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5장: 차원이 다르다

해설:

전도자는 종교적인 면에 대해서 조언을 줍니다. 제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의로운 삶입니다. 따라서 제물을 바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우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1절). 전도자는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으니”(2절)라고 말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큰지를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그것을 기억한다면 허황된 상상을 하지 않을 것이고 함부로 입을 열어 망령된 말을 쏟아 놓지 않을 것입니다(3절, 7절). 특별히 하나님 앞에서 서원하는 일을 조심해야 합니다. 서원을 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을 지켜야 합니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서원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4-6절). 

전도자는 현실 세상으로 눈을 돌려 권력자들이 행하는 불의에 대한 생각을 전합니다. 권력자가 법과 정의를 짓밟는 모습을 보면 놀라고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을 감독하고 심판할 더 높은 권력자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최고의 심판자로서 모든 것을 바로잡으실 것입니다(8-9절). 

다음으로 부에 관한 가르침이 이어집니다. 부자 되는 것을 목적으로 삼으면 그 사람은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10절). 돈이 많다고 해서 하루에 열 끼, 스무 끼를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도 이상의 돈은 다만 눈요기 거리에 지나지 않습니다(11절). 부해서 좋은 것이 많다지만, 가난해서 좋은 것도 있습니다(12절). 때로 재산이 많아서 해를 입는 경우도 있습니다(13절).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인간은 누구나 맨몸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14-17절). 

결론은 하나님이 허락한 기간 동안 매일 하루치의 수고를 감당하고 하루치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하게 하고(마 6:34), 매일 주어진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18-20절).   

묵상:

흔히 근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차이가 날 때 “클라스가 다르다”고 표현합니다. 비행기의 1등석은 이코노미 클라스와 입구도 다르고 공간도 다르고 서비스도 다릅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클라스’만이 아니라 ‘차원’이 다릅니다. 그분은 전능하시고 우리는 한계적입니다. 그분은 영원하시고 우리는 찰나적입니다. 그분은 전지하시고 우리는 무지합니다. 그분은 온 우주보다 크시고 우리는 우주의 먼지와 같습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으니”(2절)라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하늘”은 하나님의 차원을 말합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은 차원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예배를 드린다는 말은 그런 분 앞에 서는 것입니다. 예배의 시간만이 아니라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그분의 현존 앞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떠오르는 생각이라고 해서 마음 속에 품고 즐겨서는 안 되는 것이고, 나오는 말이라고 함부로 내뱉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바로잡으시고 심판하시는 창조주의 면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삽니다”(고후 2:17, 나의 직역)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라면, 권력자나 부자가 된다 해도 그것에 사로잡히지 않고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갈 것입니다. 

5 responses to “전도서 5장: 차원이 다르다”

  1. 창조주와 피조물을 비교하는 어리석은 존재입니다. 자족하지못하는 탐욕과 권세를 부러워하는 비천한 티끌입니다. 제물을 드리는 제사보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예배를 원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 닮아가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식구들과 함께 오늘의 생각, 언어, 행동과 삶이 주님께 드리는 거룩한 산제물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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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걱정이 많으면 꿈이 많아지고 꿈이 많으면 헛된 것이 많고 말이 많으면 어리석은 소리가 많아지므로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며 두려운 줄 알고 살라는 전도자의 조언을 음미해 봅니다.
    세상에서 애쓰고 수고 한 것으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며 그날 그날을 기쁜 마음으로 성실하게 살기를 기원하며 주님의 날이 오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에 대한 어리석은 생각에서 벗어나 내일 일은 내일 하나님이 해결해 주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붇들고 오늘 이시간에 충실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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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주님 오늘하루도 주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시간속에서 주신 재물과 주신 능력으로 허황된을 삶에 눈 돌리지 않고 거룩하게 최선을 다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시며 성령께서 동행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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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오늘 하루도 주님의 절대적인 임재 안에서 해야할 일만 하고 해야할 말만 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능력이 아닌, 주님의 능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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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월드컵 열기가 일상에 새로운 기운을 넣어주고 있습니다. 동네 조기 축구부터 유럽 프리미어 리그 축구까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공을 찰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 월드컵은 월드 클래스 축구팀의 잔치입니다. 32팀이 16팀으로 추려지는 과정에서 생기는 이변도 월드컵의 자랑입니다. 예측한대로 되지 않으니까 이변입니다. 16강에서 8강으로 줄어들면 ‘이변’ 또한 줄어듭니다. 클래스의 차이가 눈에 보입니다. 심판이 백퍼센트 공정하지 않은 것 같아도 경기 결과를 받아 들입니다. 상대팀에게 유리한 판정을 내리는 심판도 경기의 일부처럼 여기고 그저 뛰어야 하기도 합니다. 8강을 통과해 4강이 되면 챔피온이나 4등이나 실력은 거의 같습니다. 실력인지 운인지 구별도 안 되고, 체력인지 정신력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경기가 펼쳐집니다. 스포츠에 열광하는 까닭은 인간 드라마의 요소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가장 인간적으로 보이는 때가 스포츠 경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에게 스포츠는 종교라는 말을 합니다. 하나님/신께 집중해야 하는 에너지를 스포츠 게임에 쏟는다는 뜻에서 하는 말일 수도 있고, 유한한 시간 자원을 놓고 종교와 스포츠가 경쟁을 벌인다는 말 같기도 합니다. 전쟁 대신 월드컵 같은 고가의 행사로 국가간 우열을 가리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강림절 둘째 초가 켜졌습니다. 평화의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평화는 잠깐이고 불화는 끝없이 계속 되는 것 같지만 마음의 눈으로 보면 그 반대입니다. 괴로움과 어려움이 파도처럼 연속적으로 몰려 오는 것 같지만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데 이것이, 이 삶이 ‘늘 평화’ 아닐까요. 17절에서 전도자는 “평생 근심 중에 식사를 하고 크게 좌절하고 병들고 분노한다”고 말합니다. 뒤이어 18절에서 그는 “먹고 마시며 자신이 하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이 행복이요 적절한 일이다. 그것이 인생의 몫이기 때문이다”라고 정리합니다. 내 인생의 몫이 좋은 식사를 하고 좌절하지 않으며 병도 안들고 분노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월드컵 같은 대회는 꿈도 꾸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안하면 실패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내 인생의 몫이라고 고백한다면 희망, 평화, 기쁨, 사랑이 이미/ 또/ 앞으로 내 안에 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 안에 살아감을 평화로 받아 들입니다. 이기고 지는 일에 에너지를 쓰던 데서 눈을 돌려 다시 주님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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