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1편: 쓸 모 없어져도

해설:

이 시편에는 탄원시(1-18절)과 찬양시(19-24절)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먼저 탄원시에서 시인은 늙고 병들어 쓸모 없어진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구합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의 의”(2절)에 의존하여 자신을 도와 주시기를 기도합니다(1-4절). 지금 그는 악한 사람들의 위협에 떨고 있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얼마나 신실하게 하나님을 의지해 왔는지를 말씀 드립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주님을 믿어 왔고(5절) 태어날 때부터 주님을 의지해 왔습니다(6절).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의 표적이 되었을 때 주님께서는 그를 구해 주셨습니다(7절). 그는 온종일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님의 영광을 선포하며 살아 왔습니다(8절).

그런데 지금 그는 늙어서 쇠약해져 있고(9절) 적들은 그를 하찮케 여기고 음모를 꾸밉니다(10-11절). 시인은 사람들에게 하찮아진 자신을 하나님께서는 하찮케 여기지 말아 주시기를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펼치셔서 그를 공격하는 자들을 징벌해 주시기를 구합니다(12-13절). 그렇게 되어야만 그는 희망을 하나님께 두고 계속 찬양하며(14절) 주님의 의로우심을 전할 것입니다(15-16절). 그는 자신이 어릴 적부터 하나님을 의지해 왔음을 다시금 강조하면서(17절) 늙고 병든 자신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간청합니다(18절).

19절부터는 찬양시로 바뀝니다. 이 부분은 시인이 구원을 받은 후에 쓴 것일 수도 있고, 아직 응답을 받지는 못했지만 응답 받을 것을 믿고 쓴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시인은 “주님의 의로우심이 저 하늘 높은 곳까지 미칩니다”(19절)라고 고백합니다. 그 의로우심은 그의 개인사에서 여러 번 증명되었습니다. 그가 비록 많은 재난과 불행을 당했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구해 주셨습니다(20-21절). 그러므로 시인은 여러 가지 악기를 동원하여 하나님을 찬양 하겠다고 고백합니다(22절). 그는 찬양의 비밀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가 주님을 찬양할 때에, 내 입술은 흥겨운 노래로 가득 차고, 주님께서 속량하여 주신 나의 영혼이 흥겨워할 것입니다”(23절)라고 고백합니다. 그뿐 아니라 찬양은 원수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비밀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찬양은 역설적으로 가장 강력한 공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24절). 

묵상:

이 시편에서 시인은 두 번이나 자신의 쓸 모 없어진 상태를 묘사합니다(9절, 18절). 인간적인 기준으로 그는 늙고 병들어 하찮게 보였던 것입니다. 시인은 사람들의 눈에 쓸 모 없어진 자신이 하나님께도 쓸 모 없어 보이는 것은 아닌지 염려합니다. 그래서 그는 두 번씩이나 하나님께 자신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간청합니다. 자신이 늙고 병들어 쓸 모 없어졌어도 여전히 자신을 사랑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그렇게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 시편에서 “의”라는 말이 하나님과 관계하여 다섯 번 사용되었습니다(2절, 15절, 16절, 19절, 24절).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다”라는 말은 “그분은 당신의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다” 혹은 “그분은 믿을만한 분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그런 분이시기에 시인은 늙고 병들어 쓸 모 없어진 자신을 하나님께서 계속 사랑해 주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은 사람의 가치를 “쓸 모”에 기준하여 판단합니다. 쓸 모가 없어지면 가차 없이 버림 받습니다. 우리 모두는 사람들에게 인정 받고 사랑 받기 위해 자신의 쓸 모(가치)를 높이려고 발버둥 칩니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결국 늙고 병들어 쓸 모 없어집니다. 그럴 때면 우리는 모두에게 버림 받을 것 같은 두려움에 빠집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쓸 모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당신의 피조물이라는 한 가지 이유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한결같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의로운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쓸 모가 더 있어서 우리를 더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쓸 모가 없어서 덜 사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상태에 상관 없이 절대적 분량으로 사랑하십니다. 그것이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증명된 그분의 사랑입니다. 

7 responses to “시편 71편: 쓸 모 없어져도”

  1. 겉 사람은 낡아가고 연약 합니다, 그러나 속사람은 매일 아침 말씀안에서 새로워지기를 간구합니다.지난해 질병과, 자연재해와 전쟁가운데에서도 지팡이와 막대기로 인도해주신 주님이 새해에도 인도해 주실것을 믿습니다. 믿음의 가족들과 온 몸과 영혼이 신실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새해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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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시편 71편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한달 전 천국에 가신 엄마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몇달간의 병상가운데 요양원 가시기를 두려워하셧던 버림받음의 고통가운데 있으셧을 엄마를 보게 하셧고 너를 버리지 않으리라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과 약속 가운데 엄마와 함께 하셨을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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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계급, 인종, 성별, 장애 여부와 상관 없이 누구나 근본적으로 존엄하고 무한한 생명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차별해서는 아니됩니다. 주님! 속히 오셔서 차별 없는 새하늘과 새땅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오늘도 그 주님을 기다리며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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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며 주님의 의가 어디에 있었나 되섹여 봅니다, 코비드, 독감 , RSV, Recession, Inflation, 우크라이나를 통한 미쏘 갈등, 이들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상기하며 의로우신 주님께 자비와 사랑을 구합니다.
    인간의 내면에 깔려있는 모든 저속함을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하심같이 우리안에 정제되지 못한 모든 찌꺼기를 제거하시여 오는 새 해에는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며 조화를 이루어 평화로운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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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예전에 시편 71 편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마치 나를 대신해서 신세 한탄을 하는 것처럼 느꼈기 때문에 눈물을 줄줄 흘렸던 것 같습니다. 그 때는 노인도(8절) 아니었고 머리가 희어지지도 (18절) 않았는데 시인의 마음이 내 마음과 똑같이 느껴졌습니다. 오늘 아침엔 당시의 기억이 마음 한가득 차오릅니다. “오 하나님, 너무 멀리 떨어져 계시지 마소서. 오 나의 하나님, 어서 오셔서 나를 도와주소서 (12절)” 이 구절 하나 속에 인간의 실존적 아픔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멀리 계시는 하나님, 나를 보시는지 아닌지 조차 모르겠는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부를 때 와 주시는 “나의”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때가 꼭 있습니다. 살면서 그런 순간은 꼭 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고 힘겹게 말하실 때 예수님은 71편의 노인이셨습니다. 오늘은 올해가 끝나고 새해를 맞는 날입니다. 올해에도 잘못한게 많았고, 스스로를 쓸모없는 사람, 버림받은 사람처럼 하찮게 여기는 순간도 많았습니다. 멋지게 살고 싶었지만 구차하고 어설픈 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앞으로는 그렇게 살지 않을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듭니다. 잘못하는 것보다 잘하는 게 더 많을 것 같고, 아직 쓸 데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적나라한 부끄러움과 좋은 예감 두 가지를 다 감당해야 하는 더블 듀티, 연속 근무의 날입니다. 71편의 시인은 한탄의 눈물을 흘리지만 20절에서는 “어려움과 힘든 시간들을 주셨지만 나를 다시 살게 하실 것입니다”라고 희망으로 일어섭니다. 그도 12월 31일에 이 시를 썼을까요. “땅 속 깊은 곳에 빠져 있는 나를 주님은 다시 불러 올리실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는 보이지 않던 하나님이 땅 속 무덤으로 오셔서 예수님을 일으키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묘기를 부려 보라고, 높은 데서 뛰어 내리는 마술을 부려 보라고 세상의 사탄들이 도발합니다. 오 주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 지금까지 함께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앞으로도 함께 해 주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찬양 뿐입니다. 감사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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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jaejoonlee04gmailcom Avatar
    jaejoonlee04gmailcom

    사랑하는 김영봉 목사님, 눈 깜짝할 사이에 세월이 흘러 벌써 성탄절이 지나고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버나드 시인의 묘비가 생각나네요.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줄 알았다니까:” 먼저 김목사님 내외분께 성탄과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이제 새해가 되면 83세가 되네요. 그러나 주님 안에서 우리의 순례를 계속할수 있데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말씀 묵상을 인도하신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새해에도 목사님의 말씀 묵상을 기대하며 감사와 찬송을 주님께 드립니다. 말씀 묵상의 깊이를 더욱 인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 저자의 sitzim leben을 드라마 타이즈 하며 나의 실존적인 컨텍스트와 대화하기를 기대합니다. 새해에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말씀 안에서의 사괴임 communion이 계속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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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존경하는 이재준 목사님, 감사합니다. 목사님의 잔잔한 미소가 생각이 납니다. 부족한 후배 목사의 묵상 여정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3년 새해에도 평안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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