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6장: 미련함에 대해

해설:

1절부터 12절까지는 미련한 사람에 대한 여러 가지 격언입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어리석다’ 혹은 ‘미련하다’는 말은 지능이 떨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을 부정하고 자기 고집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과는 말을 섞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어떤 일을 맡기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고, 그런 사람의 말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미련한 사람의 가장 큰 문제는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높여주는 것은 해를 더할 뿐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지혜를 구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더 좋습니다. 

13절부터 16절까지는 게으름에 대한 경고입니다. 게으름의 어리석음을 강조하기 위해 과장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17절부터 22절까지는 다툼과 험담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자기와 관계 없는 싸움에는 끼어 들지 않는 것이 좋고,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험담을 하거나 중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타락한 본성은 근거 없는 험담에 솔깃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23절부터 28절까지는 언어 생활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말은 언제나 진실해야 하고 친절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면의 감정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묵상:

시편과 지혜서에서 ‘어리석음’은 ‘완고함’, ‘분별없음’ 그리고 ‘부패함’을 의미합니다. 지혜의 근본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듯, 어리석음의 근본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시편 14:1; 53:1). 하나님의 존재는 세상 만물 안에 환히 드러나 있기 때문에(롬 1:19)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은 그것을 알아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은 함부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하고 의롭게 살도록 힘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진실에 마음을 걸어 잠그고 자신의 욕망대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사람들을 돌이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어떤 논리로도 설복되지 않고, 어떤 증거를 제시해도 돌이키기를 거부합니다. 자기들이 가장 지혜롭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돌아서는 것는 오직 그들 스스로 깨우치고 돌아서기를 선택할 때 가능합니다. 스스로 선택한 길에서 한계를 만나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돌아서는 것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다른 사람이 그의 돌이킴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사랑으로 그 사람을 품어주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매력을 보여 주며, 그를 위해 기도해 주는 일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것을 ‘해산의 수고’라고 했습니다. 

5 responses to “잠언 26장: 미련함에 대해”

  1. 미련하고 게으르고 험담을 하고 정죄를 하는 가련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은혜를 갈망하는 피조물입니다. 함께하시는 주님을 피부로 느끼며 자족하며 베풀며 사는 믿음을 원합니다. 부족하고 추악한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과 깊고 귀한 사귐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식구들과 구원의 주님을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시련과 전쟁과 자연재해와 판데믹에서도 푸른 풀밭과 잔잔한 물가의 소망을 주시는 주님께 감사하는 아침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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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나님! 추수 감사절을 맞이하여 쉼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지혜스럽지 않은 자들의 언행이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까지 많은 피해를 준다는 말씀에 감사합니다. 이 말씀의 거울에 내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도록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말 한마디, 행동한가지를 할때마다 상대의 입장에서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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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지난 일년간 주신 모든 것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고마움으로 나누는 지혜를구하며 미련한 집착에서 멀리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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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올해 힘든 일도 많았지만 그 가운데 다행스러운 일이 더 많았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말씀에서 미련함이 왜 죄인지 알게 해주십니다. 마음의 성령님이 근심하지 않고 기쁨으로 중보하시도록 제가 지혜로운 삶을 살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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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미련함에서 깨어나는 것, 어리석음에서 돌아서는 것, 그릇된 길에서 돌이키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평균적’인 삶, 보통 사람의 사는 모습은 오십보 백보라고 봐도 무난할 것입니다. 내가 나를 볼 때 딱히 어리석다고 여기는 일도 없고, 그러니 지혜롭고 똑똑해지겠다고 노력하려는 일도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볼 때가 있습니다. 누구 앞에서 창피하기 전에 스스로 무지함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한 두해 전부터 부쩍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젊은 세대를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도 컸고, 시대의 변화나 사회의 혼란을 읽을 줄 아는 눈을 갖고 싶기도 했습니다. 철학교수와 온라인으로 하는 강의를 여러 학기 들었습니다. 강의에서 배우는 것도 있었지만 따로 책을 읽고 자료를 찾아보면서도 배웠습니다. 매뉴얼 같은 지식, 내비게이션 같은 공부가 있는가 하면 자기가 길을 내어 걸어가야 하는 공부가 있습니다. 철학은 사유하는 삶을 권하는 공부입니다. 유명한 철학자의 깨달음을 내가 아는 것보다 사유하는 사람으로 사는 삶의 책임과 기쁨을 알게 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찬은 살면서 만나는 사람과 사건을 랜덤한 우연의 연속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성령의 인도라고 여깁니다. 하나님이 주신 세상,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간 속에서 진선미를 찾아 내 것으로 삼기를 원합니다. 불완전 속에서 완전을 고대하게 하시고 아픔 속에서 온전함을 그리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이 나의 자랑입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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