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4장: 산다는 것

해설:

전도자는 계속하여 자신이 관찰한 헛된 일들에 대해 서술합니다. 1절부터 6절까지에서 전도자는 폭력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연약한 이들이 고통 당하는 것을 봅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나아 보입니다. 아니,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때로 세상은 그 정도로 각박하고 잔인합니다.

전도자는 또한 혼자 살면서 일만 하는 사람에 대해 말합니다. 즐기지도 못하고 일하여 재산을 모으는데, 아무리 모아도 그의 성에 차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것도 헛된 일입니다(7-8절). 사람은 홀로 살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과 연대할 때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습니다(9-12절). 

13절부터 16절까지에서 전도자는 신하의 충고를 무시하는 늙은 왕보다 슬기로운 젊은이가 더 낫다고 말합니다. 때로 가난하고 젊은 사람이 왕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왕위에 오르면 그는 완고하고 오만해져서 백성의 원성을 삽니다. 그러니 그것도 헛된 일입니다.

묵상:

전도자는 이 세상의 악한 현실을 보면서 살아서 고통 당하는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낫고, 죽은 사람보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 더 낫다고 말합니다. 청소년기에 읽은 염세주의 철학자의 말이 생각 납니다. 인간의 생명은 한 남성과 여성의 하룻밤의 정사로 인해 아무 의미 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것이고, 태어나서 겪어야 하는 것은 슬픔과 고통 뿐이니, 차라리 태어나지 않거나 태어나서 일찍 죽는 것이 가장 복된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주장에 현혹되어 수 많은 젊은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정작 그런 주장을 한 철학자들은 만수를 누렸습니다. 

현실을 보면서 차리리 죽는 것이 더 낫고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한다면, 상담가를 찾아가 마음의 병을 치료해야 합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곳이야말로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나아 보이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빅터 프랭클 같은 사람의 증언을 보면 그런 상황에서도 살아야 할 의미와 이유를 찾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의미와 보람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의 상황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태어나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 있는 것은 거룩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때에 죽음을 순명으로 받아 들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소망하는 일입니다. 

6 responses to “전도서 4장: 산다는 것”

  1. 모든 개인들의 일상과 인류의 역사와 우주의 운행을 주관하시고 통치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습니다, 주님은 사랑 이시고 좋으시고 구원의 하나님 이신것을 고백합니다, 어렵고 힘들때나 기쁘고 즐거울때나 오직 주님만 붙들고 살기를 원합니다. 부조리의 세상에서 낙심하지말고 소망의 주님만 기리고 감사와 찬양의 삶을 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식구들과 더불어 굶주리고 핍박받고 어둠에서 방황하는 자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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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사춘기 때에 빠지기 쉬운 염세주위와 노년기에 맞는 허탈 감 같은 것들이 우리의 감정 속에 혼재 하지만 주님의 섭리를 조금만이라도 알게 되면 그런 우울증에서 벗어나 하루하루를 신실하게 사는 보람을 느끼게 하여 주십시요.
    순간 순간 다가오는 허탈 감을 주님의 영으로 이겨내며 더 밝은 내일을 위해 기도하며 주님의 날을 기다리게 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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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실때는 그의 인생 길을 걸어가면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목표점을 향하여 살도록 설계하셔서 세상에 내보졌습니다. 즉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움직이느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제소견에 오른대로 살아감으로 모진 풍파와 고난속에서 견뎌내야 하는 인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의 말씀대로 삶을 살아낸다면 때마다 적절한 지혜의 말씀으로 인도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평탄한 인생길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께 매달려서 구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할때에 주님은 그냥외면하시지 않을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주님! 오늘하루도 주님께서 동행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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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예수님, 마음에 죽고싶을 정도의 절망과 고통이 있다면 그들에게 기적을 보여주져서 마음을 바꿔주소서. 겪지않은 남의 고통을 알지못한 채 논하기 두렵습니다. 유난을 떤다 과장한다 비난했던 제 과거 행동들을 회개합니다. 전능한 당신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그들 마음에서 성령님이 일하도록 허락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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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인생의 목적을 찾았는가? 혹은 그 목적없이 사는가? 이 질문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자신의 감정혹은 여러 가지의 기준으로 휩쓸리다가 이리저리 사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다면 고통받으면 차라리 죽는 것이 좋고, 현실 속에서 기쁨을 누리지 못하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목적을 발견하고 그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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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세상 살이에서 손익을 따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 똑똑한 일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습니다. 누구를 나이브 naive 한 사람이라고 말할 땐 그가 사람을 쉽게 잘 믿거나 앞뒤 계산을 잘 할 줄 모르거나 그저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신앙인도 예외는 아니어서 ‘보통’의, ‘정상적인’ 틀에서 벗어난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믿음이 좋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그가 계산을 할 줄 모른다거나 현실 감각이 없다거나 하는 평을 하기도 합니다. 전도자가 경험한 세상은 죽은 자가 살아있는 사람보다 행복한 세상이지만 그리스도인인 나는 거기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아예 세상에 나지 않아서 세상에 가득찬 악을 보지 않는 사람이 낫다고 하는 전도자의 결론은 생명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이 필요 없다는 선언과도 같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꼭 필요하고, 나 또한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도자는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다고 합니다. 혼자서는 원수에게 패하더라도 둘이라면 능히 방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친구가 필요하다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여기서 한 발 나갑니다. 친구가 없는 것 같아도, 외톨이처럼 혼자 된 것 같아도 주님을 믿으면 그는 혼자가 아닙니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친구마저 얼굴을 돌리는 상황에 놓일지라도 주님은 여전히 좋은 친구이십니다. 좋은 자리에 초대를 받을 땐 부부 동반으로 오라거나 싱글인 사람은 누군가와 같이 오라는 뜻에서 ‘플러스 원 plus one’ 이라고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플러스 원입니다. 전도서 4장은 악한 세상에 이기는 법은 세상에 지는 것, 즉 나이브하다는 소리를 들을만큼 세상의 계산법에 틀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늘 그렇듯이 우리의 삶은 양극단 사이 어디쯤인가에 있겠지요. 뱀처럼 지혜롭고 영특한 쪽으로 기울기도 하고,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순진한 쪽에 가깝기도 합니다. 어느 때나 어디서나 주님이 친구가 되어 주신다는 믿음으로 삽니다. 나의 플러스 원 주님과 어디든 같이 가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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