를 통해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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