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지상 28장: 성전 건축을 지시하다

    해설:

    다윗은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들을 불러 모아 성전 건축에 대해 지시합니다(1절). 그는 자신이 성전을 건축하고 싶었으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는 사실(2-4절)과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후계자로 선택 하셨다는 사실(5-7절)을 지도자들에게 알리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신실하게 지킬 것을 서약하게 합니다(8절). 

    이어서 그는 솔로몬에게, 성전을 짓는 영예를 그에게 주셨으니 온전하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부탁합니다(9-10절). 그런 다음, 그는 자신이 구상하여 만든 성전 설계도를 솔로몬에게 내어 줍니다(11-19절). 그는 성전 건물과 내부의 모든 기구들 하나 하나에 대해 정밀한 설계도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계시해 주신 것이라고 말해 줍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성전 건축의 대 역사를 마칠 때까지 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며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지도자들과 모든 백성이 그 일을 도울 것이라는 말로 솔로몬을 격려합니다(20-21절).

    묵상: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지어 드리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왕으로서 그의 과제는 외세의 위협에 위협 받지 않는 견고한 나라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그 바탕 위에 성전을 건축하고 거룩한 제사장의 나라로 세우는 일은 다음 왕이 맡아야 할 과제였습니다. 다윗은 그것까지 욕심 내지 말아야 했습니다. 자신의 한계와 분수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 들여야 했습니다. 

    그 대신 그는 성전 건축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합니다. 말년의 다윗은 늘 성전에 대해 구상하는 일로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마음 다해 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설계에 관한 것은 주님께서 친히 손으로 써서 나에게 알려 주셨다”(19절)는 말은 그의 진심을 담고 있습니다. 그 결과, 성전의 구조와 모든 가구와 소품들은 각각 특별한 의미와 메시지를 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 최고의 것을 드리고 싶어하는 다윗의 정성을 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구할 것’을 찾고 있는데, 다윗은 그분께 ‘드릴 것’을 찾습니다. 그분의 위엄과 영광에 걸맞도록 최선의 것을 드리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고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안다면 당연히 그래야 함을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하나님 앞에서 구할 것만 찾고 있다면, 아직 하나님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 역대지상 27장: 군사 조직과 행정 조직

    해설:

    성전과 관련된 직무와 책임자들에 대해 소개한 후, 저자는 이스라엘의 군대 조직에 대해 설명합니다. 다윗은 스무 살 이상의 남성들로 군대를 조직하고 열두 조로 나누어 한 달씩 순번을 따라 영토를 지키게 했습니다(1-15절). 전쟁이 일어나면 모두가 동원 되어야 했지만, 평상 시에는 열두 조 중에 한 조만 경계 근무를 하게 했습니다. 이어서 저자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지도자들을 소개합니다(16-24절). 다윗은 왕실에 속한 재산을 맡아 관리할 사람들을 세웠고(25-31절), 왕실에는 개인적으로 의지하면서 자문을 구할 사람들을 두었습니다(32-34절).

    묵상:

    저자가 성전과 관련된 직무와 책임자들을 소개한 후에 군사 조직과 행정 조직에 대해 자세히 기록한 이유는 군사 조직과 행정 조직이 성전 제사와 관련 되어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군사적인 안정, 행정적인 질서 그리고 왕실의 평안이 모두 성전 제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전 제사가 바르게 올려질 때 그 영향이 안보와 행정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반면, 군사적인 안정과 공의로운 행정은 백성이 전심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도록 도와 줍니다. 인간사의 중심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관계가 바로 잡히면 다른 관계도 바로 잡힙니다. 그 관계가 깨어지면 다른 관계도 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1802년, 토마스 제퍼슨이  “교회와 국가의 분리”(seperation of the church and the state)를 미국의 원리로 천명했습니다. 그것은 국가가 개인의 신앙을 강제할 수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원리는 진화를 거듭하여 이제는 “신앙은 신앙이고 정치는 정치다”라는 식으로 해석 되곤 합니다. “신앙은 개인의 사적인 활동이며, 따라서 공적인 영역에서는 감추어져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 되기도 합니다. 개인의 신앙을 국가가 강제 해서는 안 된다는 원리는 인정해야 하지만, 신앙이 사적 영역에만 국한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한 개인의 믿음이 진실하다면, 그 믿음은 그가 공적 영역에서 행하는 모든 일에 반영되어야 옳습니다. 하나님은 종교의 영역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행정, 사법, 교육 등 모든 영역에서도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직장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답게 말하고 행동하여 그분의 아름다우심을 드러내기 원하십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모두 선교사인 셈입니다.    

  • 역대지상 26장: 부수적인 소임을 맡은 사람들

    해설:

    솔로몬에 의해 지어진 성전은 본체와 바깥 뜰 그리고 외벽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성전 외벽에는 동서남북에 문을 만들고 문지기를 세워 지켰습니다. 성전 문지기는 “용맹스럽고”(6절, 8절, 9절) “유능한”(7절) 사람들이어야 했습니다. 준비 되지 않은 사람들이 성전을 드나들지 않게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문지기로 임명된 사람들을 가문 별로 소개하고(1-11절) 그들이 동서남북의 문을 지키게 되었다는 사실을 전합니다(12-19절). 

    성전 안에는 성전에서 사용하는 물건들과 봉헌된 귀중품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습니다. 성물은 거룩하게 구별된 것이고 봉헌물은 귀하고 값진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맡아 지키고 관리하는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저자는 성전의 창고를 관리하는 사람들에 대해 설명합니다(20-28절). 레위 사람들 중 일부는 서기관과 재판관으로서 일반 행정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29절). 저자는 요단 강 동쪽과 서쪽에서 일반 행정을 맡았던 사람들에 대해 설명합니다(30-32절).

    묵상: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제사를 드리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장의 역할이 제일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사가 온전히 드려지기 위해서는 성전과 관련된 모든 일들이 뒤따라 주어야 합니다. 제사장이 제 역할을 다하려면 레위인들이 각자 자신에게 맡겨진 일들을 제대로 섬겨야 합니다. 인간적인 시각에서는 제사장이 제일 중요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성전과 관계된 일 모두가 중요하고, 그 일을 맡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동일한 가치를 가집니다. 그런 까닭에 저자는 문지기와 성전 창고 관리인들의 명부를 기록합니다. 또한 성전 바깥에서 행정의 일을 본 사람들의 이름도 기록합니다. 그들이 제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성전에서의 제사도 온전히 드려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세속적 가치관은 우리로 하여금 ‘일의 값’을 따지게 만듭니다. 그 일로 인해 버는 수입이 많거나 영향력이 커지거나 자신이 돋보일 경우에는 그 일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도 저도 아니면 그 일을 하찮게 여깁니다. 중요한 일을 맡은 사람은 귀하게 여기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찮게 여깁니다. 그런 가치관으로 자신을 평가하여 자신을 성공한 사람으로 혹은 실패한 사람으로 여깁니다. 교회로 모여서도 그런 가치관으로 서로를 대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차별의 죄가 빈번히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사도는 교회 안에서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행위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합니다(약 2:1-13).

    역대지 저자가 문지기와 성전 창고 관리인과 서기관/재판관으로 섬긴 사람들의 명부를 작성하면서 독자들에게 전하려 한 메시지를 마음에 새깁니다. 하나님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 모든 일이 그분에게는 절대값으로 보입니다. 그분은 내가 오늘 직장에서 행하는 일을 거룩하게 보십니다. 교회로 모여 내가 섬기는 일을 귀중하게 보십니다. 그런 마음으로 나의 소임을 대하고 다른 사람들을 대하도록 힘씁니다. 

  • 역대지상 25장: 찬양대를 조직하다

    해설:

    다윗이 음악을 좋아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그는 수금을 잘 다루어 사울의 불안증을 치유하곤 했습니다(삼상 16:23; 18:10; 19:9 등). 그는 성전 건축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특별한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는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자손들을 조직하여 성전 제사에서 음악을 담당하도록 조직했습니다(1-7절). 그런 다음 제비를 뽑아 24조로 편성하여 순번을 따라 한 주간씩 성전에서 섬기게 했습니다(8-31절). 

    묵상:

    사도 요한의 환상을 보면, 하나님의 보좌에서 하나님께 대한 전우주적인 찬양이 영원히 지속됩니다.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 보면, 죽음의 경계선을 넘어갔을 때 우주를 가득 채우는 웅장한 음악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영적 투시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예배 중에 천사들이 찬양을 올릴 때 가장 기뻐한다고 합니다. 악한 영이 가장 혐오하는 것이 찬양이라고 합니다. 찬양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고백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때 하나님의 다스림이 임하고, 그로 인해 이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기도 중에 가장 영혼을 들어 올리는 기도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입니다. 예배 중에 찬송을 부르는 것은 음악을 즐기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높이자는 뜻입니다. 

    찬양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혹은 음악에 소질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피조물에게 있어서 찬양은 창조주 하나님의 선하심과 아름다우심과 의로우심을 목도할 때 터져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 혹은 음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만나면 찬양이 터져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굳이 음악의 형식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아, 주님!”의 한 마디 탄성만으로도 충분한 찬양이 됩니다. 다만, 그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다윗의 가장 큰 공헌 중 하나는 찬양을 제사의 중심에 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성경에 시편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그의 공입니다. 우리의 기도와 예배에 찬양이 더욱 살아 있기를 기도합니다. 

  • 역대지상 24장: 제사장을 조직하다

    해설:

    저자는 레위인의 직무에 대한 설명에 이어 제사장의 직무에 대해 설명합니다. 레위 자손 중에 아론의 후예들만 제사장의 자격을 부여 받았습니다. 아론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는데(1절), 나답과 아비후는 제단의 불을 함부로 다룬 까닭에 심판을 받습니다(레 10:1-2). 그로 인해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아론을 이어 제사장이 됩니다(2절). 

    다윗은 엘르아살의 자손인 사독과 이다말의 자손인 아히멜렉을 제사장의 우두머리로 세웁니다(3절). 다윗 시대에 아론의 자손의 수가 불어났기 때문에 그들이 모두 성전 제사를 섬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독과 아히멜렉을 불러 전체 제사장들을 24조로 편성하고(4-5절), 신하들 앞에서 제비를 뽑아 순번을 정합니다(6-18절). 그렇게 함으로써 순번에 따라 한 주간씩 성전에서 제사를 섬기도록 했습니다(19절). 그런 다음 저자는 제사장들을 도왔던 레위 지파 사람들에 대해 소개합니다(20-31절).

    묵상:

    주님께서는 첫 제사장 아론에게 “너는 그들의 땅에서 아무런 유산도 없다. 그들과 더불어 함께 나눌 몫이 너에게는 없다.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네가 받은 몫, 네가 차지할 유산은 바로 나다”(민 18:20)라고 하셨습니다. 예언자 에스겔은 제사장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제사장들에게도 유산이 있다. 내가 바로 그들의 유산이다. 이스라엘에서는 그들에게 아무 산업도 주지 말아라. 내가 바로 그들의 산업이다”(겔 44:28)라고 했습니다. 제사장들은 다른 레위인들처럼 경제적으로는 다른 지파 사람들이 바친 십일조에 의존한 채  하나님을 영원한 유업으로 삼고 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살아있지 않으면 그 운명은 저주와 같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태어나면서 지워진 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고 그분과의 관계 안에서 만족을 찾는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맡겨진 분복을 감사하고 기뻐했을 것입니다. 유다 지파에 속했던 다윗은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을 누리면서 “아, 주님, 주님이야말로 내가 받을 유산의 몫입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필요한 모든 복을 내려주십니다. 나의 미래는 주님이 책임지십니다. 줄로 재어서 나에게 주신 그 땅은 기름진 곳입니다. 참으로 나는, 빛나는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시 16:5-6)라고 고백했습니다.

    완전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영원하고도 완전한 제사를 드리신 이후, 성전도, 제사도, 제사장도, 레위인도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이제는 혈통적 제사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믿는 사람은 모두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는”(롬 12:1)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제사장이 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참된 만족을 찾고 그분을 영원한 유산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 땅에서 주어지는 것에 매이지 않고 자유할 수 있습니다. 물질에 대해 자족의 비결을 배우고 영원한 것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 역대지상 23장: 레위인들의 직무

    해설:

    성전 재건을 위한 자재를 준비하고 솔로몬과 신하들에게 건축을 지시를 한 다음, 다윗 왕은 성전에서 제사를 섬길 레위 사람들에 대해 인구 조사를 행합니다(1-3절). 성전이라는 하드웨어를 준비한 다음, 성전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를 준비한 것입니다. 21장에서 본 대로, 요압은 다윗의 명령으로 인구 조사를 하면서 레위인들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레위 지파 사람들은 세 분파(게르손 자손, 고핫 자손, 므라리 자손)로 나뉘는데, 성막에서의 제사와 성막 이동 시에 맡겨진 직무가 분파에 따라 구별되어 있었습니다. 성전이 지어지면 더 이상 성막을 해체하고 이동하고 다시 설치하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따라서 모세 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레위인들의 직무를 변경해야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다윗은 레위인들의 다수를 성전 제사를 섬기는 일에 배정하고, 일부를 서기관과 재판관으로, 일부는 문지기로, 또 일부는 찬양하는 일로 배정합니다(4-5절).

    이어서 저자는 성전에서 제사를 섬기는 일에 배정된 사람들의 족장들을 분파 별로 소개합니다: 게르손 자손들(7-11절), 고핫 자손들(12-20절), 그리고 므라리 자손들(21-23절). 다윗은 그들에게 더 이상 성막을 이동할 필요가 없으니 제사장들을 도와 제사를 섬기도록 지시합니다(24-32절). 레위 지파 중에 아론의 자손들만 제사장의 자격이 주어졌고, 다른 레위 사람들은 제사장들을 돕는 역할만 담당했습니다.

    묵상:

    레위인으로 태어나는 것은 어찌 보면 영예요 어찌 보면 천형입니다. 성전 제사를 위해 성별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영예인데, 현실적인 상황에서 보면 태생적 불이익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경작할 토지를 분할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들 사이에 흩어져 살면서 다른 사람들이 바친 십일조에 의지하여 살아야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듯이 당시에도 정직하고 신실하게 수입의 십일조를 바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기부에 의존하고 살아야 하는 그들의 삶은 늘 불안정 했을 것입니다. 때로는 생계를 위협 받기도 했을 것입니다. 

    아론의 자손들은 그나마 제사장으로서의 영예가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에게는 바쳐진 제물의 일부를 가질 자격이 주어졌고 성전에 들어오는 헌금의 일부를 생활비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제사를 드리러 오는 사람들은 그들을 지극하게 섬겼습니다. 반면, 아론의 자손이 아닌 다른 레위인들은 제사장들의 시중을 들어야 했습니다. 인간적인 시각으로 볼 때 그들은 허드렛 일을 섬겨야 했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 그들은 제사 드리러 온 사람들로부터 때로 시종 취급을 받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레위인들은 세 종류로 나뉘었을 것입니다. 하나는 신분 세탁을 하여 비레위인으로 살기를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떳떳하게 제 손으로 벌어 먹으며 안정된 삶을 살고 싶었을 것입니다. 둘째는 자신의 태생적 한계를 불평 하면서 마지 못해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을 벗어버릴 용기는 없고 그렇다고 그것을 기뻐할 이유도 찾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자신에게 주어진 분복에 자족 하면서 맡겨진 직분에 정성을 다한 사람들입니다. 

    과연 당시에 내가 레위인으로 태어났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과연 나는 어떤 마음 자세로 나에게 맡겨진 직분과 나에게 주어진 분복을 대하고 있을까요?

  • 역대지상 22장: 다윗의 성전 건축 준비

    해설: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제사를 드린 후 다윗은 “바로 이 곳이 주 하나님의 성전이요, 이 곳이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다”(1절)라고 선언합니다. 당시에 모세가 만든 성막은 기브온 산당에 있었습니다(21:29). 다윗은 이 선언을 통해 성전이 세워질 새로운 장소로 오르난의 타작 마당을 지정한 것입니다.

    이후로 저자는 성전이 지어지는 과정을 서술합니다. 먼저, 다윗은 거류 외국인들을 불러 모아 성전 건축에 필요한 자재들을 준비하게 합니다(2-4절). 이 즈음에 다윗은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고 상왕으로 물러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죽기 전에 어린 솔로몬이 차질 없이 성전 건축을 완성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놓고 싶었습니다(5절). 

    성전 건축에 필요한 자재들이 어느 정도 준비되자 다윗은 솔로몬을 불러 성전 건축을 지시합니다(6절). 그는 자신이 성전을 건축 하려 했으나 너무나 많은 피를 손에 묻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알립니다(7-8절). 또한 그는 예언자 나단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것이며 다윗 왕조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9-10절). 이어서 다윗은 솔로몬에게, 성전을 무사히 완공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신실하게 지켜서 백성이 복을 누리게 하라는 축복의 말씀을 전해 줍니다(11-16절). 

    다윗은 솔로몬을 보좌하는 신하들에게, 그를 도와 성전을 완성하라고 명합니다(17절). 하나님께서 태평성대를 허락해 주셨으니(18절), 그 은혜를 기억하여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찾고, 일어나서 주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십시오”(19절)라고 지시합니다. 

    묵상:

    저자가 이 글을 쓸 때, 유다 백성은 포로 생활에서 풀려나 예루살렘에 와 있었습니다. 그 때 성전은 바빌로니아 군대에 의해 파괴된 후 칠십 년 이상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폐허가 되어 버린 성전의 모습을 보고 마음 깊이 아픔을 느끼고 탄식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무참하게 짓밟힌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목격하고 두려워 떨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눈동자처럼 사랑하셨던 성전 조차도 가차없이 심판하시고 버려 두신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렇게 하실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조상들의 죄에 대해서도 뼈저리게 자각 했을 것입니다.

    저자는 22장부터 27장까지 성전 건축과 그에 따른 제도와 직무들을 자세히 서술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거룩한 열정이 되살아 나기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위해 얼마나 정성을 기우렸는지, 온전한 제사를 드리기 위해 얼마나 세심하게 배려 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을 얼마나 기쁘시게 했는지를 기록 함으로써 성전 재건할 위한 용기를 불러 일으키려 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다윗과 솔로몬 같은 지도자도 없고, 다윗이 마련한 귀한 자재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맨손으로 성전을 다시 세워야 했습니다. 그 벅찬 도전 앞에서 그들의 마음은 차가워졌을 것입니다. 저자는 이 기록을 통해 그들의 마음에 온기를 불어 넣고 싶었을 것입니다. 성전이 재건되고 제사가 회복되어야만 유다 백성의 회복은 시작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역대지상 21장: 다윗의 인구 조사

    해설:

    저자는 다윗이 통일 왕국을 이룬 후에 행한 인구 조사에 대해 설명합니다. 다윗이 인구 조사를 한 동기에 대해 저자는 “사탄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일어나서”(1절)라고 말합니다. 사무엘하 24장 1절은 “주님께서 다시 이스라엘에게 진도하셔서” 그렇게 했다고 말합니다. 사탄도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기에 이렇게 표현했을 수도 있고, 다윗이 사탄에게 유혹 받는 것을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다윗은 요압에게 이스라엘 전역의 인구를 조사하라고 명합니다(2절). 요압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는 다윗에게 재고해 볼 것을 청했지만(3절) 그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고 명대로 행합니다(4-5절). 다만 요압은 레위와 베냐민 지파는 조사에 포함시키지 않습니다(6절). 다윗의 명령에 온전하게 복종하지 못하는 마음이 그렇게 표현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악하게 보시고 이스라엘을 치십니다(7절).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빌었지만(8절), 선견자 갓을 통해 세 가지 징벌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 하십니다(9-12절). 다윗은 전염병의 징벌을 선택합니다(13절). 그로 인해 심판의 사자들이 전염병으로 백성을 쳤고, 칠만 명이나 목숨을 잃습니다(14절). 주님께서는 그들을 긍휼히 보시고 예루살렘을 치러 가는 천사의 길을 가로 막으십니다(15절). 다윗은 주님의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해 심판의 칼을 든 것을 보고서 장로들과 함께 그 앞에 엎드려 회개하고 용서를 구합니다(16-17절). 

    선겨자 갓은 다윗에게, 천사가 서 있는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제단을 쌓으라고 제안 합니다(18-19절). 다윗은 오르난에게서 타작 마당을 사려 합니다만(20-22절), 그는 그것을 헌납 하겠다고 말합니다(23절). 그러자 다윗은 제값을 치루고 사지 않고는 그것을 주님께 바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오르난은 명대로 했고, 다윗은 그 마당에 제단을 쌓고 제사를 올립니다. 그러자 주님의 불이 떨어져 제물을 불사릅니다(24-26절). 그 일로 인해 심판은 그쳤고(27절) 다윗은 그곳에서 다시 제사를 드립니다(28절). 하지만 그 이후로 다윗은 하나님이 무서워서 기브온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지 못합니다(29-30절). 

    묵상:

    인구 조사에 대해 하나님이 진노하신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추측할 수는 있습니다. 그 행동에는 적어도 두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교만의 문제요, 다른 하나는 불신앙의 문제입니다. 다윗은 내치를 안정시킨 후, 자신의 수하에 있는 백성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하루 장사를 끝내고 벌어들인 돈을 셈하면서 스스로 만족하는 사업가와 같습니다. 그러한 헤아림 중에 그의 마음은 한 없이 교만 해졌을 것입니다. 그 교만은 곧 불신앙으로 이어집니다. 두둑한 돈다발을 가슴에 품고 “그래, 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다윗은 인구 조사를 한 다음 “그래, 이제는 염려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겨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그는 자만과 불신앙으로 미끌어져 들어갔습니다. 그의 교만과 불신앙의 대가는 실로 혹독했습니다. 이것은 다윗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의 본성은 예외 없이 그렇게 기울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고난보다 축복이, 실패보다 성공이 더 다루기 어렵습니다. 고난과 실패는 우리를 낮추어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지만, 성공과 축복은 우리의 자아를 부풀려 하나님을 떠나게 만듭니다. 그런 본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바울 사도는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고전 10:12)라고 경고했습니다.  

  • 역대지상 20장: 암몬과 불레셋과의 전투

    해설:

    19장에서 서술된 암몬-시리아 연합군과 이스라엘의 전쟁은 암몬 왕이 시작한 것인데 그로 인한 피해는 시리아가 입습니다. 그 전쟁으로 인해 시리아는 이스라엘의 속국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암몬 군사는 전세가 불리해지자 퇴각하여 성안에 숨어 버립니다. 

    그 해 겨울이 지난 후, 요압은 군사를 이끌로 암몬의 수도인 랍바 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킵니다(1절). 그 때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 기간 동안 그는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게 하는 죄를 저지릅니다(삼하 11장). 역대지 저자는 그 수치스러운 사건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요압은 랍바에서 금관과 함께 많은 전리품들을 약탈합니다(2절). 그 후에 다윗은 암몬의 모든 성을 점령하여 속국으로 만듭니다(3절). 

    불레셋은 다윗에 의해 점령 되었으나 저항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곳에는 골리앗이 속했던 거인족이 있어서 그들을 중심으로 반란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다윗의 부하들은 그 반란을 진압 했습니다(4-8절). 사울의 군대가 골리앗에게 조롱 당할 때의 이스라엘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묵상:

    다윗의 일생에 있어 가장 큰 오점은 충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그를 위험한 전투에 보내어 죽게 한 일입니다. 고대 왕정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절대 군주에게 그 정도는 죄라 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준에 그것은 치명적인 죄악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열왕기 저자는 그 사실을 자세하게 기록합니다. 시편에도 그 일로 인해 다윗이 드린 회개의 기도가 수록되어 있습니다(51편). 그런데 역대지 저자는 그 사건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성서학자들은 역대지 저자가 다윗 왕을 이상적인 임금으로 묘사하기 위해 그 사건을 기록하지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역대지 저자가, 유다 백성이 다윗의 영광의 회복을 소망하고 용기를 내도록 이 책을 쓴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이유 때문에 다 알고 있는 사건을 생략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역대지 저자가 밧세바 사건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용서받은 죄’였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그는 참담한 죄악을 저질렀지만 진정한 회개로써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습니다. 다윗은 “주님의 눈을 내 죄에서 돌리시고, 내 모든 죄악을 없애 주십시오”(시 51:9)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셔서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고 답하셨습니다. 

    용서란 더 이상 그 죄를 입에 올리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면, 사람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역대지 저자는 그 수치스러운 죄에 대해 한 번 기록되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잊으셨으니 자신도 잊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용서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 역대지상 19장: 암몬 연합군과의 전쟁

    해설:

    요단 강 동쪽에 이스라엘과 경계선을 맞대고 있던 세 나라는 (북쪽부터) 암몬, 모압 그리고 에돔이었습니다. 시리아는 그보다 더 동쪽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암몬을 다스리던 나하스 왕은 다윗과 좋은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가 죽고 그의 아들 하눈이 왕위를 잇자 다윗은 조문 사절단을 파견합니다(1-2절). 하지만 신하들은 새로 왕이 된 하눈에게 조문 사절단에 대한 의심을 심어 줍니다(3절). 새로 왕위에 오른 하눈은 신하들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절단에게 모욕적인 행위를 하고 돌려 보냅니다(4절). 그 사실을 전해 들은 다윗은 사절단을 보호하기 위해 여리고에 머물게 합니다(5절).

    다윗이 보복해 올 것을 예상한 암몬의 지도자들은 시리아에 막대한 돈을 보내어 용병을 고용하여 전투를 준비합니다(6-7절). 다윗은 요압에게 전투 부대를 맡겨 출동시킵니다(8절). 그러자 암몬 군도 출동했고, 이스라엘 군은 두 군대 사이에 포위된 형국이 되었습니다(9절). 요압은 정예병들을 뽑아 시리아 군대와 맞서게 하고, 동생 아비새에게는 나머지 군인들로 암몬을 맞서게 합니다(10-11절). 요압은 아비새에게 전투 상황을 보아 서로 돕자고 제안합니다(12-13절).  

    요압이 정예병을 이끌고 시리아 진영을 공격하자 군사들이 겁에 질려 도망합니다(14절). 그 모습을 보고 암몬 군대도 사기를 잃고 도망합니다(15절). 전쟁이 싱겁게 끝나자 요압은 군대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퇴각 했던 시리아는 유프라테스 동쪽을 지키던 병사들을 동원하여 다시 이스라엘을 치려 합니다(16절). 그 소식을 듣고 다윗은 이스라엘의 전군을 소집하여 요단 강을 건너 시리아를 공격합니다(17절). 이번에도 다윗은 대승을 거둡니다(18절). 그 이후로 시리아는 이스라엘의 속국이 됩니다(19절).  

    묵상:

    구약의 역사서를 읽다 보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전쟁의 신’인 것처럼 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위해 전쟁을 벌이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본문에 근거하여 ‘정당한 전쟁'(Just War) 혹은 ‘거룩한 전쟁'(Holy War)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필요하면 하나님을 위해 혹은 그분의 뜻을 위해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당한 이유라면 전쟁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런 본문들을 읽을 때 어려움을 느낍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의 싸움에 개입하고 어느 한쪽을 편들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스라엘의 민족신이지 온 우주의 창조주요 온 인류의 주권자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시고 죄의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해결을 마지막 날에 미루어 놓으실 때 전쟁은 이미 배태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갈등과 싸움과 투쟁은 인간사의 일상입니다.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원래 계획은 평화와 사랑과 하나됨이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의 원계획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이전까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 땅에 부분적이고 일시적이지만 평화와 사랑과 하나됨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최선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한계로 인해 때로 갈등과 싸움과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 때 믿는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차선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 주시기를 구할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편에 설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 편에 선다”는 말은 어쩔 수 없이 싸움에 말려 든다 해도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분의 방식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식대로 싸운다”는 말은 어폐 중에도 최대의 어폐이지만, 죄악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