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10장: 세 번째 환상

해설:

10장부터 12장까지는 다니엘이 본 또 하나의 환상에 대한 기록입니다. 때는 고레스 대왕 제 삼년(주전 537년)의 일입니다. 그는 놀라운 환상을 보는데, 그 환상의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 삼 주일 동안 금식을 하며 기도를 드립니다(1-3절). 환상 속에서 그는 티그리스 강 둑에 서 있었는데, 모시 옷에 금띠를 두른 사람을 만납니다. 그의 온 몸에서는 광채가 났고 그의 목소리는 큰 무리의 함성처럼 컸습니다(4-6절). 같이 있던 사람들은 환상을 보지 못하고 소리만 들었으므로 무서워서 숨었고, 다니엘 혼자만 그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는 환상을 보고 그 충격에 힘을 잃었고, 그의 말소리를 듣고는 정신을 잃고 땅에 쓰러집니다(7-9절). 

그 때 한 손이 그를 어루만져 일으켜 세웁니다. 하지만 그의 다리는 여전히 떨렸습니다. 그 사람은 다니엘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릅니다. 그가 기도를 시작할 때부터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기 위해 자신을 보냈다고 말합니다. 삼 주일이 지나서야 그에게 온 것은 페르시아 왕국의 천사장이 삼 주일 동안 그를 막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천사장 미가엘이 도와 주었기에 그에게 올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10-14절). 앞의 환상과 연결해 보면, 이 사람은 가브리엘 천사로 보입니다. 

그 말을 듣고 다니엘은 다시 땅에 쓰러집니다. 두려워서 입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람이 다니엘의 입술을 맍지자 다니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빠져 버렸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그는 다시 다니엘을 어루만지면서 두려워하지 말고 힘을 차리라고 격려합니다. 그는 그 말을 듣고 힘을 차립니다(15-19절). 그는 이제 가서 페르시아의 천사장과 싸워야 하며, 다니엘에게는 그리스의 천사장이 올 것이라고 말해 줍니다(20절). 그는 ‘진리의 책’에 기록된 것을 알려 주려고 왔다고 말합니다(21절).

묵상:

신앙인들 중에는 환상, 계시, 체험 같은 것들에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은 신비 체험을 사모합니다. 그런 체험을 한 사람들을 부러워 하고, 그런 체험을 하게 해 준다는 사람들을 찾아 다닙니다. 그러다가 영적 사기꾼에게 사로잡혀 패가망신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먹잇감으로 노리는 영적 사기꾼들은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그런 차원을 전혀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되 철저히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한계 안에서만 믿으려 합니다. 그런 사람은 영적 사기꾼에게 넘어갈 염려가 없다는 점에서 안전하기는 하지만, 기독교 신앙의 진수를 맛볼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한 셈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신비에 있습니다. 신비란 어느 정도 드러나 있지만 그 정체를 다 알 수 없도록 감추어진 것을 말합니다. 기독교 신앙이 신비적인 이유는 인간의 한계성에 비해 하나님은 너무도 크시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한계 안에 갇힌 인간이 영원하신 하나님과 관계 맺는 것이며, 3차원 공간에 묶인 존재로서 절대적 차원의 하나님을 찾는 일이기에, 기독교 신앙에 다 알 수 없는 차원은 항상 존재합니다. 다니엘이 기록한 세 번째 환상에도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가득합니다. 다니엘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으니, 2천 5백 년 후에 읽는 우리에게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 성령의 나타내심은 너무도 강력하여 숨을 멎게 하기도 하고 한 동안 정신을 잃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런 체험을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하나님의 사자를 만난 후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았는데, 그는 그 장애를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 장애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분명한 증거 하나쯤 우리에게 있으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3 responses to “다니엘서 10장: 세 번째 환상”

  1. 천국을 체험했던 시간이 있었는것 같습니다. 너무나 오래전이고 너무나 짧은 시간 이었기 때문에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시간도 주님이 허락 하심으로 생각하고 감사하며 살기로 결심합니다. 어쨌든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항상 편안하고 강건 하기를 간구합니다. 주님의 계획을 깨닫지 못하더라도 모든 역사를 사랑과 은혜로 주관하시는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식구들과 감사하며 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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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신묘 막측한 하나님의 마음을 어리석은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음을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성경이 존재하여 읽고 묵상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주심으로 미세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러나 북한과 같은 공산주의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마음 놓고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양하지 못하고 큰 소리로 기도하지 못하고 말씀을 마음대로 들어내 놓고 읽고 묵상하지도 못하는 그들을 위해 절실한 기도가 필요 합니다. 우리 모두가 공산주의 국가에 대한 복음화를 위해서 쉬지 말고 기도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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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본문 10장을 읽고 11장도 읽어 보았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우면 묵상의 길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다니엘서를 시작할 때 나오는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에세이를 읽어보았습니다. 묵상의 방향이 조금 잡히는 듯 합니다. 에세이는 다니엘서를 이야기와 환상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또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기 어려운 유혹의 시기에 사는 사람들에게 “순종의 혈관에 아드레날린을 공급했고 믿음의 뼈대를 굳건하게 세웠다”라고 표현합니다. 이야기 부분은 다니엘과 친구들이 하나님께 순종한 이야기, 환상 부분은 다니엘이 본 장래의 일들 입니다. 이야기 부분에서는 세상의 편의 (왕의 명령,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살 것가, 주님께 충성할 것인가 중에서 주님을 선택한 사람들을 보여 줍니다. 환상 부분은 저자가 의도적으로 수수께끼 (묵시)의 형태를 택했기 때문에 독자는 금새 알아 들을 수 없습니다. 의도된 모호성 (9장 목사님 해설) 은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게 만듭니다. 영화를 보는데 어느 장면이 흐릿해서 알아보기 어렵게 만들었다면 그건 감독이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장면은 정지화면으로 만들어 놓아도 안 보이고 리와인드해서 수 십번을 봐도 여전히 모릅니다. 영화를 다 본 뒤에는 그게 그리 중요한 장면이었는지, 혹은 모르고 넘어갔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는지 각자 답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서는 이야기 장에서는 순종의 예를 보여주고 환상 장에서는 통치와 주권의 소재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고 다스리신다는 뜻이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처리된 화면들, 수수께끼처럼 알쏭달쏭한 대사들 안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계신가, 우리의 고통을 알고 계신가 몸부림치며 묻는 이스라엘에게 다니엘서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답합니다. 다니엘의 환상을 풀어낼 재간은 없지만 그의 주장 – 하나님은 계시다 -에는 아멘으로 동의할 수 있습니다. 나의 아멘에 순종을 담습니다. 하나님, 순종하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겸손과 감사를 아는 마음을 만나처럼 매일 지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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