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4장: 원수가 넘어질 때

해설:

1절부터 22절까지 열아홉번째 가르침부터 서른번째 가르침까지 이어집니다. 이 잠언들은 지혜가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3-7절, 13-14절) 그리고 지혜 없음(어리석음)이 악행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 합니다(8-9절, 15-16절).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은 악인들과 짝하지 말아야 합니다(1-2절). 그들에게 악한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재난을 당할 수도 있지만 낙심하지 않습니다(10절). 지혜를 사모하는 사람이라면 어려움 당한 사람들을 도와 주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갚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11-12절). 또한 원수가 잘못되는 것을 보고 좋아하지 말아야 합니다(17-18절).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악행을 일삼는 사람들을 보고 시기하거나 분개할 수 있습니다(19-20절). 그들이 지금 당장 누리는 것만 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결국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그런 일에 심란 해지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주님과 왕을 경외하고 반역자들과 사귀지 말라는 가르침으로 ‘서른 가지 가르침’이 끝납니다(21-22절).

이어서 또 다른 잠언 묶음이 나옵니다. 재판할 때 정의를 따라 판정 하라는 가르침(23-26절), 가정을 세우기 위한 경제 활동의 중요성(27절), 법정에서 거짓으로 증언하는 것에 대한 경고(28-29절) 그리고 게으름에 대한 경고(30-34절)가 이어집니다.

묵상:

‘서른 가지 가르침’의 후반부에는 지혜자의 인간 관계에 대한 가르침이 많이 나옵니다. 지혜를 사모한다는 말은 주님을 경외하며 거룩하고 의롭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현실 세상에서 악행을 일삼는 사람들이 신실하게 사는 사람들보다 잘 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면 시기심이 일어나고 그 마음에 압도되면 믿음을 내버리고 그들과 어울려 악행을 일삼게 됩니다. 아삽은 그런 이유로 믿음이 심하게 흔들렸다고 고백합니다(시 73편).

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악행을 일삼는 사람들의 번영을 보면서 빠지는 또 다른 함정은 분노입니다. 자신만 공연히 손해 보고 사는 것 같은 생각이 들면 악행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분을 쌓게 됩니다. 그런 감정에 빠지면 그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쾌재를 부르게 됩니다. 그것이 ‘자기의'(self-righteousness)의 함정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주님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의 주님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이라 해도 아픔을 당할 때면 같이 아파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보고 싶어하십니다.

17-18절의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과 바울 사도의 권면을 기억하게 합니다. 지혜자는 원수가 고통 당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지 말라고 권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축복 하라고 하셨고(마 5:44), 바울 사도는 보복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권면했습니다(롬 12:21). 예수님의 사랑의 계명은 잠언의 소극적 윤리를 적극적으로 뛰어 넘으라고 하십니다.  

6 responses to “잠언 24장: 원수가 넘어질 때”

  1. 악인의 꾀를 따르지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않는 지혜를 기도합니다. 고난이 계속해서 닥쳐와 일곱번이나 넘어져도 낙심하지않고 주님만 바라보고 다시서는 용기를 원합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기도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식구들과 더불어 악을 선으로 갚는 삶을 세상에 보여주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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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잠언서의 가르침과 교훈을 뛰어 넘는 예수님의 말씀 “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이해 할수도 없고 받아드리기도 힘든 말씀이 늘 가슴을 불편하게 만드는데 오늘의 잠언서를 통해 지혜로 받아드려야 겠다고 마음을 먹어봅니다.
    수신제가후 치국평천이 아니고 먼저 바깥일을 다 하고 밭일을 살핀 다음에 가정을 세우라는 권면은 안과 밖을 동시에 중요하게 여겨 균형된 삶을 유지하라는 지혜로 받아드리게 됩니다.
    지식의 근본인 주님을 경외하는 기본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게 주님의 가호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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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모든 인류를 바라보시고 계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다시한번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악인이라고, 잘못을 저질러서 고통중에 있는자들이라고 어떤이유로 인하여 진퇴 양난의 기로에 서있는 자라도 주님이 보고 계십니다. 그러니 예수님 말씀처럼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내 마음속에는 자아가 자리잡고 있어 주님이 온전히 들어오시지 못함을 깨닫습니다. 주님! 아지도 남아 있는 자아를 버리고 주님의 마음을 담아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만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도와 주시기를 기도 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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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하나님이 보고계심을 항상 인지하기 원합니다. 내 삶 가운데 언제나 함께 계시며 감찰 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존중하는 지혜로운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Coram 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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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잠언서는 지혜의 근본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시작하고 인간 관계의 형통은 절제와 성실에 있다고 가르칩니다. 시대에 따라 성서 말씀의 이해와 사회 인식이 달라집니다. 나의 신앙 발자취도 10년 전과 지금이 다릅니다. 방향은 한 방향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관점이나 사유의 시작점이 조금은 달라졌습니다. 우리의 사고와 행동은 조금씩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눈에 띄게 다르지 않으면 변하지 않은 것으로 착각할 뿐입니다. 말씀을 읽고 변화를 받는다는 것은 의지적인 결단을 하기 전에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부분도 있습니다. 청소년 때 말씀을 읽고 깨우친 것이 성인이 된 뒤에 다르게 이해되기도 하고, 노년의 때에는 또 다른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말씀과 현실 사이에는 간극이 있고 긴장이 있습니다. 잠언의 지혜는 변함이 없지만 그 지혜를 품는 나는 늘 변합니다. “본질에 일치를, 비본질에 자유를, 모든 것에 사랑을! In essentials, unity; in non-essentials liberty; in all things, charity” 말씀을 참고할 때도 본질과 비본질에 대한 의견이 같지 않아 갈등이 생길 때도 많으며, 타인과의 관계가 아니라 나 자신의 생각 속에서도 무엇이 중하고 급한지, 무엇을 미뤄야 할 지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모든 것에 우선할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평정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면, 사랑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믿으면 나머지가 자리를 찾습니다. 잠언을 통해 깨닫는 주님의 사랑을 귀하게 품고 살게 하소서. 마음에 심어 주신 사랑의 씨앗이 잘 자라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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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예수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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