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서 42장: 측량을 마치다

해설:

측량사는 에스겔을 데리고 북쪽에 있는 두 방으로 안내합니다. 방 하나는 성전 뜰을 마주하고 있고, 다른 방은 북쪽 건물을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3층으로 된 그 방은 제사장들을 위한 방입니다. 그들이 제사 중에 입는 예복을 보관하기도 하고, 화목제를 드릴 때 제사장 몫의 음식을 먹는 곳이기도 하고, 제사로 드려진 곡식이나 고기를 보관하기도 하는 곳입니다. 그는 에스겔을 데리고 다니면서 구석구석 측량 합니다(1-14절). 

이렇게 하여 성전 내부 측량이 다 끝난 후, 그는 에스겔을 데리고 나와 성전을 에워싸고 있는 사면 담을 측량합니다. 담은 동서남북으로 오백 자씩 정사각형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그 벽은 거룩한 곳과 속된 곳을 구별하는 경계가 되었습니다(15-20절).

묵상:

“그 담은 거룩한 곳과 속된 곳을 갈라 놓았다”(20절). 이 한 문장이 구약 시대의 세계관을 대변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전은 거룩하고 성전 바깥은 속 되다고, 제사장과 레위인은 거룩하고 일반 백성은 속 되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은 거룩하고 이방인은 속 되다고, 어떤 음식은 거룩하고 어떤 음식은 거룩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상인은 거룩하고 장애인은 속 되다고, 안식일은 거룩하고 다른 날은 속 되다고 생각했습니다. 율법은 속된 것들과 철저히 거리를 두고 거룩한 것을 추구하도록 규정했습니다. 그 모든 것을 구별하는 출발점이 성전이었습니다.

일부를 거룩하다고 구별한 이유는 나머지를 속 되다고 규정하기 위함이 아니라 나머지 모두를 거룩하게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타락한 마음이 그것을 편의주의적으로 왜곡시킨 것입니다. 그것을 ‘이분법적 사고’ 혹은 ‘이원론적인 사고’라고 부릅니다. 이 사고는 안식일 하루 거룩하게 지키는 것을 나머지 6일을 자기 마음대로 살기 위한 빌미로 만듭니다. 성전 안에서 거룩하게 행동하고, 바깥에서는 자기 좋을대로 행동하게 합니다. 소득의 십분의 일을 거룩하게 구별한 다음 십분의 구를 자기 욕심대로 사용하려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속셈을 간파하시고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나누는 모든 기준을 거부하셨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거룩하고, 음식은 어떤 것이든 정하고, 하나님의 피조 세계는 모두 거룩하고, 매일이 성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대하면 그 사람이 선 자리가 지성소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거룩함과 속 됨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6 responses to “에스겔서 42장: 측량을 마치다”

  1. 거룩 한 성전이 주는 의미를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며 성별을 생활해온 그 땅시의 관습이 아직도 우리 세대를 지배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모든 자연과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온전하고 성스럽게 지어졌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하며 하루하루의 일상이 신령한 마음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깨씃게 하였다는 주님의 음성을 의식하며 만사에 진정과 신실함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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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이분법적인 사고로 누구를 정죄하며 편가르기에만 집중하는 모습들을 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거룩함이 정죄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지는 것이 아닌 사랑하고 포용하는 도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분별함을 가지고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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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성전의 담이 거룩한 성소와 일반 지역을 가른다”는 문장은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높이 세워진 벽이 미국 땅과 멕시코 땅을 구분합니다. 사실입니다. 백악관의 담장은 대통령의 공간과 디씨의 일반 도로를 분리 시킵니다. 이분법은 필요합니다. 구분을 해야 계산이 되고, 계획을 하고 질서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분법에 문제제기를 하셨습니다. 특히 성전을 놓고서는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고 꾸짖으시고 뒤집어 엎으셨습니다. 제사 드리는 데 필요한 제물과 물품을 뒤엎어 버렸습니다. 제사를 드리지 말라는 뜻이었을까요. 제사는 끝이 났다는 뜻이었을까요. 이분법의 문법만 살아 있고 본래의 취지는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알리시는 행동이라고 봅니다. 거룩함과 속된 것을 둘로 분리한 뜻은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의 몫을 최우선으로 삼기 위해서 입니다. 다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인생이 다 그렇고 그래 보여도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고, 우리가 알 수 없는 영역과 할 수 없는 일이 분명히 있다고, 언제까지고 붙들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입니다. 이런 일은 진실입니다. 사실만 보고 있으면 진실은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에스겔이 본 성전은 사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언젠가는 지어질 성전의 예고였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뒤엎으신 성전은 제사의 모양만 있고 사랑은 빠진 역겨운 제사가 올려지던 곳이었습니다. 새 성전은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묵상합니다. 예수 안에서 사는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묵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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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머리로는 이해가 잘 되지않는 말씀이지만, 예수님 안에서 남을 정죄 하지말고 모든것을 포용 하면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라고 하시는 뜻으로 받아 들이겠습니다. 말씀을 옳게 이해하는 지혜를 원합니다. 말씀을 순종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조금더 주님 닮아가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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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성전을 거룩한 곳과 세상 적인 곳으로 구분하여 갈라 놓는 것으로 인하여 인간을 구분하고 정 죄 하는 것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죽으시므로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지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도의 이름을 힘입어 하나님의 지성소 안으로 담대 하게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각자가 성전으로써 마음과 육신을 말씀과 기도로 항상 청결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서로 사랑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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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오십보 백보라는 말도 생각이 나고 뭐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말도 생각납니다. 우리는 모두 죄없이 살수 없는 인간인데도 마치 자기는 죄가 없고 선한 척 남을 정죄하고 판단합니다. 예배중 기침소리로 내 기분을 상하게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복도에서 내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사람으로 화가 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혹시 그는 몸이 아픈데, 성경의 혈우병 여인처럼, 예수를 만나려는 심정으로 나온 사람은 아닐까? 시력과 기억력에 장애로 힘들어하여 내 인사를 못 본것은 아니었을까? 왜 나는 그들의 아픈 사정을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 왜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지 않았을까? 예수님은 우리를 공평하게 사랑하셨고 또 그렇기때문에 심판날 우리의 변명하는 입을 다물게 만들어버릴 정당성을 가지실 것입니다. 성스러움의 가치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마음에 제가 합하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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