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서 46장: 성전에서 드릴 제사

해설:

성전 바깥의 동쪽 문은 주님의 영광이 통과한 문이기 때문에 영구적으로 닫아 놓아야 했습니다(44:1-3). 안쪽에 있는 동쪽 문은 안식일과 초하루 제사 때에만 열되, 오직 왕만 그 문을 통해 들어와야 합니다. 제사장이 제사를 드리는 동안에 왕은 문지방 앞에서 엎드려 경배하고 바깥으로 나가야 합니다(1-2절). 안식일과 초하루 제사를 드릴 때 백성도 동문 어귀에서 주님을 경배해야 합니다(3절). 

왕은 안식일과 초하루에 정해진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4-7절). 성전에 들어올 때 왕은 중문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그 문으로 나가야 합니다(8절).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북문이나 남문으로 들어와서 반대편 문으로 나가야 합니다. 들어온 길을 돌아서 나가는 것은 금지됩니다(9절). 백성이 들어올 때 왕도 같이 들어와야 합니다(10절). 모든 절기에는 정해진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왕도 마찬가지입니다(11-12절). 안식일과 초하루 제사에 더하여 매일 아침에 번제를 드려야 합니다(13-15절).

회복된 이스라엘에서 주님은 왕에게 넉넉한 토지를 구별해 주십니다(45:7-8). 왕이 그 땅의 일부를 자녀에게 주면 그 소유권은 자녀에게 이양됩니다. 하지만 신하에게 토지의 일부를 선물로 주었다면 희년(50년 마다 한 번씩 노예를 풀어주고 모든 채무가 탕감해 주는 해)까지만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규정하는 이유는 왕이 함부로 백성의 토지를 빼앗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16-18절). 마지막으로 에스겔은 제사장들의 거룩한 방 뒤편에 있는 부엌으로 안내 됩니다. 그곳은 제사장들이 제물로 드려진 고기를 삶고 곡식 제물을 굽는 곳입니다. 그런 다음 제사에 참여한 백성이 성전에서 음식을 나누어 먹습니다(19-24절).

묵상:

에스겔의 성전 투어의 종착점이 부엌이라는 점에 마음이 머뭅니다. 번제는 드려진 제물 전체를 태워 바치는 제사이지만, 화목제물의 경우에는 고기와 곡식을 주님께 흔들어 바친 후에 그것을 삶거나 구워서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나누어 먹습니다. 성전 제사는 공동 식사에서 절정에 이르는 셈입니다. 

제사 드리는 사람들은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성전에 와서 제사에 참여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제사장이 제물을 잡고 제사 예식을 행하는 동안 자신의 죄를 기억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지켜 보았을 것입니다. 제사 절차가 모두 마치고 나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음을 믿고, 즐거운 마음으로 공동 식사에 참여했을 것입니다. 모두가 깨끗해진 마음으로 한 자리에 모여 공동 식사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미리 경험하는 자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제사 자체를 위해서 부엌은 필요가 없었지만, 공동 식사에 부엌은 꼭 필요한 자리였습니다. 성전 안에서 부엌은 가장 외진 곳에 있었지만, 그것이 없으면 제사의 절정인 공동 식사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성전 투어의 마지막이 부엌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과 바른 관계를 맺고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평화를 누리고 좋은 것을 누리며 사는 것에도 관심을 두십니다. 그것이 성전에 부엌을 두신 이유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죄인의 심정으로 늘 우울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맑고 밝은 마음으로 좋은 것들을 누리며 나누며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율법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4 responses to “에스겔서 46장: 성전에서 드릴 제사”

  1. 왕은 들어 온 문으로 되 돌아 나가야 되지만 일반 백성들은 들어 온 문의 맞은 편에 있는 문으로 곧장 빠져나가라는 말씀 속에 우리의 삶의 여정에 미련을 두지 말고 앞만 보고 열심히 정진하며 살라고 하지만 왕은 자신의 행적을 되 돌아 보며 잘 못 된 것들을 반성하며 백성을 돌보라고 같은 문으로 되 돌아가라고 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미처 뒤를 되돌아 볼 겨를도 없이 달려 온 지난 날들을 회상하며 주님의 뜻에 얼마나 합당하게 살았는지 반성해 봅니다.
    앞으로의 삶을 더 밝고 신실하게 살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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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본문을 이해하기 쉽게 잘 풀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사람들이 함께 둘러 앉아 식사하는 모습이 상상이 되네요. 신앙은 우리마음을 억누르는게 아니라 행복하게 해야되는게 정상인것 같습니다. 제 마음에 신앙으로 인해 행복이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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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백성들이 북 문이나 남 문으로 성전에 들어올 때는 들어왔던 문으로는 나가지 못하게 함은 지나간 인생 길에 미련을 두지 말고 앞만 보고 살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인생 길은 험한 길도 있고 기쁜 날도 있을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세상 쾌락을 즐기며 살았던 시간도 있을 터 고난이 찾아왔을 때 주님! 그 세상 쾌락에서 벗어 난 것을 후회하는 삶을 살지 않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기쁘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남은 인생을 살게 하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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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성전에 있는 부엌에 대한 목사님의 해설이 무척 유익합니다. 다른 책에도 성전 부엌을 묘사한 구절들이 있든가 싶게 신선하게 읽히는 본문인데 목사님이 해설하신 공동 식사와 교제의 필요성을 읽으니 우리의 교회 생활도 같이 돌아보게 됩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숙연하고 절제된 마음이 부엌에서 마련한 음식을 대하니 생기가 돌고 가벼워지는 듯 합니다. 사람이 대단한 일을 하는 존재인 듯 해도 잠자리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는다거나 식탁 앞에 앉아도 밥을 뜨고 싶지 않다면 산 목숨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울증이 무섭다고 하는 이유도 그래서 입니다. 몸의 어딘가가 쑤시고 아픈 고통만큼 무감각이나 무기력도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공동 식사는 종종 신앙 생활의 바로미터가 되기도 합니다. 예배를 드린 후에 “밥 먹고 교제하기”가 싫을 때가 있습니다. 예배만 드리고 들어왔던 문으로 다시 조용히 나갑니다. 반대로 예배 후의 교제가 기다려지는 날도 있습니다. 기도에 응답을 받은 교우들은 식사나 특별 메뉴를 위해 도네이션을 따로 함으로써 감사의 마음을 나누기도 합니다. 부엌이 제사를 완성 시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한인교회의 식사 친교는 좋은 전통이요 자랑거리인데도 불구하고 올무와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이 부분을 지혜롭게 풀어야 하는데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에스겔이 본 성전은 제사를 드리는 곳이요 그곳에 오는 사람은 왕이나 백성이나 모두 경배를 올리기 위해 모인 사람들입니다. 성전을 찾는 목적이 경배에 있음을 확인합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송아지와 양을 잡아 올리는 제사가 아니라 포도주와 떡으로 기리는 성찬의 예배를 드립니다. 교회를 성전이라고 쉽게 말하지 말고, 내가 매일 예배자로 살고 있는지 살피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정신이 내게 피와 살이 되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의욕을 가지고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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