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서 29장: 이집트에 대한 심판

해설:

29장부터 32장까지는 이집트에 대한 예언입니다.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는 이집트의 도움을 받아 바빌로니아로부터 독립하려 했습니다. 그 의도를 알아차린 느부갓네살은 주전 587년에 유다를 완전히 멸망시켜 버립니다. 

1절부터 16절까지는 유다 백성이 포로로 잡혀간 지 10년 되던 해(주전 587년)에 에스겔에게 주신 말씀입니다(1절). 그것은 이집트에 대한 심판의 말씀인데(2절), 주님은 이집트의 왕 바로를 나일 강에 사는 거대한 악어에 비유하십니다(3절). 그 악어는 나일 강을 자신의 소유라고 교만 떨지만, 주님께서는 그의 코를 꿰어 나일 강에서 끌어내어 사막에 던지겠다고 하십니다. 나일 강에 사는 모든 물고기도 같은 운명을 당할 것입니다(3-5절). 그런 일이 일어나면 이집트 사람들은 비로소 누가 주님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의지하려 하지만, 이집트는 의지한 사람까지 망하게 하는 갈대 지팡이와 같습니다(6-7절). 

주님께서는 이집트를 심판하여 사십 년 동안 그 땅을 황무지로 만들어 버리고 이집트 사람들을 여러 민족 속에 흩어 살게 하겠다고 하십니다(8-12절). 사십 년이 지나면 흩어졌던 이집트 사람들을 상 이집트로 돌아가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과거의 영화를 회복하지 못할 것입니다(13-15절). 그 모습을 보고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의지하려 했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16절). 

17절부터 21절까지는 유다 백성이 포로로 잡혀간 지 27년 되던 해(주전 571년)에 에스겔에게 임한 말씀입니다(17절). 느부갓네살이 두로를 치려 했으나 큰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두로 대신 이집트를 느부갓네살에게 넘겨 주겠다고 하십니다. 그것은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심판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하십니다(18-20절). 그 일이 일어나면 에스겔의 입이 열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외칠 수 있게 하겠다고 하십니다(21절).

묵상:

지금 대한민국은 반만 년의 역사 상 가장 화려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되었고, 문화적으로 온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경제 규모에 있어서 세계 Top 30 안에 든 나라는 지난 백 년 동안 변함이 없었다고 합니다. 순위는 바뀌었어도 30개국의 이름은 동일했습니다. 그런데 30위 바깥에 있던 나라 중 오직 한 나라가 30위 안에 진입 했고 10위까지 치고 올라갔습니다.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정말 ‘국뽕'(애국심을 의미하는 속어)이 차오르는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상들 앞에서 자랑스러움을 느낍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집트를 생각해 봅니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 였고 한 때 세상을 호령하던 나라가 지금은 약소국 중 하나로 쪼그라들어 있습니다. 지금 이집트 국민들은 과거의 영화를 생각하며 어떤 느낌을 가질지 궁금합니다. 아마도 우리와는 정반대의 감정을 가질 것입니다. 

에스겔에게 주신 예언을 읽으며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며 전율을 느낍니다. 주님의 말씀 그대로 이집트는 바빌로니아에게 패망한 이후로 “나라들 가운데서 가장 힘없는 나라”(15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2천 5백 년 동안 이집트는 회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그 때에야 비로소 그들이, 내가 주 하나님인 줄 알 것이다”(16절)라는 말씀 앞에 엎드리게 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역사의 진정한 주인이십니다.     

6 responses to “에스겔서 29장: 이집트에 대한 심판”

  1. 떠나온 조국을 사랑하셔서 축복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항상 영적으로 깨어있어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리고 감사하며 어려운 나라들에 축복의 통로가 되는 조국과 미국이 되도록 기도합니다. 세상의 모든것과 인류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옳게알고 주님 닮아가고 말씀을 순복 하기를 원합니다. 가정과 사회와 나라의 흥망 성쇄는 사랑과 은혜의 주님을 깊이 알고 순종하는 믿음이 결정한다는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십자가의 소망을 어지럽고 살기 힘든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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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300년 전 투탕칼맨의 묘를 통해 발견 된 그 화려했던 이집트가 알랙산더에의해 짓 밟히고 그후 로마에 의해 정복되어 국권이 없이 수백년을 지나 다가 아랍에의해 다시 정복되고 오스만 제국의 통치하에 있다 영국의 식민지를 통해 해방된 이집트의 기구한 운명을 생각해보며 함나님의 섭리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상상을 늘 초월하시는 주님의 역사앞에 무릅을 꿀습니다, 주님의 섭리앞에 겸손히 내 자신을 내려놓게 됩니다,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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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화려하고 강했던 이집트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약한 나라로 전락했지만 아직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의 지금 상황은 그 옛날 이집트와 비교할 만큼 문화와 경제가 부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조국을 바라보실 때 그 옛날 이집트와 같은 나라가 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시고 심판의 칼을 들지 염려됩니다. 무속인이 대통령 부인을 조종하고 그로 인해 나라의 창고를 거덜 나게 하고, 대통령은 술취한 채로 출근하는 모습과 일부 교회에서는 역겨운 일로 목회자가 옥살이를 하고 교회가 갈라지는 현상을 보니 더욱 염려가 됩니다. 주님! 조국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하나님에 대한 첫사랑이 회복되게 하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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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의지하려 하지만, 그것은 마치 갈대 지팡이에 의지하는 노인과 같습니다. 즉, 갈대지팡이도 망가지지만, 그것을 의지하던 사람도 다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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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구약 성서를 읽으면 이집트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이 생깁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이집트와 구약 성서의 이집트를 동일한 나라로 여기기 어려울만큼 현대 이집트는 명예와 영광의 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에서 이집트가 갖는 의미와 역할은 단순하게 억압자, 죄의 굴레, 옛 방식, 여호와의 반대자 등의 부정적인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성서 속에서 이집트는 요셉의 이집트와 모세가 나올 때가 다르고, 에레미야 등 예언자들이 일하던 때 가리킨 이집트가 있고 요셉과 마리아가 헤롯을 피해 어린 예수를 데리고 들어가 살던 이집트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태어나는 과정에서 이집트는 모태가 되기도 했고, 이스라엘의 이웃이자 세계적인 수퍼파워로서 세상의 법과 하나님의 법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영원한 걸림돌이 되기도 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 특히 데리다의 유명한 몇 가지 표현 가운데서 더블 바인드 (double bind)는 이분법적 사유 방식을 자연스럽게 택하고 따라 하려 할 때 잠시 멈추어 서게 하는 개념입니다. 필요성과 불가능성이나의 두 축, 혹은 이미 (already)와 도래하는 것 (to-come) 의 두 축을 성서 속의 여기서도 작동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필요성과 불가능성의 예는 번역 (translation/interpretation) 의 예에서 잘 드러납니다. 번역은 언제나 필요하다는 ‘필요성’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완전한 번역이란 언제나 불가능하다는 ‘불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성서읽기, 말씀 해석 등을 생각하면 쉽게 동의할 수 있는 개념입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설교가 또 좋은 예입니다. 청중에겐 설교의 ‘필요성’ 측면이 강조되고, 설교자에겐 ‘불가능성’ 측면이 크게 보일 것입니다. 이집트의 죄악과 심판은 ‘이미’의 세계이면서 동시에 예언의 끝부분이 약속하는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23절, 26절)”가 담고 있는 도래할 세계의 일부도 되는 것을 봅니다. 어쩌면 이집트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선명한 거울인지 모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무수한 자아의 불화와 싸움을 끄집어 내어 보여주는 이집트.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우리의 필요와 불가능성의 이중 굴레 속에 임하는 예수님의 은혜를 기다립니다. 철학을 넘어 신앙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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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좋건 나쁘건 어느상황에서도 미래를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죽을 운명의 모세를 이집트공주를 통해 목숨을 살리시고 양육하시고 결국 이집트에서 동족을 탈출하게 하는 놀라운 기적을 기록하게 하십니다. 얼핏보면 원망과 저주의 대상인 이집트이지만 여기에도 하나님이 주신 역할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요셉을 총리로 세운 이집트가 없었다면 야곱의 가문은 흉년으로 대가 이어지기 어려웠을것이며, 또 이집트에서 그 히브리 민족의 수를 크게 불리기도 하셨습니다. 내가 부당하다고 느끼는 상부의 지시, 혼탁해보이는 정치인과 정부, 불합리한 세상 모두 주님이 더 잘 아십니다. 제가 모든 것 깨닫지 못하지만 모든 상황을 선하게 바꿔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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