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이 시편은 다윗의 시로서, 곤경에서 올리는 탄원의 기도입니다. 다윗이 처한 곤경에 대해서는 이 시편의 여러 곳에서 암시되어 있습니다. 그는 지금 “까닭도 없이 미워하는 자들”과 “거짓 증거하는 원수들”(4절)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어리석음”과 “죄”를 잘 알고 있습니다(5절). 곤경에 빠진 원인이 자신에게 없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는 “금식하며 울었고”(10절) “베옷을 입고서 슬퍼”(11절)했습니다. 하지만 원수들은 그의 행동을 비웃고 조롱합니다(12절). 그뿐 아니라, 그와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까지 그로 인해 조롱 받고 있습니다(6절). 이 상황에서 다윗은 “목까지 물이 차는”(1절) 것 같고 “깊고 깊은 수렁”(2절)에 빠진 것 같은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또한 “친척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어머니의 자녀들에게마저 낯선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8절).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합니다(1-3절, 13-18절). 간절한 기도로 인해 “목이 타도록 부르짖다가” 지쳤고 “눈이 빠지도록”(3절) 하나님을 기다렸지만,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다윗은 자신은 고통 받더라도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자신 때문에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 달라고 간청합니다(6절). 자신이 죄로 인해 받아야 할 몫을 다 받은 후에는 한결같은 사랑으로 구원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반기시는 때”(13절)는 죄값을 다 받은 후를 의미합니다.
이어서 다윗은 원수들에 대한 저주의 기도를 올립니다(22-29절).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악담을 기도로써 원수들에게 퍼붓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 하시어 원수들을 징계하시면 찬양으로 그분을 높이고 감사의 노래로 그분의 위대하심을 전하겠다고 약속합니다(30-36절). 하나님께서는 소나 황소를 바치는 것보다 마음 다한 찬양을 더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31절). 그분은 “온유한 사람들”과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32절)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33절)을 살피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렇기에 다윗은 온 땅을 향해 오직 하나님 만을 찬양 하라고 권면합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35-36절).
이 시편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 시편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신약의 저자들은 예수님과 관련하여 이 시편의 구절들을 자주 인용했습니다(마 27:34, 48; 막 15:36; 눅 23:36; 요 2:17; 15:25; 19:28; 행 1:20; 롬 11:9-10; 15:3). 이 시편이 묘사하고 있는 상황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것이지만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에게 가장 집약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주님의 종”(17절)이라는 표현은 이사야 53장에 예언된 고난의 종을 생각하게 합니다.
묵상:
시편을 읽다 보면 저주의 기도를 가끔 만납니다. 시편 109편이 대표적입니다. 69편에도 악담의 기도(22-29절)가 나옵니다. 시편의 기도를 ‘모범 기도문’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저주 기도를 만날 때 당황합니다. 원수까지도 용서하라고 하신 하나님 앞에서 이런 기도를 드리는 것은 옳지 않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편은 기도자들이 실제 삶의 현실에서 드린 기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저주의 기도를 읽으면서, 믿는 이들도 때로는 이처럼 절박한 상황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 기도를 통해 우리의 감정에 정직하게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마음 속에는 원한이 들끓고 있는데 하나님 앞에서 그렇지 않은 척 행동하는 것은 부질 없는 일일 뿐 아니라 해로운 일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속 감정을 숨겨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있을 때 상담가를 찾는 이유는 마음의 쓰레기를 꺼내 보일만한 안전한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상담가 보다도 더 안전한 분입니다. 마음에 용암처럼 들끓고 있는 분노를 하나님 앞에 쏟아 놓는 것은 가장 확실한 치유와 회복의 힘이 됩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그 사람은 얼마 후 원수를 향해 타오르던 불이 꺼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은 진리와 정의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거대한 계획 속에서 온 우주를 다스리시며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그런 하나님께 우리는 우리 각자의 상황에서 우리 각자의 관심사를 기도로써 올려 드립니다. 그분은 우리의 작은 기도를 그분의 큰 계획 안에서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어떤 기도는 간구한 그대로 응답해 주시고, 어떤 기도는 간구한 것을 거절하심으로 응답하십니다. 우리의 눈에 거절처럼 보인다 해도 하나님의 큰 계획 안에서는 그것도 응답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분의 큰 계획 안에 있으면 우리의 거절된 기도 역시 축복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감정에 정직하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기도 중에 말한 그대로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기도 중에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실제로 영어 속담에 “무엇을 기도할지 조심하라. 그대로 이루어질지도 모르니”(Be careful what you ask God for you just might get it)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잡신 수준으로 깎아 내리는 일입니다. 우리가 좋은 것을 구해도 하나님은 거절하실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원수를 향하여 저주의 기도를 드려도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거절하실 수 있습니다. 진리와 정의와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받으셔서 응답할 것과 거절할 것을 분류하십니다. 그렇게 정직하게 기도할 때 기도 과정을 통해 우리의 마음은 정화되고 변화되어 마침내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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