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0편: 구원을 호소하는 이유

해설:

이 시편은 다윗의 탄원기도입니다. 학자들은 이 시편이 원래 71편과 하나였는데, 편집 과정에서 분리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하지만 처음(1절)과 끝(5절)이 같은 간구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수미쌍관법) 독립된 시편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다윗은 그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2)로부터 위협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가 재난 당하는 것을 기뻐하며 깔깔대며(개역개정 “아하, 아하”) 조롱합니다(3절). 그들의 공격으로 인해 다윗은 위협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청합니다. 그가 하나님께 구원을 청하는 근거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 너그럽게 보시고 나를 건져 주십시오”(1절)라고 기도합니다. 그는 “주님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4절) 구원을 경험하고 하나님께 “주님은 위대하시다”(4절)라고 찬양하게 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은 지금 곤경에 처해 있는 자신을 구해 주셔야 합니다. 다윗은 이런 근거에서 “빨리” “지체하지 말고”(5절) 자신을 구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묵상:

때로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의 증거가 됩니다.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하나님의 존재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신실하게, 진실하게, 철저하게 의지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나면 그것 보라고,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고 조롱합니다.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생은 랜덤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아픕니다. 자신이 고통 당하는 것은 견딜 만한데, 자신으로 인해 하나님이 모욕 당하는 것은 참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 곤경에서 구해 주셔서 자신을 지켜 보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판단이 언제나 진실은 아닙니다. 믿는 이들이 불행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도 아니고,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도 아닙니다. 성숙한 믿음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행과 불행을 초월하여 언제나 하나님의 존재와 다스림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섭리 안에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 하기도 하시고 때로 징계 하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있음에도 좋은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 하기도 하십니다. 따라서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해서 마냥 좋아할 것도 아니고 불행을 당하고 있다고 하여 하나님의 존재나 사랑을 의심할 것도 아닙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그분의 다스림 안에 머무는 일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하여 선한 결과를 만들어내실 것입니다(롬 8:28).   

4 responses to “시편 70편: 구원을 호소하는 이유”

  1. 죄로 가득한 세상은 믿는사람들의 고난과 죽음을 기뻐합니다만 신실하신 임마누엘 하나님을 항상 깨닫고 피부로 느끼며 힘들때에도 감사하며 베프는 삶을 원합니다. 세상 권세를 휘두르는 마귀도 전지전능의 창조주 하나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가족들과 함께 주님께 승리의 삶으로 감사 드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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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인생길은 언제나 평탄하고 아름다운 꽃길만이 존재하지 않고 욥처럼 견디기 어려운 고난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윗처럼 마음에 담고 있는 모든것을 하나님께 고할때 고난을 피할 길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 오늘도 그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게 하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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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주님의 자비와 긍휼에 의지하여 주님께 호소하고 간구합니다, 내 삶이 옳아서가 아니라 비록 어둡고 욕심과 자만으로 얼룩져 있지만 오직 하나님의 사랑에 기대어 너그러이 보시기를 간구합니다.
    한 해의 끝자락에 와 있습니다, 모든 잘 잘못을 주님앞에 내 놓습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에 기대어 주님께 머리를 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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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기도자의 다급함이 느껴집니다. 도움과 구원이 절실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내가 바라는 모양과 다르기도 하고, 어느 정도만 이루어주신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지만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며칠 전에 버지니아에서 믿음 생활을 같이 했던 권사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우리 가정이 버지니아에서 이사를 하고 난 뒤에 그 댁도 타주로 옮겨 갔습니다. 몇 번 더 이사를 다니다 지금 사는 데서 출석하는 교회가 1년이 넘었는데도 영 불편해서 몇 달 전부터는 다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했습니다. 이런 저런 교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예전에 성경 공부도 같이 하고 자주 만나 얘기하던 사이라 비록 헤어진 지 오래 되었어도 무슨 말인지, 어떤 심정인지 금방 알아 들었습니다. 며칠 지난 지금까지 내 마음을 채우는 감동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분과 나는 연령대도 다르고, 성향도 다릅니다. 성장 배경은 물론 결혼해서 이룬 가정의 모습도 많이 다릅니다. 교회에 대한 기대도 같지 않고 목회자나 교단에 대한 시각도 서로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 성경을 대하는 생각도 그때도 달랐으니 지금은 더욱 다를 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주님 안에서 형제자매로서 삶을 나누는데 아무 거리낌이 없습니다. 불편한 데가 없어서 친구가 된 것이 아니라 공통 관심사가 더 커서 친구 관계가 계속됩니다. 공통관심사는 물론 하나님이고 교회며 성경입니다. 그분의 교회 고민을 듣고서 나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꼭 ‘정답’이 아니라 자기 답 곧 나의 답을 열심히 찾는 것, 그리고 나는 나와 다른 시각과 생각을 가진 이들과 함께 교회를 섬길 수 있는지 아닌지를 물어보는 것 이 두가지가 필요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나눴습니다. 나는 그분과의 인연이 감사합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가졌던, 지금도 갖고 있는 회의와 혼란, 불만까지도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내가 바라는 교회, 내가 꿈꾸는 삶이 아니어도 감사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며칠 동안 음미하고 있습니다. 나의 삶이 곧 기도의 응답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나는 불완전한 기도를 올리지만 주님의 응답은 내게 꼭 필요한 것, 꼭 맞는 것입니다. 나는 몰랐어도 주님은 아셨습니다. “해변의 발자욱” 고백처럼 나는 나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한다고 생각했는데, 나 혼자 아파하고 혼자 일어난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늘 함께 계셨습니다. 임마누엘의 뜻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God is with us 면서, 하나님이 우리이시다 God is us 라는 고백이기도 한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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