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장: 가장 귀한 보물

해설:

“아이들”(1절)은 지혜가 부족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내 말”에서 “나”는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지혜를 가리킵니다. 지혜를 가장 귀한 보물로 여기고 찾되 전인격적으로(마음, 귀, 목소리) 추구하라고 하십니다(1-4절). 전심으로 그것을 찾으면 “주님의 경외하는 길”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5절)을 얻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지혜를 찾는 사람에게 응답 하시어 “지혜와 명철”(6절)을 주십니다. 

지혜를 아는 사람은 “정직하고 흠 없이”(7절) 살며,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행하고, 주님께 “충성”(8절)합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들을 지켜 주십니다. 지혜를 따라 살면 더 많은 지혜를 깨닫게 되고(9절), 그 지혜로 인해 참된 기쁨과 만족을 얻습니다(10-11절). 지혜를 따르면 “악한 사람”과 “겉과 속이 다른 사람”(12절)의 유혹으로부터 안전합니다. 그들은 지혜를 모르기 때문에 어두운 길에 서서 악한 일을 즐깁니다(13-15절).   

“음란한 여자”와 “부정한 여자”(16절)는 성적으로 방종한 여자를 의미할 수도 있고 타락한 욕망을 따라 가는 세상의 풍조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지혜를 아는 남성이라면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음란한 여성과 짝하지 않는 것처럼, 지혜를 아는 사람은 세상 풍조를 따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17절)을 기억한다면 그럴 수가 없습니다. 세상 풍조를 따라 타락한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죽음으로 내려가는 길”(18절)이며, “생명의 길”에 이르지 못합니다(19절).

따라서 우리는 선한 사람의 길, 의로운 사람의 길로만 가도록 힘써야 합니다(20절). 길게 보면, 정직하고 흠 없는 사람이 살아남고 악하고 진실하지 못한 사람은 멸망하기 때문입니다(21-22절).

묵상:

우리의 본성은 죄성에 물들어 있기 때문에 그냥 두면 욕망을 따르게 되어 있고, 욕망은 우리의 눈을 멀게 하여 어리석은 길을 가게 만들며, 그 길에서 거짓과 악의와 불의를 행하게 만듭니다. 그 길의 끝에는 불행과 파멸과 영원한 죽음이 있습니다. 그 길로 우리를 끄는 힘은 너무도 강합니다. 우리 내면에는 죄성이 있고, 바깥에는 ‘죄 권하는 사람들’의 유혹과 압박이 있으며, 위에는 악한 영의 은밀한 속임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 존재는 ‘삼면초가’에 갇혀 속절없이 죄와 멸망의 길로 끌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 힘으로부터 벗어나 생명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전심으로, 전인격적으로 지혜를 찾고 따라야 합니다. 매일, 쉬지 않고 지혜를 사모하고 찾고 품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죄로 이끄는 세 가지 힘과 싸워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그것 자체로 생명력이 있어서 우리의 죄성을 무력화시키고 악한 영의 교란을 간파하고 물리치게 합니다. 지혜를 알기 전에는 죄악을 즐기는 것에서 기쁨과 만족을 누렸는데, 지혜를 깨닫고 나면 그것이 스스로를 괴롭게 하고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죄 된 본성은 지혜를 따르는 삶을 불편하고 거북하게 느끼지만, 결국 그 길에 참된 만족과 기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7 responses to “잠언 2장: 가장 귀한 보물”

  1. 너무나 비천하고 죄에 물들어있고 세상이 추구하는 부귀영화를 부러워하는 가련한 처지에 있습니다. 매일 아침 훈계의 말씀으로 무장 할수있는 시간을 허락하시는 은혜에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지혜와 명철과 분별력을 세상의 금은 보화를 찾듯이 찾아 영혼에 깊이 간직하고 믿음의 식구들과 함께 낮아지고 양보 함으로 승리의 삶을 살아내는 오늘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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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건물을 지을 때도 기초를 철저이 해야 되며 모든 학문을 할 때도 기초를 잘 해야 그 학문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삶의 기초인 “주님을 경외 하는 것”을 든든히 하고 그 위에 지혜와 명철과 정의와 공평과 정직을 쌓아나가는 의지를 구해봅니다, 인간의 죄성으로 늘 좌절하지만 깨어 기도하기를 멈추는 일이 없기를 간구합니다.
    오늘도 좁은 길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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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중히 여기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마 6:24)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문자적으로만 생각하면 쉬운 말씀인 것 같지만 인간의 본성 때문에 실 생활에서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 외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날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지혜를 구 하는 방법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간절히 구하오니 주님께서 내 마음에 왕으로 오셔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통치하여 주심으로 하나님 편에 서서 주신 지혜로 남은 여생을 살게 하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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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지혜와 명철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지식의 근본이 되는 것인지 삶을 통해서 조금 배웠습니다.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경외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하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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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바울 사도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 때의 일을 버렸노라 (고전 13:11)”라고 한 것이 생각납니다. 잠언을 듣는 사람이 이를 나이가 어려서 아들 (아이)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아직 지혜를 모르는 상태, 자신의 죄와 허물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 있으면 어린 아이와 같다는 뜻을 담았을 것입니다. 사람의 천성 혹은 본성은 중립 상태일 때가 많습니다. 자기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공격성과 방어성을 다 발휘해야 합니다. 지혜는 생명 안에 담긴 창조주의 선한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지혜를 양심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도덕성이라고, 또는 지성, 혹은 감수성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누구나 다 지혜를 갖고 태어났지만 모두 다 지혜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잠언에 등장하는 ‘지혜’는 한 가지로 고정시켜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고,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리키기도 하고 주님과 나의 사귐을 표현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가 되어야 지혜가 ‘있다’고 할 수 있는 최소한도 없고, 이만큼 되어야 참 지혜롭다고 인정할 만 하다는 최대한도 없습니다. 각자 늘 꾸준히 구해야합니다. 오늘은 “숨은 보화를 찾듯 (4절)” 하나님의 지혜를 찾아 보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보화처럼 여기고 사는지부터 물어봐야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혜를 귀하게 여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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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내가 생각하는 지혜, 경험, 좋은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지혜로 살아가기가 참 힘이 듭니다. 세상사람들 다 그렇게 하는데, 나만 뒤쳐지는게 아닌가, 나만 바보같은 짓을 하는게 아닌가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매일 매일 결단하지 않으면 쉽게 타협하고, 포기하고, 세상의 방법에 물들어 버립니다. 주님, 이러한 저의 마음, 생각, 행동을 용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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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지혜란 그져 사실을 모아놓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결론에 도달하는 추론의 과정이나 사건의 배경을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특히 지금처럼 불확실한 시대에서는 지혜가 매우 중요하다고 하는것이라 생각합니다. 풍부한 첨단 지식으로 무장한 젊은 사람들보다 수십년 인생을 살아온 장로님, 원로들이 예측못한 문제를 만나도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주는것이 그런것 때문이겠지요. 가끔 토론에서 “이런 용어 들어봤냐”며 지식자랑하는 경우를 보는데 어떤 지식의 작은 조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겨루는 싸움이 세상에서 가장 수준낮고 유치한 싸움입니다. 중요한것은 생각하는 힘이며, 설사 어떤 용어나 사실을 모른다해도 추론하는 힘만 있으면 비슷한 결론에 충분히 도출할수 있습니다. 잠언의 지혜는 그런 매우 깊은 의미의 말씀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세상의 윤리도덕이나 경전들이 말하는 “선하게 살라”는 말씀이 아니라, 그 이상의, 주님이 기대하는 최고의 기준을 요구하는, 즉 선하게 살고 안살고를 떠나 그보다 더 중요한, 주님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기준 (주님을 알면 당연히 선하게 되겠지만) 이겠지요. 지혜의 근본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아닙니까. 목사님 인도로 듣는 말씀으로 저희가 깊은 묵상을 하기 원합니다.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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