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서 40장: 환상 속에서 성전을 보다

해설:

40장부터 48장까지는 에스겔이 본 새 성전에 대한 환상입니다. 이 환상은 포로로 잡혀온 지 이십오 년, 예루살렘이 함락된 지 십사 년, 즉 주전 573년에 에스겔에게 임합니다(1절). 에스겔은 약 20년 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주님의 임재가 떠나가는 환상을 보았습니다(8-11장). 그 예언대로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모두 파괴됩니다. 

그로부터 십사 년 후에 주님은 환상 속에서 에스겔을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십니다(2절). 가서 보니 어떤 사람이 줄과 측량 막대기를 들고 서 있습니다(3절). 그 사람은 에스겔에게 자신이 보여 주는 모든 것을 잘 보고 자신이 하는 말을 잘 들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알려 주라고 하십니다(4절).

그런 다음 그 사람이 에스겔을 성전으로 인도합니다. 성전 본체는 사방으로 담에 에워 싸여 있었습니다(5절). 그는 동쪽 문으로 가서 문과 문지기 방들의 모든 것을 측량합니다(6-16절). 그런 다음 바깥 뜰로 데리고 가서 구석구석 측량을 합니다(17-19절). 이어서 그는 북쪽 문과 문지기 방들을 측량하고(20-24절), 남쪽 문과 문지기 방들을 측량한 다음(25-27절), 안뜰로 가서 측량하고(28-31절), 안뜰 중문(32-34절)과 안뜰 북문(35-37절), 그리고 안뜰 중문의 부속 건물들을 측량합니다(38-46절). 그는 에스겔을 데리고 안뜰을 측량한 다음 성전 현관 안으로 들아가 구석구석 측량합니다(47-49절).

묵상:

주님께서 에스겔에게 이 환상을 보여주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나중에 이스라엘이 회복되면 이대로 성전을 재건하라는 뜻이었을까요? 하지만 바빌로니아에서 포로 생활하던 유대인들이 귀환하여 성전을 재건할 때 에스겔이 환상에서 본 설계도가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재건된 성전(‘제 2 성전’)은 에스겔의 환상에 비해 너무도 초라하게 지어졌습니다. 그 이후로도 에스겔이 환상에서 본 것과 같은 성전은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근본주의적인 유대교인들은 메시아가 오실 때 세워질 성전을 보여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요한이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는 환상을 보았을 때, 거기에는 성전이 없었습니다(계 21:22). 전능하신 하나님과 어린 양이 곧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환상은 메시아가 임할 때 세워질 성전에 대한 예언도 아닙니다. 이 환상은 지상에 세워질 가시적인 성전에 대한 예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에스겔이 본 성전은 회복될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합니다. 회복된 하나님의 백성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두고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그 예언대로 제 2 성전은 주후 70년에 로마군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더 이상 가시적인 성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이 성전이시며(요 2:21), 믿는 이의 몸이 성전이고(고전 6:19), 믿음이 공동체가 성전입니다(고전 3:16). 

성전으로 부름받은 우리의 존재 구석구석에 하나님의 뜻이 임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속한 믿음의 공동체에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또한 기도합니다.  

6 responses to “에스겔서 40장: 환상 속에서 성전을 보다”

  1. 주님 이 힘든 터널을 기도와 말씀, 교우간의 위로를 통해 힘차게 전진하게 하소서. 복잡해 보이는 제 인생을 단순히하고, 오직 근본적인 것에만 집중하게 하소서. 성전을 짓기위해 측량과 사전작업이 있듯 허약한 나의 신앙이 다시 회복되기위해 기본적인 체력을 만드는데 노력하겠습니다. 그동안 등한시했던 성경읽기와 기도를 다시 힘쓰겠습니다. 예전에 꿀처럼 달았던 성경읽기가 이제는 푸석하고 건조한 과자처럼 더이상 내 입맛을 자극하지 못합니다. 세상의 조미료와 설탕에 혀가 중독되었는지 모르겠어요. 눈물로 한시간씩 드리던 기도였는데 이제는 하루 세번의 식사기도만이 제가 드리는 기도의 전부가 되었습니다. 게으르고 나태함, 결단하지 못함이 엄청난 죄라는 것을 인정하고 회개합니다. 십자가를 잡고 의지해서 다시 일어서겠습니다. 당신의 근심이 되지 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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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가시적인 성전은 우리의 상상 속에 있고 현재 우리의 눈이 보이는 건물은 이스람 모스크이지만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의 성전을 통해 내 믿음이 성숙하기를 기도합니다.
    늘 궁금한 하늘나라를 내 안에서 찾아 그 안에서 주님의 나라를 건설하며 하늘나라를 살아가는 믿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주님의 나라가 굳건히 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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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건축학개론” 영화 제목이 생각납니다. 읽은 본문은 어떤 새 성전의 모습과 측량에 관한 건조한 기록인반면 떠오르는 영화는 스무살 때 만났던 첫사랑을 15년 뒤에 다시 만나는 건축가 남자 주인공의 이야기입니다. 첫사랑을 처음 만났던 곳이 건축학개론 강의실이라는 점과 건축가가 된 주인공 앞에 15년 전의 그녀가 집을 지어 달라는 손님으로 나타났다는 것이 영화의 뼈대입니다. 굳이 이 영화 제목이 떠오른건 ‘건축’이라는 단어가 지닌 사실성과 은유성이 인생이나 믿음에 잘 어울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본문이 그리는 새 성전을 놓고도 여러 주장이 있습니다. 실제의 어떤 건물이라는 주장과, 다른 어떤 것을 대신 보여주는 상징적인 성전이라는 주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존재했거나 앞으로 지어질 가시적 성전이라고 보는 것보다 백성 공동체, 교회, 우리의 몸과 삶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적합할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집을 짓는 행위, 건축을 하는 일은 단순한 필요에서 출발하지만 일 자체를 넘어서는 상징과 뜻을 담습니다. 에스겔은 다 지어진 성전을 보고 있습니다. 가이드 해주는 사람을 따라 그가 보여주는 것을 보고 재는 것을 보고 머리 속에 담습니다. 새 집의 모델 하우스를 구경하면 대개 같은 생각들을 합니다. 구조가 어떤지 보면서 머리로 동선을 그립니다. 그 공간에서 할 일들을 상상합니다. 반짝 거리는 가전제품과 멋짓 가구들이 눈에 보이지만 우리집에 있는 물건들이 어느 자리에 들어갈지, 어울릴지 생각하며 나름대로 배치를 해 봅니다. 설계와 시공을 본인이 직접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우리는 주어진 공간에 자신을 맞추며 삽니다. 에스겔처럼 우리도 수동적인 방문객이요 관광객입니다. 이미 지어진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일까요. 성전을 무엇이라고 보느냐는 기본 질문에 성전은 곧 우리 자신, 특별히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믿는 이의 상징이라고 답한다면 성전을 둘러 보는 것에 그칠 수 없습니다. 에스겔을 안내하는 사람은 “보여줄 모든 것들을…자세히 주목하여라…모든 것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하여라 Tell Israel everything you see (4절)” 고 말합니다. 영어로 짓는다는 뜻의 build 는 쓰임이 많은 동사입니다. 집을 짓는다, 어휘력을 늘린다, 커리어를 쌓는다, 자산을 증식한다, 명성을 쌓는다, 근육을 만든다, 면역을 키운다, 보안을 강화한다, 관계를 만든다… 여러 곳에 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시작이며 끝입니다. 짓는 땅의 터가 되시며 다 지어진 건축물의 영광을 받으십니다. 주님, 보고 듣는 것에 주목하며 당신을 잘 따르게 하소서. 당신의 집을 구경하며 그 집 안에 거하는 나를 상상하게 하소서. 걱정과 두려움을 이겨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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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몸이 건강한 새 몸이되고 가정이 온전한 새 가정이되고 교회가 성령 충만한 새교회가되고 나라가 완전한 나라가되고 눈물이 없는 새하늘과 새땅에 사는 날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마라나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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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그 뜻과 기능에 맞게 다시 깎이고/재단되고/연마되고/담금질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직도 불쑥불쑥 솟아나는 “나”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눌려서, 하나님 앞에 철저히 머리를 쑥여, 그 머리가 땅에 닿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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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하나님께서 거대하고 웅장하게 설계하신 거룩한 성전을 좁고 좁은 인간의 각자의 마음에 건설하여 성전 속에 담겨 질 새 하늘과 새 땅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닥쳐올지라도 좌로나 우로에 치우치지 않고 시선을 주님께 고정시키고 그날을 기다리는 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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