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서 28장: 두로 왕의 교만

해설:

주님께서는 두로 왕의 교만을 책망하는 말씀을 에스겔에게 주십니다. 그는 두로의 번영과 영광이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고 여기고 스스로를 신으로 생각했습니다. 주님은 그가 신이 아니라 사람일 뿐이라고 하십니다(1-5절). 주님은 가장 잔인한 외국 사람을 도구로 삼아 그의 교만을 징계 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그는 자신이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6-10절). 

주님은 에스겔에게 두로 왕이 심판 받을 것을 상정하고 이미 그 일이 일어난 것처럼 애가를 부르게 하십니다. 에스겔은 창세기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두로 왕이 받은 축복을 묘사합니다(11-15절).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폭력과 사기를 서슴지 않았고, 자신의 영화에 취하여 스스로를 신으로 생각할 정도로 교만해졌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를 심판하셨고, 그의 영화를 부러워하던 뭇 민족이 그 모습을 보고 놀랍니다(16-19절). 

시돈은 두로와 함께 페니키아의 번성한 도시였습니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항구 도시로서의 유사성 때문에 두로와 시돈은 자주 함께 불립니다. 주님은 두로와 마찬가지로 시돈을 심판하실 것입니다(20-23절). 

이렇게 이스라엘을 괴롭게 해 온 주변 민족들이 심판을 받으면 이스라엘은 비로소 주님이 누구이신 줄 알게 될 것입니다(24절). 그렇게 모든 민족이 심판을 받고 나면 주님은 흩어진 이스라엘 족속을 다시 불러 모아 약속의 땅에서 살게 해 주실 것입니다(25-26절). 

묵상:

교만은 자신의 본분을 잊고 자신의 분수를 넘어서는 일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 먹은 이유는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는 뱀의 충동(창 3:5)에 휘둘린 까닭입니다. 피조물로서의 자신의 본분을 잊고 분수를 넘어서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전통에서 교만은 ‘죽음에 이르는 일곱 대죄'(the seven deadly sins) 중 첫 번째로 꼽혔습니다. 교만은 모든 죄의 뿌리인 동시에 가장 무거운 죄입니다. 

교만은 우리 마음 속에 숨어 있다가 조건이 조성되면 고개를 들고 나와 마음을 지배하고 삶 전체를 지배합니다. 그 조건이란 우리가 늘 추구하고 소망하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건강해지는 것, 물질적으로 넉넉해지는 것, 상황적으로 승승장구 하는 것, 큰 권력을 가지는 것, 유명해지는 것, 높임 받는 것 혹은 사람들로부터 인정 받는 것–이런 상황에 처하면 숨 죽이고 있던 교만심이 고개를 들고 일어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고전 10:12)라고 권고합니다. 

잘 되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일이지만, 그 안에 위험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경계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두로 왕에 대한 심판의 말씀은 우리에게 그 불편한 진실을 기억하게 합니다.    

5 responses to “에스겔서 28장: 두로 왕의 교만”

  1. 부귀영화로 교만하지않고 너무나 굶주려 도둑질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허락하신 모든 상황에서 함께하시는 주님과 깊고 긴밀한 사귐을 갇고 감사하는 일상이 되기를 원합니다. 질병과 전쟁과 자연재해 가운데서도 십자가를 통해 은혜와 구원을 이웃과 더불어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코로나 심판을 거두워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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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완전한 것의 모델 (12절)”이었던 두로 (두로 왕)가 에덴 동산에서 추방 당합니다. 두로의 아름다움과 영광이 자신의 지혜를 썩게 만들었다는 17절은 솔로몬을 연상 시킵니다. 이 장에 대한 해설 중에는 사탄을 두고 한 말씀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도 그 안에 하나님이 안 계시니 헛것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자기가 들어가 ‘나는 신이다’ ‘내가 신처럼 지혜롭다’ 착각하니 결과는 끔찍한 종말입니다. 두로의 죄를 말씀하면서 폭력 (16절)과 부정직한 무역 (18절)을 지적하십니다. 개인의 죄 (내가 신이다)가 공동체적 악행으로 이어지고 결국 공동체의 멸망을 가져온 것을 봅니다. 시돈의 심판은 간략하게 묘사되었습니다. 전염병으로 쓰러지고 칼에 맞아 넘어집니다. 질병과 폭력이 난무하고 그로 인해 목숨을 잃는 우리의 삶이 시돈의 상황을 닮았습니다. 두로와 시돈의 멸망 뒤에 여호와는 에스겔에게 흩어져 살던 이스라엘을 모아들이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자기 땅 곧 야곱의 땅에서 평안히 살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부분을 현대 이스라엘 국가와 연결 시켜 이해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습니다. 성서 구절들이 현대 국가로서 이스라엘의 주권과 그 영향력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의문이 듭니다. 교만의 죄, 하나님의 자리를 탐한 죄의 값은 괴로움입니다. 괴로움의 끝은 멸망이요 영원한 추방 같지만 하나님은 이 때 마음을 두드리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깨닫는다면 괴로움의 끝은 새로운 시작이 될 지도 모릅니다. 교만을 늘 경계하며 살게 하소서. 내 마음에 파수꾼을 세워 교만의 침입을 살피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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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교만은 크고 높은 자리에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만 생기는 것이 아닐것입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저같은 작디 작은 사람에게도 교만의 유혹이 늘 있으니까요. 그래서 교만이 무서운 겁니다. 사탄은 매우 영리하지요. 자신감과 자긍심, 존재감, 성취감, 승리의정신, 긍정적인 사고, 행복감으로 포장해서 내가 교만에 빠져있어도 교만에 빠지지 아닌것처럼, 마치 좋은 것인양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기도에 묵상하고 성경읽기를 힘쓰면 사탄이 던져놓은 교만의 덫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진정한 자신감과 행복은 하나님과 있을때만 오는것이고, 내가 다 이루었다는 헛된 생각의 교만과 다릅니다. 내가 교만에 빠지는 순간이 있을지라도 주님께서 내가 빠져나오게 해주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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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교만은 패망의 원인이라는 말이 생각 납니다. 최초의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 때문에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모든 인류가 죄 가운데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인간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교만이 오늘날에는 더욱 인간을 미혹합니다. 왜냐하면 부족한 것 없이 풍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가장 기초적인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로 성령님을 간절히 구하여 그분과 동행함으로 때마다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므로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를 멈추지 않도록 성령님께서 도와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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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교만하지 않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매 순간마다 내가 어떤 존재이며,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임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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