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에 대해 

전도서는 시편, 잠언과 함께 구약의 ‘시가서’에 해당하고 ‘지혜 문학’에 속합니다. 히브리어 성경의 제목은 ‘코헬렛’입니다. 히브리어 ‘코헬렛’은 ‘모으는 사람'(one who assembles)이라는 뜻으로서, 흔히 ‘전도자’ 혹은 ‘설교자’라는 말로 번역합니다. 영어 성경은 Ecclesiastes라는 어려운 이름을 달아 놓았는데, 이것은 전도자를 뜻하는 헬라어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 전도자는 솔로몬으로 소개 되어 있습니다(1:12-2:26). 

잠언은 다양한 격언과 지혜의 말씀들을 기록해 놓았는데, 전도서는 뚜렷한 주제로 생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잠언은 상당히 낙관적인 인생관에 근거해 있습니다. 정직하고 의롭게 살면 이 땅에서 복을 누리게 될 것이며, 죄 가운데 악하게 사는 사람들은 결국 불행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반면, 전도서는 인생에 대해 그리 낙관적이지도, 희망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염세적인 사상을 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자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섭리를 믿습니다. 하지만 “잘 믿으면 틀림없이 복 받는다”고 말하지도 않고, 복 받고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인지에 대해서도 그리 확신이 없습니다. “헛되다”(히브리어 ‘헤벨’)라는 말이 전도서 전체에 36회나 사용되고 있는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의 모든 노력과 성취와 쾌락에 대해서도 별 의미를 찾지 못합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무신론적인 염세주의나 허무주의에 흐르지 않습니다. 모든 인간사 배후에는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도자는, 창조주 하나님의 알 수 없는 섭리에 모든 것을 맡기고 때로 허무해 보이고 때로 무익해 보이는 인생을 관조하며 살아가자고 제안합니다. 

그렇다면 잠언의 인생관과 전도서의 인생관 중에서 어느 것이 맞을까요? 그동안 살아 오면서 관찰한 결과, 인생의 칠할은 잠언이 맞고, 삼할은 전도서가 맞습니다. 둘 중의 어느 하나를 택할 것은 아닙니다. 두 책이 성경 안에 붙어 있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잠언의 인생관을 믿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살기를 힘쓰되 때로 그렇게 되지 않을 때도 있음을 인정하고 현실을 수용하고 겸허히 인정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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