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서 8장: 사랑의 불길

해설:

여자는 사랑하는 님과 함께 하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 하면서 차라리 가족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상합니다(1-2절). 그랬다면 헤어질 이유도 없었을 것이고, 집에 함께 있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도 남매 사이의 성관계는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여자가 이런 상상을 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님과 함께 있고 싶은 갈망 때문입니다. 그 상상 속에서 여자는 남자와 사랑을 나눕니다(3절). 여자는 마음껏 사랑하기까지는 깨우지 말아 달라고 부탁합니다(4절).

친구들은 남자가 여자를 안고 달려오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여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님을 깨웠다고 말하며, 자신을 님의 마음에 새겨 달라고 청합니다. 그 사랑의 불길은 다른 무엇으로도 끌 수 없습니다(5-7절). 친구들은 그 여인이 사랑을 나누기에 육체적으로 성숙해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8-9절). 그러자 여자는 자신은 충분히 성숙했으며 자신에게 있는 포도밭(성숙한 몸)을 사랑하는 님에게 주겠다고 답합니다(10-12절). 그 때 남자는 다시 여인에게 그의 목소리를 들려 달라고 청합니다(13절). 그런가 하면 여자는 자신에게 빨리 달려와 달라고 남자에게 청합니다(14절).

묵상:

성경에서 문학가들에게 가장 자주 언급된 구절 중 하나가 6절(“사랑은 죽음처럼 강한 것, 사랑의 시샘은 저승처럼 잔혹한 것, 사랑은 타오르는 불길, 아무도 못 끄는 거센 불길입니다”)입니다. 한 번이라도 사랑의 열병을 앓아 본 사람이라면 이 구절을 읽으며 공감할 것입니다. 사랑의 불길에 자신의 몸을 던지는 사람도 있고, 사랑의 시샘으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불이 기차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기도 하고 거대한 산을 불태우는 재앙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사랑은 삶에 강력한 동력이 되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사랑의 불길은 내버려 두어서도 안 되고 꺼뜨려서도 안 됩니다. 사랑이 꺼지는 것은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사랑의 불길이 계속 타오르게 하는 것입니다. 때로 강하게, 때로 약하게, 정해진 울타리 안에서 계속 불타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그러한 절제력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 안에서 사랑의 갈망이 채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으로 채워져야 할 사랑의 갈망이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에게서 혹은 다른 대상을 통해 그 사랑을 채우려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내면에 채워지면 우리는 더 이상 사람에게서 얻는 사랑에 목을 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안에서 꺼지지 않는 불길이 되어 생명의 동력이 되어 줄 것입니다.      

5 responses to “아가서 8장: 사랑의 불길”

  1. 하나님의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하고, 주님의 거룩한 발 아래에서 굴복하는 죽음입니다. 주님을 믿는 모든사람들의 죽음을 십자가의 사랑으로 정복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주님 에게로 향한 사랑이 주님의 사랑으로 점점 닮아 가기를 원합니다. 믿음의 가족들과 함께 온세상의 죄를 십자가에서 지시고 부활하시고 다시오시는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는 대림절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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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성탄에서 싹이 터서 십자가의 대속으로 완성되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온전히 녹아내리기를 기도하며 감사의 하루로 이끌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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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나님! 창조의 섭리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내가 주님안에 주님이 내안에 계셔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통치하심으로 어떤 어려움과 고난의 시간이 닥쳐올찌라도 허락하신 삶을거룩하게 살아냄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하루가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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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본문 6장에서 시인은 자기를 옥새같이 마음에 새기고, 도장같이 팔에 새기라고 말합니다. 태투 tattoo 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잠시 떠올려 보았습니다. 시인이 노래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에 꼭꼭 담아두는 것을 옥새와 도장에 비유한 것이지만 실제로 몸에 그림을 그리는 문신은 비유를 형상화한 작업입니다. 가게를 시작하던 10년 전과 지금 달라진 것 중에 태투보고 더이상 놀라지 않는 나 자신도 들어갑니다. 10년 전에도 태투는 흔했습니다. 한국 영화에서 대중 목욕탕 안에 앉아 있다 일어나는 남자들 등에 커다란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보여주면 그들이 조직폭력배라는 것을 말합니다. 일반인에게 태투는 갱에 소속되어 있음을 말하는 은어처럼 되어 있습니다. 태투에 대한 인상이 좋을 수가 없지요. 손님한테 태투가 많으면 경계심도 덩달아 많아지곤 했습니다. 9.11 테러 사건 이후 태투 산업이 엄청나게 발전했다는 기사를 오래 전에 읽었습니다. 9.11 현장의 수색 작업에서 피해자 몸의 문신이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 태투의 인기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우리 시대의 반영인 것 같습니다. 손님 몸에 그려진 그림을 “뚫어지게” 볼 수는 없어서 무엇을, 왜 그렸는지 알 수 없지만 얼핏 보아도 알 수 있는 어린 아기의 얼굴, 태어나고 죽은 날짜, 편히 쉬세요 할머니 (이름), 인생의 모토, 성경구절, 만화 캐릭터…등등은 흔한 편입니다. 태투는 “잊지 않겠습니다”의 결의를 담는 것이기도 합니다. 태투로 남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라는 것을 태투를 보며 확인합니다. 시인은 마음과 팔에 연인을 새긴다고 노래한 뒤에 곧이어 사랑을 찬미합니다. 사랑인지 집착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강렬한 어조로 노래합니다. 그리고 “어린 누이”의 몸 같이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사랑을 말하고 솔로몬이 가졌던 비옥한 포도원도 설명합니다. 아가서는 동산에서 기다리는 여자와 그녀에게 달려 오는 남자의 이미지로 끝납니다. 자꾸 에덴 동산이 떠오릅니다. 에덴이 낙원인 것은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구나…싶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사랑을 우리가 받아 이어갑니다. 나의 마음에, 팔에, 사랑을 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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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성탄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저희를 뜨겁게 사랑하신 예수님. 그는 사랑을 위해 고통과 명예에 관한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놀라운 결정을 하셨습니다. 보잘것없는 저를 이리 사랑해주시니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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