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9장: 지혜를 따라 사는 이유

해설:

앞 장에서 전도자는 악인이 의인의 상을 받고 의인이 악인의 벌을 받는 것 같은 상황에 대해 고민을 토로한 바 있습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 끝에 모든 것은 하나님의 처분에 의한 것이라는 결론이 이릅니다. 인간으로서는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습니다(1절). 크게 보면, 의인이나 악인이나, 지혜자나 어리석은 자나 같은 운명(죽음)을 타고 난 셈입니다(2절). 전도자는 그것이 가장 부조리한 일이라고 말합니다(3절). 죽음은 모든 것을 헛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4-6절). 

그렇기 때문에 살아 있다는 것은 어쨋거나 좋은 일입니다. 영원의 차원에서 보면 한 사람의 일생은 헛되고 덧없어 보이지만, 그 하루하루는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동안에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고, 서로 사랑하며, 함께 기쁨을 나눠야 합니다(7-10절).  

전도자는 세상사와 인생사가 공식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언급합니다. 선하게 산다고 해서 복 받는 것도 아니고, 악하게 산다고 해서 벌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물고기가 잔인한 그물에 걸리고 새가 덫에 걸리는 것처럼, 아무 이유도 없이 불행이나 재앙을 만나기도 합니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습니다(11-12절).

전도자는 충격적인 일 하나를 더 소개합니다. 어떤 성읍이 포위되어 함락될 위험에 빠져 있을 때 가난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이 그 성읍을 구합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을 오래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높임 받을 줄 알았는데, 그 사람이 가난하다 해서 무시 당한 것입니다(13-16절). 지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17-18절).   

묵상:

“인간은 왜 윤리적으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철학자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 답합니다. 하나는 “그렇게 사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라는 설명이고, 다른 하나는 “윤리적으로 살아야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설명입니다. 앞의 것을 ‘존재론적 윤리’라 부르고, 뒤의 것을 ‘목적론적 윤리’라고 부릅니다. 

잠언은 지혜에 대해 목적론적으로 접근한다 할 수 있습니다. “왜 지혜를 알아야 하고 지혜를 따라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잠언은 “그것이 참된 행복을 얻는 길이기 때문이다”라고 답합니다. 반면, 전도자는 지혜에 대한 목적론적 이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평생토록 지혜를 연구하고 지혜를 따라 살아 보았지만 지혜가 약속하는 행복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지혜가 무용 해지는 상황도 자주 만났다고 말합니다. 인생사를 지켜 보니, 지혜를 따라 사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별로 다를 바 없더라고 말합니다. 

이 결론은 두 가지의 선택지 앞에 우리를 서게 합니다. 하나는 “케 세라 세라”(될대로 되라) 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되든 상관 없이 나 좋을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비록 지혜가 당장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해도 그때그때 지혜를 분별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최종적인 결정을 하나님께 맡기고 비록 제한적이고 불분명하지만 현재 아는만큼의 지혜를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전도서는 우리에게 지혜를 존재론적으로 받아 들이게 합니다. 지혜를 찾고 지혜를 따라 살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옳기 때문입니다.  

3 responses to “전도서 9장: 지혜를 따라 사는 이유”

  1.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을것이고 영생을 얻을것이라는 예수님의 약속에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죄에 물들어 있는 부조리의 세상에서 주님을 경외하는 진정한 지혜를 원합니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도 마음 아픈 불협화음이 있지만 모든것을 항상 주관하시는 주님을 깨닫고 허락하신 어려움을 주님과 동행하며 감사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식구들과 더불어 사랑과 공의로우신 임마누엘 하나님을 간절히 소망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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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어제는 모처럼 박물관 봉사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가게 스케쥴 때문에 매주 한 번씩 도슨 docent 봉사를 하는 것이 어려워 정기 봉사자들이 못 나올 때 subbing 을 하는 걸로 바꿨습니다. 작품 특성과 동선 등을 감안해 월별로 짜놓은 스케쥴을 따라 안내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5학년 학생들과 담임 교사를 인솔하는데 첫번째 갤러리를 잘못 찾았습니다. 전시관의 방 번호만 외웠을 뿐 동서남북 4개 플러스 특별전시관 5개 빌딩 중에서 어느 빌딩인지 단단히 확인하지 않은 채 시작한 탓입니다. 폰으로 안내 스케쥴을 확인할까 생각도 했지만 학생들이 처음부터 어찌나 잘 따라오는지 시간이 아까와서라도 중단 없이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머리 속으로 준비해 두었던 해설은 무용지물이 되고 전혀 다른 작품들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계획한 것과 완전히 다른 안내를 하게 된 것입니다. 종교와 교회미술사 관련물 전시관에 ‘우연히’ 들어갔는데 평소에 클래스에서 교회관련 대화가 있었는지 학생들이 매우 관심 있어 했습니다. 게다가 선생님이 ‘느닷없이’ “Silent Night 고요한 밤”을 부르자고 하니까 비록 음은 조금씩 어긋났어도 조심스럽게 합창하는 소리가 그 갤러리와 잘 어울려서 같이 있던 일반 관람객들 얼굴에 미소가 번져 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경로이탈한 안내를 마치고 헤어지는데 학생들은 더 보고 싶고, 더 있다 가고 싶어하는 눈치가 역력했습니다. 5학년이니까 게티 뮤지엄 방문이 처음이 아니었는데 이번 견학은 정말 재미있고 좋았다고 기뻐들 했습니다. “발이 빠른 자라고 해서 경주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며 강한 자라고 해서 전쟁에서 이기는 것도 아니다 (11절)” 구절을 읽는데 어제 일이 생각났습니다. 봉사마저도 내가 잘 하니까 보람 있는 일이 되는 것인양 느끼는 착각에서 벗어난 하루였습니다. ‘나’에게서 벗어나도 괜찮구나…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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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지나온 인생길을 바라보면 나의 계획과 나의지혜대로 이루어진것은 없습니다. 다만 가족과 가정을 위해 계획을 세우고 최선을 다해 노력한 만큼 이루어 졌슴을 느낍니다. 만약 그 계획이 하나님 마음에 합하지 않았거나 나자신만을 위한 계획과 노력이었다면 과연 오늘의 내가 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주님! 주신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해 자족하면 살아내게 하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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