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6장: 인생에는 의미가 있다 

해설:

전도자는 한 사람의 예를 듭니다. 그 사람은 대대손손 누릴 만한 부와 명예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사람은 그 부와 명예를 누리지도 못하고, 죽고 나서 제대로 묻히지도 못합니다. 그가 모은 재산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누립니다(1-3절). 전도자는 그 사람보다 차라리 죽은 상태로 태어난 아기가 더 낫다고 말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고 죽는다면 그보다 더 비참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4-6절).   

전도자는 인간의 욕망은 물질로 만족시킬 수 없으니(7절), 욕심에 사로잡혀 살기보다는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편이 낫다고 말합니다(9절). 그것이 “그림자처럼 지나가는 짧고 덧없는 삶”(12절)을 그나마 의미 있게 사는 지혜입니다. 

묵상:

인생사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가 자주 범하는 잘못은 소수의 특정한 상황을 일반화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을 ‘일반화의 오류’라고 말합니다. 전도자가 1절부터 6절까지에서 예로 든 사람은 찾아보기 힘든 사람입니다. 특별한 상황에 있는 한 사람의 예를 들면서 “인생은 의미 없다” 혹은 “차라리 죽어서 태어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일입니다. 설사 그런 사람이 있다 해도, 죽어서 태어난 사람보다 불행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 말을 하는 동안 전도자는 지나치게 침체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워싱턴 DC에 있는 어린이 전문 병원에 가서 그곳에서 치료 받고 있는 어린이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복도를 지나면서 병동에 있는 어린 아이들을 보면,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어떻게 저런 어린 생명들이 저런 고통을 겪도록 내버려 두시나?”라는 의문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의문에 사로잡히면 우리는 너무도 쉽게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은 랜덤이다. 인생에는 아무 의미도, 목적도 없다”고 결론 짓게 됩니다. 이것도 역시 일반화의 오류 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창조 가운데 사는 죄에 물든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의문을 가지게 하고 그분의 섭리를 의심하게 하는 상황은 우리의 죄로 인해 빚어진 것입니다. 인간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꺠졌기 때문에 자연 재해, 질병과 장애, 사회적 부조리 같은 것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죄보다 하나님의 선한 창조가 더 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인생은 살 만하며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따라서 죄로 인해 발생한 특수 상황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 상황이 있음을 알지만,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 질서를 감사하고 찬송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6 responses to “전도서 6장: 인생에는 의미가 있다 ”

  1. 사랑과 구원의 하나님으로 이미 오셨고 성령의 주님으로 항상 같이 하시고 임마누엘 하나님으로 오시는 주님을 잊지않기를 원합니다. 세상살이에서 함께하시는 주님만 간직하고, 자족하며 감사하며 베풀고 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소망의 하나님을 믿음의 식구들과 간절히 기다리는 대림절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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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전도자의 특수한 경험을 통해 부정적으로 세상을 비판하는 오류를 통해 그 뒤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진실을 받아들이는 지혜를 구합니다.
    짧고 덧 없는 인생이아니라 주님의 섭리아래 은혜로 주어진 값진 인생을 성실하게 살면서 주님을 향한 초점이 희려지는 일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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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요즈음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가?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살아계신다면 한 생명이 천하보다 낫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러 전쟁으로 인하여 수많은 생명이 사라졌고 건물이 파괴되어 혹독한 겨울을 나기가 어려운 지경에 있는데 어찌하여 전쟁을 멈추지 않으시는지요? 하나님의 섭리를 어떻게 알 수 있으리요. 분명한 것은 시작과 끝이 있기에 언젠가는 멈출 것이리라 믿습니다. 이 전쟁을 통해서 모든 민족에게 주시는 메세지가 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그 메세지를 알고 대처할 수 있는 지혜의 예수님 어서오셔서 가르켜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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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편협한 사고와 좁은 생각으로 크신 하나님을 판단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비판적인 사고는 때로는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데 깊게 인도할 수 있으나 그러한 사고로만 편협하게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차원이 다른 하나님을 내가가지고 있는 차원의 지식과 사고로 판단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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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전도자는 6장을 시작하면서 “흔히 일어나는 또 다른 악을 보았다” 라고 합니다만 그 말이 좀 이상합니다. 2절 이하의 상황은 흔히 일어나는 보통의 일이 아닙니다. 또 그는 하나님이 이런 허무한 일이 일어나도록 하셨다고 하니 결국 그런 악들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일이라는 주장을 하는 셈입니다. 글쎄요… 악의 기원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지식이 없지만 창조주 하나님 안에 선 뿐만 아니라 악도 있다는 설명이나, 악은 독립적으로 원래부터 있어온 대항 세력이라는 설명 그 어느 것도 만족스럽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내가 한 번 그 뜻을 파 보겠다는 의지가 생기지도 않습니다. 창세기 초반부도, 욥기도, 또 왕들의 연대기도 악에 대한 의문이 커지게 만들었지 해소 시키지 않았습니다. 악이 산처럼 커다란 암석 덩어리라면 우리는 매일 암석에서 떨어진 돌덩어리나 돌가루에 맞으면서 사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림자와 같이 허무한 며칠 (12절)”에 불과한 인생을 위해 우리가 빚어졌고 태어난 것이라면 그런 하나님은 참 잔인한 분입니다.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가련한 인간을 위해 생명을 내어준 예수님은 참 바보입니다. 거기까지만 보면 그렇습니다. 악의 덩치만 보면 그렇습니다. 성서는 전도서 6장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악의 위세나 승리로 계속되지 않습니다. “흔히 일어나는” 일은 악이 아니라 선입니다. 흔히 일어나는 일은 아이들의 웃음입니다. 틴에이저들의 어색함입니다. 어른들의 인내입니다. 흔히 일어나는 악을 생각한다면 크리스마스를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선물을 주고 받을 일도 없습니다. 투표를 하러 갈 일도 없고 맛있는 것을 먹겠다고 줄을 설 필요도 없습니다. 강림절에 읽는 전도서는 햇빛 좋은 날 “그래도 모르니까”라며 우산을 들고 나가는 사람처럼 부조리해 보입니다. 악은 있습니다. 매일 우리를 괴롭힙니다. 언제 커다란 불행이 닥칠 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소망과 평화를 마음에 간직하고 삽니다. 오늘도 예수님을 생각하며 살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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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저는 일반화의 오류에서 자유롭기가 힘든것 같습니다. 제 머리로는 세상일을 다 이해하기 어렵고 그래서 일반화를 해서 그나마 어떤 세상법칙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일반화를 하다보면 자신이 초라해지기도하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열심히 답을 찾아 끼워맞추려 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주님이 보시는 방향으로 저의 시선을 맞추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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