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서 26장: 두로에 대한 심판

해설:

두로는 이스라엘의 북쪽 해안에 가까운 섬에 세워진 도시국가였습니다. 그 도시는 해양 무역의 통로로서 고대로부터 매우 번창했습니다. 이 예언은 유다 백성이 포로로 잡혀온 지 십일년 되는 해에 에스겔에게 임합니다(1절). 

두로의 주민들은 예루살렘이 바빌로니아에게 멸망 당하는 것을 보고는 자신들이 그로 인해 이득을 보게 될 것이라며 기뻐합니다(2절). 하지만 주님은 그들도 같은 운명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3-6절). 그 심판은 느부갓네살을 통해 이루어질 것입니다(7절). 그는 예루살렘을 공략한 동일한 방법으로 두로를 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두로는 그물이나 말리는 맨바위처럼 될 것입니다(8-14절). 

두로가 멸망하는 것을 보면서 해변 국가들의 왕들은 두려워 떨며 두로를 위해 애가를 부를 것입니다. 모두가 선망했던 영화로운 도시 두로가 무력하게 패망하니, 주변에 살던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15-18절). 그 때가 되면 번성 했던 두로는 황폐하게 될 것이며, 두로의 주민들을 바다속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19-21절).

묵상: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에워싼 네 민족에 대한 심판의 예언에 더하여 두로에 대한 심판의 예언을 주십니다. 두로의 주민들은 경제적 경쟁 관계에 있던 예루살렘이 느부갓네살에 의해 함락되는 것을 보면서 그곳으로 몰리던 부가 두로로 유입되어 자신들이 더욱 부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두로는 바빌로니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육지로부터 떨어져 있기 때문에 바빌로니아의 침략으로부터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이 당한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두로는 느부갓네살에 의해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상상도 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날 것이며, 주변에 있던 도시의 왕들은 두로가 멸망 당하는 것을 보면서 놀랄 것입니다. 

상상할 수 없었던 혹은 상상하지 않았던 일을 당하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은 우리를 가두고 있던 사고의 틀을 깨뜨리고 좁아져 있던 시야를 넓혀 줌으로써 잊고 있던 진실을 깨닫게 해 줍니다. 상상하지 못했던 일을 겪는 것은 위장된 축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겪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을 겪지 않고는 깨달을 수 없는 진리가 있고 닿을 수 없는 경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두로의 멸망은 두로의 주민들에게나 이웃 민족들에게 인간의 영화가 얼마나 덧없는 것이며 역사의 실제 주인이 누구이신지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심판을 당한 이들에게는 뼈아픈 일이었지만, 그것을 보고 두려워 떠는 이들에게는 영적 깨우침을 받은 축복의 사건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물질적/육체적 손실을 통해 정신적/영적 진리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물리적/육체적 손실을 보상하고도 남습니다. 그래서 시험이나 고난이 올 때 인내하며 영적 도약을 기대합니다.   

5 responses to “에스겔서 26장: 두로에 대한 심판”

  1. 해양무역으로 부귀영화를 누리고 예루살렘의 멸망을 통해 기뻐하며 주님을 등지고 재물을 더 욕심내는 두로의 심판은 구원의 주님을 저희들에게 알리려는 경고입니다. 두 주인을 함께 섬길수 없는것을 깨닫고 하나님만 구세주로 섬기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함께 재물만 쫓는 세상에 은혜의 주님을 알리는 오늘이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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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인생을 살면서 교만하는 것 만큼 어리석은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모든 권세와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 앞에 교만하는 것은 인생을 파멸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누를 범하지 않기 원합니다. 인간의 짧은 경험과 생각으로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계획앞에 교만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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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두로는 예루살렘의 몰락을 보며 혹시라도 자기들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하는 헛된 희망을 가졌었는데, 우리도 평소에 그런 얄팍한 계산과 안일한 미래 예측을 하고 산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이스라엘 주변 나라들의 이름을 한반도 주변국 이름들로 바꿔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 속엔 늘 우리/저들, 우리/적, 우리/이방인의 분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in-group/out-group (요새 말로 인싸/아싸겠지요) 이라고도 하는 친소의 경계는 인류의 생존전략이지만 그 안에 혐오와 배척의 씨앗을 품고 있어 공멸로 이어지는 위험한 사고이기도 합니다. 내 몫에 만족하지 않는 심리는 승자독식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바라기까지 하는 괴물로 바뀌기도 합니다. 실제로 가진 것이 없는 타인, 코너로 몰린 이방인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못 보고 지나칩니다. 오늘 본문은 경제에 관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죄와 벌의 주제는 계속 됩니다. 암몬, 모압, 에돔, 블레셋과 두로 사람들의 죄를 아무 것도 아닌 척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과 함께 고통과 수치의 달금질을 받아야 합니다. 죄의 댓가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에스겔서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유다와 이웃 국가의 공멸은 지리 (공간)에 기반을 두었지만 이기심과 배신의 시대 (시간)가 불러온 재앙이라는 점에서 지금 우리의 자리 (시공)를 묵상하게 만듭니다. 팬데믹이 시작한 뒤 처음으로 왕래와 모임이 자유로운 여름을 보냈습니다. 코비드 위험도가 내려가나 봅니다. 말 그대로 새로운 계절을 맞는 느낌입니다. 과거로 다시 가는 법은 없습니다. 혹 마음으론 원할지라도 과거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돌아가서도 안 됩니다. 에스겔서에서 읽는 부끄럽고 참담한 심판의 장면들이 지나면 하나님의 새 말씀이 들려올 줄로 믿습니다. “사람들이 너를 찾더라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21절)”이라는 구절 속의 ‘너’는 죄악에 불탄 가지, 이기심과 욕심에 내어준 몸이라고 읽습니다.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새롭게 빚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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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두로는 남의 나라의 멸망을 보고 자신은 이득을 볼 것이라는 망상으로 기뻐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주님! 자신이 지은 죄는 생각하지 않고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극히 이기적인 마음을 가진 사귐의 교회 교우가 있다면 회개하는 역사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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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남의 아픔을 보면 위로의 기도를 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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