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서 22장: 심판의 이유

해설:

주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예루살렘을 심판할 준비를 하라고 하십니다. 그 준비란 그들이 얼마나 역겨운 일을 저질렀는지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살인죄를 저질렀고 우상숭배로 자신을 더럽혔습니다. 그 정도가 너무 심하여 심판을 불러 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방 민족들이 그들을 조롱할 것입니다(1-5절). 그들의 지도자들은 주어진 권력으로 악행을 일삼았고, 사회적 약자들을 억압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성전에서 함부로 행동하고 안식일을 더럽혔습니다(6-8절). 중상, 음행, 간음, 근친상간, 청부살인, 고리대금 같은 죄악들이 일상이 되었습니다(9-12절). 주님께서는 그 모든 죄악에 대해 징계하실 것입니다. 그 때에야 그들은 누가 주님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13-16절). 

이어서 주님은 에스겔에게 용광로를 비유로 삼아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마치 용광로로 금속을 제련할 때 남는 쇠찌꺼기 같다고 하십니다. 주님은 그 모든 금속 찌꺼기를 용광로에 넣고 당신의 노여움을 불로 삼아 녹여 버릴 것이라고 하십니다(17-22절). 

주님은 계속하여 종교 지도자들의 타락상을 고발하십니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아니라 음모를 꾸미고 악을 퍼뜨리는 자들입니다(24-25절). 제사장들은 율법을 위반하고 성물을 함부로 대하며 안식일을 더럽히고 있습니다(26절). 지도자들은 부정한 이득에 눈 멀어 있습니다(27절). 그런데도 예언자들은 그들의 악행을 두둔해 줍니다(28절). 지도자들이 이렇다 보니, 백성은 모두 죄악 속에서 이전투구를 일삼습니다(29절). 그들 중에   민족의 운명을 두고 마음 아파하고 할 일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30절). 그러니 심판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남아있지 않습니다(31절).

묵상:

여기서 하나님은 유다 백성의 총체적인 타락에 대해 고발하십니다. 정치 지도자는 자신에게 맡겨진 권력으로 부정한 사적 이익을 도모하고, 율법을 준수해야 할 제사장은 성소에서 율법을 범하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백성을 깨우쳐야 할 예언자들은 스스로 악행을 하면서 지도자들과 백성의 악행을 두둔해 줍니다. 정치 지도력과 영적 지도력이 모두 무너지니 백성의 도덕성도 와해되어 버립니다. 지도자들이 공적 책임을 망각하고 사적 이익에 눈 멀고 보니, 백성은 더 더욱 그렇게 행동합니다. 그로 인해 그들의 삶의 영역 전반에 죄악이 누룩처럼 퍼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우상숭배로, 부부 관계에서는 음행과 간음으로, 사회적 관계에서는 이기적 탐욕과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착취로 이어집니다. 

2천 5백년 전 유다의 상황에 대한 이 고발이 오늘 우리 사회에 대한 고발처럼 들립니다. 우리 사회의 정치 지도자들도 공익이 아니라 사익을 위해 부정을 일삼고, 성직자들에게는 세상에 대한 애끓는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번영의 복음이 강단을 점령하고 있고, 성직자들의 성적 부정과 세습과 재정 비리에 대한 소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보통 시민들도 사적 편리와 이익을 위해 살아갑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라도 이 땅을 지키려고 성벽을 쌓고, 무너진  성벽의 틈에 서서, 내가 이 땅을 멸망시키지 못하게 막는 사람이 있는가 찾아 보았으나, 나는 찾지 못하였다”(30절)는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습니다..     

4 responses to “에스겔서 22장: 심판의 이유”

  1. 오늘 허락하신 말씀은 지금 우리들에게 또한 떠나온 조국과 미국과 온세상에 주시는 엄중한 경고입니다. 가정이 문란 하고 많은 교회와 교인들이 세속적이고 나라가 부패합니다. 주님의 심판이 전쟁과 질병과 자연재해로 시작 된것을 깨닫고 적어도 소수의 교회와 가정과 성도들 이라도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십자가의 사람들이 되어 세상을 심판에서 구할수있는 의인이 되도록 이웃과 함께 간절히 기도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Like

  2. 오늘 말씀을 읽고 떠오른 단어는 ‘업보’입니다. 기독교보다 불교에서 잘 쓰는 단어입니다. 유다의 멸망이 자기가 한 짓 때문에 받는 심판이니 업보입니다. 한 두 주 전에 어느 손님이 자기 앞에 계산하는 모녀의 요거트 값을 자기가 내겠다고 했습니다. 그 손님은 타인에게 친절을 행하고 “paying forward” 싶은 날이라서 그런다며 기꺼운 마음으로 계산했습니다. 모녀는 감사해 하며 자기들도 누군가에게 그 친절을 갚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며칠 뒤엔 한 손님에게 거스름돈을 드리는데 지폐가 서로 붙어 있어서 한 장이 더 갔습니다. 손님과 내가 동시에 거스름돈이 많이 넘어간 것을 발견했습니다. 손님은 웃으면서 내가 말하지 않았어도 자기는 돈이 더 왔다며 당연히 내게 돌려 주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어서 돌려 주었더니 금새 천 달러짜리 로또 복권이 맞았다고, 그게 카마 karma 아니겠냐고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습니다. 정직한 행동은 당연하고 마땅한 것인데 양심적으로 행동 했다고 우주가 상까지 주는 것이 업보의 원칙인지 동의할 수 없었지만 유쾌하게 말하는 손님에게 나도 very good! thank you! 대답했습니다. “심은대로 거둔다”는 것은 이 땅의 법칙입니다. 기본 원칙이고 근본 질서입니다. 유다 백성은 심은 것과 다른 것을 내어놓고 있습니다. 죄는 화살이 과녁을 빗나간 것이라고 말합니다. 과녁이 아닌 데로 날아가는 화살은 죄입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까닭은 심은대로 나지 않는 상태, 과녁을 맞추지 않는 화살 같은 백성 때문입니다. 기대한 열매 대신 엉뚱한 것이 나오면 내다 버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 유다 백성은 악을 심고도 선을 거두려 하는 어리석은 모습도 보여줍니다. 서로의 삶을 파괴하는 악행을 계속 하면서 살아남기를 바라니 어리석습니다. 거룩함에서 멀리 떠났으면서도 예루살렘 성 안에 있으니 안전하다고 믿습니다. “백성이 저지른 모든 악한 짓에 따라 갚아주겠다 (31절)”는 마지막 구절은 업보를 떠올리게 합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좋은 것을 심어 좋은 것을 내는 삶을 허락하소서.

    Like

  3. 유다백성의 총체적인 타락이 현 시대를 이야기 하는 것 같습니다. “어쩜..이럴 수 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아닌, 그 현실들이 여러가지로 나타나고 있으니 한탄할 뿐입니다. 정죄가 아닌, 하나님의 긍휼을 구합니다. 마땅히 정죄를 할 수 없는 제 모습도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는 하루입니다.

    Like

  4.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신 백성을 징계할 사유가 지금 현실의 상황과 다름이 없습니다. 특히 이단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미혹하며,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무너트리고 인간의 멸종을 유발하는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나라가 입법화하는 것과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종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음행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위로 만인의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팬데믹으로 인하여 가나안(안나가)교인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주님! 하나님을 먼저 믿는 백성들이 진정한 크리스천이 해야 할 기본적 자세로 말씀의 거울을 통하여 자신을 비춰 봄을 통하여 주님의 도를 지키는 자들이 되어 본을 보이게 하옵소서. 아멘. 주님! 사랑합니다.

    Like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