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2장: 내게 주어진 다른 사람의 몫

해설:

22장은 크게 둘로 나뉩니다. 16절까지는 10장에서부터 시작된 ‘솔로몬의 잠언’에 속하고, 17절부터는 24장 12절까지는 ‘서른 가지 교훈’이라는 이름의 잠언입니다.

1절부터 16절은 지혜로운 삶의 유익에 대해 강조합니다. 지혜로운 삶이란 주님을 경외하며 겸손하게 사는 것입니다(4절). 세상에는 가난한 사람도 있고 부자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있습니다(2절). 따라서 하나님의 경외하며 그분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은 이 땅에서 복을 누리게 됩니다. 반면, 하나님을 등지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사는 것은 재앙을 자초하는 일입니다(8절). 겸손한 사람에게는 친구가 끼이지만, 악한 사람은 갈등과 불화를 만들어 냅니다(10-11절). 그렇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지혜를 가르쳐야 합니다(6절, 15절). 

17절부터는 ‘서른 가지 교훈’이 이어집니다. 이것은 독립적으로 전해져 내려 온 지혜 묶음이었을 것입니다. 1923년에 이집트에서 발굴된 ‘아메네모페 본문’의 내용 중에 ‘서른 가지 교훈’의 내용과 유사한 잠언들이 있어서 학자들의 관심이 집중된 적이 있습니다. 이 사실은 ‘서른 가지 교훈’이 독립적인 잠언 묶음으로서 광범위하게 알려져 있었다는 뜻입니다. 서문 격인 17-21절은 이 교훈이 “주님을 의뢰하며 살도록”(19절) 의도 되었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첫번째 교훈(22-23절)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를 요청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사회적 약자(가난한 사람, 고아와 과부, 병자와 장애인, 노예, 이방인 등)는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의 대상입니다. 두번째 교훈(24-25절)은 성급하고 성마른 사람을 조심하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런 사람들과 같이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세번째 교훈(26-27절)은 서약하거나 보증을 서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네번째 교훈(28절)은 선조들이 세워 놓은 경계표를 옮기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경계표는 조상 때 분배 받은 토지의 영역을 구분하도록 세워 놓은 돌비를 말합니다. 토지 대장 같은 것이 없을 때 사용된 방법입니다. 이웃의 토지를 탐내어 강제로 혹은 속여서 경계표를 옮기는 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가 됩니다. 다섯번째 교훈(29절)은 자신의 영역에서 탁월함을 이루라는 권면입니다.

묵상:

이 장에 나오는 다섯 가지 교훈 중 세 가지는 경제적인 약자에 대한 배려를 요청합니다. 첫번째 교훈은 가난한 사람을 함부로 약탈하지 말고, 가난하다고 하여 불편부당한 판결을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편을 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세번째 교훈은 다른 사람을 위해 서약이나 보증을 서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도 역시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가르침입니다. 이웃의 어려움을 도우려는 열심에 있어서 보통 부자들은 별 관심이 없습니다. 곤경에 빠진 이웃을 위해 보증을 서거나 담보를 서는 것은 주로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선의로 보증이나 담보를 서지만, 그로 인해 빚더미에 앉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네번째 교훈도 역시 가난하고 어리숙한 사람의 재산을 속여서 혹은 강제로 갈취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지혜는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처세술이지만, 잠언의 지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정의롭게 살며, 어려운 이웃을 돌아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점에서 2절(“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다 함께 얽혀서 살지만, 이들 모두를 지으신 분은 주님이시다”)의 말씀은 의미심장 합니다.  인간의 죄 성으로 인해 현실 세상에서는 빈부의 격차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경외하며 근면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업을 섬깁니다. 정의로운 사회에서는 땀흘린 만큼의 보상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실한 사람들의 살림이 넉넉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을 자신만의 몫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물질 안에 다른 사람의 몫도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런 마음이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게 하고 도울 일을 찾게 만듭니다. 

5 responses to “잠언 22장: 내게 주어진 다른 사람의 몫”

  1. 우선 주님의 뜻을 알아내는 지혜를 간구합니다. 항상 일 하시는 주님을 본받아 정직하게 부지런히 일하기를 원합니다, 임마누엘 주님을 피부로 느끼며 감사하며 베푸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나라가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 임하도록 믿응의 식구들과 간절히 기도하는 오늘이 되기를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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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살아있는 지혜는 단순한 책이나 말로만으로 배울 수 없습니다. 지혜의 영향력이 발휘되는 것은 그 지혜를 가지고 살아갈때 그 지혜는 빛이 납니다. 더 나아가서 그 지혜는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때, 살아있는 지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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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한국 신문 기사에서 젊은이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큰 이유가 가난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한다’는 말입니다. 경제력이 없어 연애 결혼 출산 3가지를 포기한다는 젊은 세대의 한탄이 어느새 7가지로 늘더니 이젠 ‘N포 세대’ 즉 사회, 경제적 압박으로 인해 연애 결혼 출산 주택…포기한 게 너무 많아 셀 수도 없다는 용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가난은 언제나 있는 현실인데 이 시대에 더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요. “라떼 (나 때)는 말야…” 문장을 쓰게 되어 거북하지만 예전에는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숫자적으로 지금보다 많다는 뜻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다는 뜻입니다. 다들 어렵게 살았다는 말이 조심성 없는 일반화가 아니라 실제로 한국의 경제는 빈약하고 어려웠습니다. 한국은 짧은 시간에 경제적으로 큰 발전을 이루어 어느새 곳곳에 잘 사는 사람들 천지인 것 같은 사회가 되었습니다. 소셜미디어는 소비 경제의 유통망이 되었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질 과소비와 엄청난 고가 제품을 전시하고 자랑하는 일이 ‘보통’이 되어 버렸습니다. 가난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가난하게 사는 것이 두려워졌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유명한 말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다 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 은 상황보다 상황을 보는 눈, 상황에 대한 이해가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가난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에는 개인적인 노력도 필요하지만 사회구조적 장치가 있어야 합니다. 약자를 받쳐주고 보호해 줄 수 있는 길을 사회가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이 일을 하는 사회는 약자보다 조금 나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결국 나와 우리, 교회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의 빚보증을 부자가 서야 될 것 같은데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를 만나는 것도 어려운데 빚보증을 부탁하다니요. 그러니 빚보증의 부담은 고만고만하게 어려운 사람들 사이에서 돌게 됩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학자금 대출 student loan 을 탕감해 주는 계획이 법원에서 제동이 걸려 순항을 못하고 있습니다. 팬데믹 때 계속해서 돈을 풀었다가 고물가 인플레이션으로 호된 댓가를 치루는 중인만큼 빚 탕감을 쉽게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가난이 문제가 아니라 빈부격차의 해소가 문제입니다. 빈부격차는 있을 수 밖에 없지만 그 간격이 더욱 커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나의 경제관이 믿음을 중심으로 다시 세워지기를 원합니다. 나와 가족, 교회에서 그친 선이 좀 더 커지기를 원합니다. 나의 편협함을 용서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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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먼저 부하지도 않고 가난하지도 않고 건강을 주셔서 주님께 헌금을 드릴 수 있도록 일할 수 있는 은혜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남은 인생의 여정가운데 어렵고 병든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능력과 힘을 주시기를 기도 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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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빚보증을 부탁하는 사람은 경제적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입니다. 능력이 남아있었다면 남에게 싫은 소리 안하고 스스로 해결했을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을 도우라 하셨는데 그렇다면 빚보증을 발벗고 하라고 하지 않으셨을까 생각했습니다. 단순한 돈관리에 대한 충고의 말씀보다는 더 깊은 의미를 가진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증이라는 것은 돈을 포기하고 그냥 주거나, 혹은 아예 대신 갚아주는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다 갚겠지하는 기대심이 생기며, 나도 모르게 심리적으로 엮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이 속박받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자유롭기 원하십니다. 왼뺨에 때릴때 오른뺨을 내어주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주는 마음은 즐겁습니다. 보증은 서주지 말아야 하지만 남에게 부탁을 들으면 줄수 있는 한도내에서 다 내주는 마음을 주시기 원합니다. 돈과 눈치, 체면, 걱정에서 저를 자유케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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