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8장: 태초부터 있었던 지혜

해설:

1절부터 3절까지에서 지혜는 자신의 소리가 온 천하에 울려 퍼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듣고 배우려는 마음만 있으면 지혜는 항상 곁에 있습니다. 지혜는 살아 있는 인격과 같아서 끊임없이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청합니다(4-5절). 지혜는 언제나 옳고 선하고 의로운 일을 말합니다(6-8절). 깨닫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아 차립니다(9절). 지혜는 금은보화보다 더 귀하게 여길 대상입니다(10-11절). 지혜는 사람에게 분별력을 주어 죄와 악을 미워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12-14절). 왕과 지도자들이 지혜를 알면 공의롭게 다스릴 수 있습니다(15-16절). 지혜는 또한 의롭게 살면서도 번영하게 만들어 줍니다(17-21절).

22절부터 31절까지는 지혜가 어떤 존재인지를 밝힙니다. 지혜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있었으며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함께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된 모든 것을 보시고 “좋다, 참 좋다!”(창 1:31)고 하셨을 때 지혜도 그분과 함께 있었습니다. 지혜의 말을 듣고 그 말을 따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32-33절). 지혜를 간절히 사모하며 늘 귀 기우리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34절). 지혜에 생명이 있고, 지혜를 잃는 것은 곧 생명을 잃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묵상:

성서학자들은 22절부터 31절까지의 말씀과 요한복음 1장 1-5절의 말씀을 연결시킵니다.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이셨으며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함께 하신 ‘그 말씀'(로고스)이 여기서 말하는 ‘지혜'(호크마)와 같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스 사상에서 로고스는 우주의 운행과 인간사 저변에 흐르는 대원리를 가리킵니다. 그리스의 지혜자들은 자연의 순환과 인간 존재의 현상을 관찰 하면서 모든 존재의 배후에 어떤 원리가 있으며 그 원리에 순응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하나님의 창조 원리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잠언의 ‘호크마’이며, 요한복음의 ‘로고스’입니다. 요한에 따르면, 지혜/말씀은 하나님이셨고 하나님과 같이 계셨지만 그분과 구분됩니다. 그래서 지혜는 스스로 말하고 부르고 격려하고 책망합니다. 지혜는 지식이 아니라 인격입니다. 그 지혜/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요 14:6)고 하셨습니다. 그분 안에 거하여 그분과 동행하는 것이 참된 지혜의 삶입니다. 

7 responses to “잠언 8장: 태초부터 있었던 지혜”

  1. 세상의 무엇(금은보화 부귀영화 쾌락) 보다 더 귀한 창조주 하나님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말씀이 육신이되신 예수그리스도를 영혼에 깊이 간직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어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성삼위 일체의 하나님 약속을 꼭 붙잡고 감사하며 사는 삶을 간구합니다. 믿음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오직 십자가의 능력만이 영생의 길이라고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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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일상에서 어떤 것이던 선택해야 할 때 지혜로운 결정을 하므로 실수를 면하듯 만사에 주님의 지혜가 따르기를 기도합니다.
    믿음 생활에서도 열성이 앞서 실수하는 경우가 있을 때 조용히 묵상하면서 주님의 주혜를 구하며 명철하게 선택하고 행동하는 성숙한 믿음을 간구합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내 말과 행실에 근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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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지혜는 단순히 정보나 좋은 충고를 넘어서, 하나님의 영과 같은 존재입니다. 마치 공기와 같이,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와 언제나 함께하며 생명과 같은 존재입니다. 지혜가 충만한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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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지혜/말씀이 창조 때부터 인류를 향해 지혜/말씀을 외치셨으나 외면하여 죄의 사슬에 묶여서 욕망과 탐욕이 가득한 인간으로 변질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수많은 선지자와 예언자를 통해 달래도 보고 매로 치시기도 하였으나 제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므로 온갖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나)를 위해 하나님께서 내리신 진로의 잔을 대신 받으시기 위해 지혜/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셔서 홀로 받으시고 죽으시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문이 되어 주신 예수님의 끝없는 사랑과 은혜에 감사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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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이 천하만물, 아니 우주 전체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큰 뜻을 잠시나마 생각해 봅니다. 인식의 한계가 있어서 상상하는 것 조차도 무의미해 보이지만, 저에게 있어 하나님의 지혜는 누군가가 말한 “보이지 않은 손”이 아니라, 저를 항상 감싸주시며 그의 임재를 “느낄수 있는 손”이 됩니다. 제 삶의 가장 큰 힘이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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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8장을 읽으면서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지혜가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와 함께 거한다고 상상하면 예수님이 떠오릅니다. 예수님을 닮기를 원한다는 고백은 우리 또한 지혜롭고 싶다는 고백입니다. 어리석음과 무지라는 어두움을 깨뜨리고 밝음의 차원 곧 깨달음과 지혜의 세계로 나가고 싶다는 고백입니다. 커다란 슬픔 속에 잠긴 한국 사회에 과연 지혜를 사모하고 찾는 마음이 있는지 묻습니다. 지혜를 구하는 지도자가 있는지 묻습니다. 지혜를 통해 나라를 다스리며 바른 법령을 제정한다 (15절)는 구절을 알기나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보여 주신 지혜는 겉만 보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속까지 살피는 것입니다. 형식과 통제가 중요하지만 자율과 격려도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복지 정책이 잘 서 있는 나라는 무신론 국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신론자나 무교자가 많은 나라가 사회 복지에 신경을 더 쓴다는 말입니다. 기독교인인 내 귀에 불편하게 들리는 말입니다. 북유럽 국가들은 종교가 별로 필요 없다는 데 합의를 본 것처럼 보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복지는 잘 되어 있는 선진국입니다. 크리스찬에게 도전이 되는 부분은 무신론 사회에서는 정책으로 복지를 시행하게 함으로써 종교적 기준과 판단을 앞세워 일으키는 차별을 방지한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의 종교성이 타인의 복지를 돕는 것이 아니라 훼방을 하는 데까지 이르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북유럽 사회가 행복한 사회라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사회 취약층을 보호하는 법이 잘 되어 있다고 사람 사이에 온기가 느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으로서 이웃을 바라본다는 것은 정책이나 법령이 닿기 전에 먼저 말을 걸고 손을 내미는 일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과 마음을 같이 하는 일은 인간의 한계를 절절하게 느끼는 일입니다. 크리스찬의 애도는 비우는 일입니다. 우리 안에 가득한 슬픔을 주님 앞에 쏟아 놓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지혜가 우리를 움직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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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한 치 앞도 모르는데도 저는 이렇게 제멋대로 살고있습니다. 무식하고 고집센 저에게 지혜를 주시기위해 당신이 때로는 매를 드시더라도 너무 아프게는 마옵소서. 약한 제가 완전히 무너질까 두렵습니다. 주님, 제상 가득한 슬픔과 절망, 전쟁과, 배고픔과 질병을 보소서. 숨죽여 울고 있는 저들을 따뜻하게 안아주소서. 그들이 이겨낼수 있도록 힘을 주소서.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돈도, 명예도, 그 어떤것도 아니고 오직 지혜 뿐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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