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서 4장: 나의 누이, 나의 신부여!

해설:

4장은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을 칭송하는 노래입니다. 먼저, 그는 그 여인의 신체를 하나씩 짚어 가면서 그 아름다움을 찬미합니다. 그 여인이 전체적으로 아름답다는 감탄으로 시작하여 눈동자로부터 머리채(1절)로, 치아와 치열(2절)로, 입술과 볼(3절)로, 목(4절)으로, 가슴(5-6절)으로 내려 오면서 비유를 사용하여 그 아름다움을 묘사합니다.마지막에는 다시 전체적인 아름다움을 칭송합니다(7절).

남자는 그토록 아름다운 여인을 아직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로서는 손에 닿을 수 없는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그 여인에게 그곳에서 나오라고 부릅니다(8절). 남자는 계속하여 그 여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의 감정을 표현합니다.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9절, 10절, 11절, 12절)라는 표현 안에는 여인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12절부터 14절까지 나오는 비유들은 여인과의 성적 합일에서 얻은 기쁨을 표현합니다. 

16절은 여인의 노래입니다. 여인도 역시 사랑하는 남자가 찾아와 사랑을 나누게 되기를 갈망합니다.

묵상:

“나의 누이, 나의 신부여”라는 표현은 1980년대 한국에서 베스트셀러로 사랑받았던 루 살로메의 전기 <나의 누이, 나의 신부여>를 생각나게 합니다. 러시아에서 출생하여 독일에서 활동한 루 살로메는 당대의 유명인들과 숱한 염문을 뿌리며 문학과 음악과 심리학 발전에 큰 영감을 준 여성입니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14세 연상인 그에게 한눈에 매료 되었습니다. 그가 살로메에게 헌정한 시 중에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시가 있습니다.

   내 눈 감은 뒤에도 당신을 볼 수 있어요

내 귀 막더라도 당신의 말 들을 수 있어요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 없어도 당신에게 호소할 수 있어요 

내 팔 꺾더라도 손으로 잡을 수 있어요

손으로 잡듯이 가슴으로 당신을 잡을 수 있어요

심장이 멎더라도 머리는 뛰겠지요

내 머리에 당신이 불을 던지면 피로써 당신을 껴안겠어요 

살로메에 대한 릴케의 사랑이 얼마나 강렬 했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일생을 살면서 그렇게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도 축복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한 순간입니다. 살로메와 릴케의 뜨겁던 사랑도 결국 식어지고 아픈 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이토록 사랑할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축복이지만, 그것이 잠깐 지나가는 열병이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 것으로는 우리 존재 안에 있는 깊은 구멍을 메울 수 없습니다. 인간적인 사랑이 강렬 할수록 그 사랑을 잃는 아픔은 그만큼 더 큽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에게 눈을 돌립니다. 우리가 앓고 있는 사랑의 열병은 오직 그분의 사랑으로만 채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릴케가 살로메에게 헌정한 시에서 “당신”을 하나님으로 바꾸어 다시 읽어 봅니다. 그것을 이 아침의 고백으로 하나님께 드립니다.  

3 responses to “아가서 4장: 나의 누이, 나의 신부여!”

  1. 추하고 연약하고 부족한 인생입니다. 그러나, 염치가 없이, 영원하고 완전한 사랑의 혼신이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하다고 인정하시는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믿음의 가족들과 더불어 예수님의 향기가 세상에 번지는 삶을 살아내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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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사랑의 종류는 에로스(Eros), 스토로게(Storge), 필리아(Philia), 아가페(Agape)등으로 분류한다고 합니다. 이중에 아가페사랑은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자신을 희생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영원합니다. 그사랑으로 죄의 사슬을 끊어 자유케 하심으로 날마다 주님과 만나는 은혜를 주심에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그은혜에 힘입어 오늘도 주신하루를 거룩하고 복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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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미국에 친척이 없으니까 추수감사절이나 성탄절, 설 같은 명절에 모이는 식구는 딸네와 아들, 우리 내외 뿐입니다. 사돈댁의 할머니와 사돈 내외분도 다 엘에이 근교에 살아서 딸과 사위가 명절에 양쪽 집을 방문하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해마다 서로 사정을 봐가며 명절 당일이 아니면 앞뒤로 스케쥴을 잡습니다. 같은 캘리포니아에 살아도 북가주에 살면 비행기로 움직여야 하는데 아무리 엘에이 트래픽이 심하다고 해도 한 두 시간 운전하면 만날 수 있는 거리이니 그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랫만에 식구들을 본다는 기대감은 서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사는가 하는 거리와 관계가 있지만 장거리 여행의 피로가 명절 스트레스에 원인이 되는 것도 봅니다. 사람도 물건도 이동하느라 바쁘고 분주한 요즘 같은 때일수록 마음을 차분히 가지기를 원합니다. “분위기에 휩쓸려” 사는 것을 경계하는 까닭은 제대로 보고 판단하는 시간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런 중에 내리는 결정은 후회할 일이 되기도 합니다. 분위기 파악을 잘 해서 적당하게 행동하는 센스도 있어야 하고, 그렇다고 이리저리 남들 하는대로 따라 하는 것도 금물이니 흔히 하는 말처럼 “산다는 건 참 어려운 일”임이 분명합니다. 마음이 괜히 급해지는 연말에 아가서의 사랑 노래를 읽자니 한여름 뙤약 볕에서 얻어 먹는 물 대접에 나뭇잎을 올려준 지혜와 만난 기분이 듭니다. 단숨에 들이키고 싶어도 나뭇잎 때문에 속도조절을 하게 되듯, 한 사람을 향해 빛의 속도와 열기로 온 신경을 쏟던 ‘첫’ 사랑의 처음 순간을 되짚어 보게 됩니다. 그 사랑의 대상이 사람이든, 신앙의 싹을 틔운 하나님이든, 아가서를 읽으며 그 때로 돌아갑니다. “사랑 때문에 병이 난 (8절)” 그 때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는 거기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향한 나의 사랑은 백퍼센트 완벽하거나 순수하지 않을지라도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완전합니다. 주님은 나를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럽다고 하십니다. 나의 사랑하는 이, my beloved! 라고 부르시는 음성을 다시 듣습니다. 처음처럼, 또, 매일 듣기를 원합니다. 멀리 살다 만나야만 반가운 것은 아닐 것입니다. 주님을 매일 묵상하지만 그분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저 반갑고 감사합니다. 예루살렘 아가씨들이여, 이분이 저의 친구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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