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서 21장: 칼의 노래

해설:

주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예루살렘을 향하여 ‘칼의 노래’를 부르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심판의 칼을 빼셔서 이스라엘의 남쪽에서 북쪽까지, 의인과 악인을 모두 죽이실 것입니다(1-5절). 주님은 에스겔에게, 백성이 보는 앞에서 허리가 끊어지는 듯이 괴로워하며 슬피 탄식하다가, 사람들이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닥쳐올 심판 때문이라고 답하라고 하십니다(6-7절). 주님께서는 칼을 날카롭게 벼리셔서 살육하는 사람에게 넘겨 주어 당신의 백성을 칠 것입니다(8-17절). 그 사람은 바빌로니아의 왕 느부갓네살입니다. 그는 먼저 예루살렘을 침략하여 유다 백성을 살육하고(18-27절), 이어서 랍바로 가서 암몬 백성을 칠 것입니다(28-32절). 느부갓네살은 제 스스로 행하는 일로 생각하겠지만, 실은 하나님께서 그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묵상:

어떤 불행이든, 그것을 당하는 이유를 알면 견디기에 수월합니다. 어떤 불행을 당했는데, 왜 그 일을 당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면, 심적 고통은 심해집니다. 그런 불행을 당할만한 잘못이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고통은 더욱 증폭됩니다. 

느부갓네살은 유다 백성에게 상상할 수 없는 재앙을 안겨 주었습니다. 유다 백성은 그만한 불행을 당할만한 이유가 자신들에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그들은 재앙을 만나 혼비백산 하고 갈팡질팡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언자들이 나와 그들이 공연히 재앙을 만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에 대해 징계를 받는 것이라고 깨우쳐 주었습니다. 칼을 잡고 살육하는 것은 느부갓네살이지만, 그에게 칼을 잡게 한 것은 하나님이시라고 말합니다. 유다 백성은 예언자들의 말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예언자들이 고난 당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받아 들였고 잠잠히 그 징계를 받아 들였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잠잠히 그 심판을 당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남겨 두셔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4 responses to “에스겔서 21장: 칼의 노래”

  1. 인류 역사의 모든것을 주관하시고 사랑의 채찍으로 인도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슬플때, 기쁠때, 어려울때, 편안할때 언제나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선한목자 예수 그리스도를 항상 깨닫기를 원합니다. 비록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닥쳐 왔어도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깨닫고 딴길로 벗어나지 않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함께 진리와 생명의 길을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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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징계하실 것을 에스겔에게 백성에게 말하라고 했으나 그들은 믿지 않고 자신이 왜 징계를 받아야만 하는 지를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그들은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멸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주님!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 닥칠 때 먼저 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바라보고 잘못을 발견하고 눈물의 회개 기도를 드리는 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아멘 주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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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허리가 끊어질 듯이 크게 슬퍼하는 에스겔의 예언 행동을 보고 백성들이 묻습니다. 어찌하여 그리 슬퍼하느냐고 묻습니다. 들려오는 소문 즉 반드시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소문 때문에 이토록 고통스럽다고 답합니다. 또 에스겔이 예언합니다. “칼이다, 칼이다, 날이 선 날카로운 칼이다 (9절).”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마태 10:34)고 하신 예수님의 칼도 떠오릅니다. 같은 칼일까…오늘 본문에 머무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에스겔의 상황으로 돌아갑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이라는 소문/예감/판단은 백성 사이에 이미 돌고 있었을 것입니다. 나라가 멸망하면 개인은 자동적으로 같이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나라가 없으면 개인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원칙이고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앞에서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자녀의 이가 시다”는 속담을 묵상한 것과 연결해 묵상하면, 살아남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겨납니다. 심판의 칼을 피하고 살아 남는 백성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을 하나씩, 각각 살피시고 가꾸시는 분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 후에도 살아 남은 백성은 여전히 예루살렘의 백성일까요. 예언서에서 말하는 살아남은 백성, 남겨진 자들은 옛 이스라엘을 보여주는 사람들일까요 아니면 도래할, 새로 올 나라로 들어가는 사람들일까요. 에스겔의 예언은 우리에게도 유효한 예언처럼 들립니다. 팬데믹으로 세상이 뒤집어 지면서 소문과 이론이 난무하고, 상상하지 않았던 일들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교회 또한 많이 달라졌습니다. 교회에 나가지 않는, 그러나 스스로는 크리스찬이라고 생각하는 이른바 ‘가나안 (안나가) 성도’가 숫자로는 최대 ‘교단’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심판은 지금 우리 시대 곳곳에 산적한 숙제의 알레고리로도 읽힙니다. 몇 년 전 봄에 읽은 Factfulness 책은 통계 자료가 보여주는 우리 세상은 분명 “좋아지고” 있고, 인류는 발전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팬데믹 전에 나온 책이니까 이제 그 주장은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여전히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지만,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사라지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의 칼은 칼을 휘두르는 “사형집행인 (11절)”의 손에 들려 있지만 예수님의 칼은 우리 손에 있습니다. 남에게 휘두르기 전에 내게 먼저 써야 하지는 않는지, 폭력의 무기가 되기 전에 ‘살림’에 필요한 도구로 먼저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묵상합니다. 주여,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내 마음을 정결케 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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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긍휼의 마음으로 위로하고 함께 기도해주길 원합니다. 고통받는 이들을 보아도 아픔이 생기지 않으면 내가 주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디 당신의 마음을 느끼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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