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서 31장: 이집트의 교만

해설:

앞의 예언이 임한 지 2개월 정도 지나서 또 다른 예언이 에스겔에게 임합니다(1절). 이집트가 아직 심판 당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님은 과거형으로 말씀하십니다. 그 심판은 이미 일어난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한 때 불멸의 왕국으로 군림 했던 앗시리아에 이집트를 비유하십니다. 앗시리아는 레바논의 백향목과 같았습니다(2-3절). 이집트 역시 앗시리아 처럼 나일 강의 혜택을 입어 큰 나무로 성장했고 뭇 민족이 그 가지와 그 그늘 안에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동산 안에 있는 에덴의 나무들(즉 이스라엘과 유다)도 나일 강에서 뻗어난 나무를 부러워 했습니다(4-9절).

하나님께서 그 나무를 영화롭게 하셨는데, 그 나무는 스스로의 능력으로 그렇게 된 것으로 여기고 교만 해졌습니다(10절). 그래서 주님은 그 나무를 심판하셨습니다. 나무는 베어지고 그 나무에 깃들었던 새들은 모두 도망쳤습니다(11-13절). 그렇게 심판하신 이유는 그 나무가 교만에 머물러 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14절). 그 나무가 심판을 받아 스올(죽음의 세계)로 내려갈 때 그 나무에 의지하고 있던 새와 짐승들이 같이 스올로 내려갈 것입니다(15-18절).

묵상:

두로 왕의 경우에도 교만이 문제였습니다(28장). 두로의 번영과 영광이 그로 하여금 스스로를 신으로 여기게 만들었습니다. 그가 누린 복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이집트 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이 외세의 침입에 대한 염려 없이 번영을 구가하고 영광을 누린 이유는 하나님께서 허락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와 그의 통치 아래에 있던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들의 능력의 결과로 여기고 스스로를 신으로 여기고 그 영광을 영구화 하려 했습니다. 오늘 남겨진 이집트 유적들은 인간의 자아가 최대치로 부풀려지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물입니다. 그 위용과 규모에 감탄하지만, 사실은 인간의 죄성을 보여주는 흉물입니다. 

무력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우리도 때로 우리 자신의 능력 때문에 혹은 우리가 처한 상황 때문에 “이만하면 됐다! 이렇게만 가자!”고 생각하며 우쭐 해집니다. 우리의 본성이 이러하니, 두로와 이집트 같은 번영한 국가를 통치하는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교만에 빠지기가 더욱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로 왕과 이집트 왕의 교만을 두고 뭐라 할 자격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우리도 그런 자리에 앉으면 더 심한 교만에 빠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질적으로는 그들이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복을 누렸지만, 영적으로는 우리가 훨씬 안전한 자리에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 5:3)라고 하셨습니다. 가난한 것, 연약한 것, 무력한 것, 무능한 것이 세상적으로는 불행이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축복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축복은 하나님 안에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   

6 responses to “에스겔서 31장: 이집트의 교만”

  1. 나일강이 없었으면 온 이집트땅은 매마른 사막이 되었을것 입니다. 나일강 으로 인해 기름진 땅을 허락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등지고 교만해진 이집트 심판의 말씀이 지금 모든것이 풍성한 조국과 미국 그리고 유럽 나라들에게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너무 늦기전에 십자가 앞에 무릎을 끓고 회개하는 영적각성을 원합니다. 끝없이 거룩하시고 위대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겸손한 저희들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병들고 굶주리고 죽어가는 궁핍한 나라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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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보는 순간 우리의 상상이 멈추듯 인간의 지혜와 능력이 하늘을 닿을거 같았던 그 화려함도 들의 꽃과 같이 한 순간임을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함을 마음에 품고 주님의 길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늘 겸허한 마음으로 주님의 길을 따라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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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을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는 생각으로 주님을 멀리하고 마음껏 누리는 교만과 역겨운 삶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불러들인 이집트 왕에게도 예외 없이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누릴 때 보시기에 역겨운 삶을 살고 있다면 멸망을 가장한 축복이 될 수 있으며 고난이 닥쳐오고 어려움이 닥쳐올지라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동행하는 삶을 산다면 축복을 가장한 고난이 될 것입니다. 주님!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과 무능함, 무능력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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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교만과 허영심이 가득찬 요즘 제 삶의 모습을 바라보며 회개하며 반성합니다. 여러면에서 안정적이었지만, 동시에 더 큰 욕심과 교만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을 인정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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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문명과 제국이 얼마나 많은지요. 사자의 포효처럼 왕성한 기운을 뽐냈지만 소리도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세월과 함께 사라지는 운명이라 인간이 슬프고 아름다운 존재인지 모릅니다. 영원하다면, 영원히 서 있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것이 아닐 것입니다. 멸망의 길로 치닫는 이집트를 미화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고대 이집트가 남긴 문명의 잔재는 신의 무대에서 때론 신처럼, 때론 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처럼 존재했던 파라오가 신들의 영광과 즐거움을 위해 철저하게 소진시킨 인간의 피와 땀이 만든 기적의 흔적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아름다운 나무 같은 이집트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동산에 있는 어떤 나무와도 비교할 수 없이 크고 튼튼하며 아름다운 나무였는데 높이 자라 그 끝이 구름에 닿자 교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기 눈에 자기가 최고로 보였는데 구름까지 닿았던 나무는 베어져 골짜기로 던져지고 맙니다. 이런 뒤바뀜은 순식간에 일어나기도 하고 몇 십년, 몇 대에 걸쳐 일어나기도 합니다. 자기 성찰을 하는 사람은 이집트의 몰락에서 교훈을 찾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괜찮은 사람’으로 보는 일은 적절한 깊이 지각 depth perception 의 균형이 필요한 일입니다. 사회 공동체에 건설적인 기여를 하며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능력을 갖고 있다는 주관적 자기인식과, 인생은 계속 배우고 성장하며 나누고 다듬어야 하는 진행형이라는 객관적 시선이 동시에 작동해야 넘어지지 않고 잘 걸을 수 있습니다. 우울한 날은 자기가 영 형편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날, 기분 좋은 날은 자기가 꽤 멋진 사람으로 보이는 날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스스로가 부족하게 보여도, 넘쳐 보여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감사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게 꼭 붙들어 두고 싶은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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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저희를 지극히 사랑하심에 겸손하길 원하시는 주님. 말씀으로 저희를 가르치시는 그 사랑에 감사 드리며 당신의 위대ㅣ함에 존경과 찬양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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