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스겔서 38장: 곡의 전쟁

    해설:

    38장과 39장은 앞뒤의 예언들과 차이가 많습니다. 그래서 ‘초기 묵시’라고 정의 하기도 합니다. ‘묵시’ 혹은 ‘계시’는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종말론적이고 초월적인 사건을 묘사합니다. 묵시는 극심한 박해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은 상황에서 끝까지 그분을 믿고 그분의 구원을 기다리라는 격려입니다.

    주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마곡의 왕 곡을 규탄하여 예언하라 하십니다(1-2절). 곡에게 주변의 모든 나라들을 동원하여 전쟁 준비를 하고 때를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기다림의 시간이 꽤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때가 되면 그는 연합군을 데리고 한 나라를 침략하게 될 것입니다. 그 나라는 오래도록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져 살다가 폐허가 된 조국으로 돌아와 안전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안전하게 살고 있을 때 곡은 연합군을 몰고 그 나라로  공격해 올라갈 것입니다(3-9절).

    이 전쟁은 아무 이유도 없이 평화롭게 사는 나라를 공격하고 싶은 욕구가 곡의 마음에 일어났기 때문에 시작된 것입니다(10-12절). 그래서 곡이 이스라엘을 침략할 때 주변 나라의 주민들이 그를 비난할 것입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13절). 주님께서는, 곡을 자극하여 전쟁하게 한 것은 바로 당신이라고 하십니다. 그는 고레스 왕처럼 주님의 심판의 도구로 선택 받은 사람입니다(14-17절). 하지만 곡의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칠 때 주님은 그들도 심판하실 것입니다(18-23절).

    묵상:

    많은 경우에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거나 환상을 볼 때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압니다. 하지만 주신 말씀이나 보여주신 환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언자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일에 대해 들려주신 대로 혹은 보여 주신 대로 전합니다. 그러니 그 예언을 듣거나 읽는 사람들은 그 의미를 더 더욱 알 수 없습니다. 

    마곡의 왕 곡에 대한 예언이 그 중 하나입니다. 에스겔 자신도, 그의 예언을 듣는 사람들도 이 예언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니 에스겔은 받아 전해야 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 말씀을 듣거나 읽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예언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하고 질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그 의미를 밝혀 주실 것이라고 믿고 거듭 읽고 거듭 질문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묵시’라고 부릅니다. ‘감추어진 계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드러내셨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부릅니다.

    그로부터 오백여 년이 지난 후, 밧모섬에서 하나님은 사도 요한에게 그 의미를 알리십니다(계 20:7-15). 곡에 대한 이 예언은 마지막 날에 성도들에게 일어날 영적 전쟁에 대한 예언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기 전, 사탄은 마곡의 왕 곡을 미혹하여 믿는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전쟁을 일으킬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탄의 세력에 대한 최종적인 심판이 될 것입니다. 그 고난의 풀무불을 견딘 사람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 에스겔서 37장: 마른 뼈가 살아나다!

    해설:

    어느 날, 주님의 영이 에스겔을 사로잡아 뼈들이 가득한 곳으로 데려 가십니다. 주님은 그에게 마른 뼈들을 살펴 보게 하십니다(1-2절). 그런 다음 “사람아, 이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3절)고 물으십니다. 에스겔은 “주 하나님, 주님께서는 아십니다”(4절)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에게 그 뼈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그 마른 뼈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 힘줄이 뻗어나게 하고 살을 입히고 살갗으로 덮은 후에 살아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5-6절). 에스겔이 명대로 행하니, 마른 뼈들이 온전한 사람의 모습으로 회복됩니다(7-8절). 주님은 그에게 생기를 불러 그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게 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대로 하니 모두가 일어서 큰 군대를 이룹니다(9-10절).

    이 환상을 보여 주신 다음, 주님께서는 그 의미를 풀어 주십니다. 마른 뼈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무덤 속에 있는 것처럼 철저한 절망 가운데 있습니다. 주님은 장차 그들을 무덤에서 끌어내어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11-14절).

    또 한 번은 에스겔에게 두 개의 막대기를 가져다가 하나에는 유다, 다른 하나에는 이스라엘이라고 쓴 다음, 두 막대기를 연결시켜 하나로 만들라고 하십니다(15-17절). 그것은 주님께서 유다와 이스라엘을 하나로 만드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18-19절).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방 민족들에게서 데려와 하나의 나라를 이루실 것입니다(20-23절). 그 때 다윗이 그들을 다스리는 왕이 될 것이고, 주님께서는 백성과 평화의 언약을 세워 영원히 지키실 것입니다(24-26절). 그 때가 되면 주님이 살 집이 그들 가운데 있고, 주님의 성소가 그들 한가운데 있게 될 것입니다(27절). 그 때가 되면 세계 만민이 주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28절).

    묵상:

    마른 뼈들이 사람의 모양으로 회복되고 생기를 받아 일어서서 큰 군대를 이루었다는 환상은 상상만 해도 마음을 설레게 만듭니다. 지금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은 무덤 속에 흩어져 있는 마른 뼈들과 같습니다.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습니다. 그 절망의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사람아, 이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3절)라고 물으셨을 때 에스겔이 “주 하나님, 주님께서는 아십니다”라고 답한 것은 “제 생각에는 불가능해 보입니다”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일을 이루십니다. 앞장에서 “나 주가 말하였으니, 내가 이룰 것이다”(36:36)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이 하신다면 하십니다.

    이 환상은 이 땅에서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 하나님 안에서 희망할 이유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주님께서 하신다면 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의 다스림을 받고 사는 한, 우리는 절망 가운데서도 희망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향해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에 거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희망을 가질 충분한 이유입니다. 

    이 환상은 또한 마지막 날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할 것을 상상하게 합니다. 마지막 날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모든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여 영원히 다스리게 될 것이라는 예언은 마른 뼈가 살아나게 될 것이라는 말처럼 허언증의 표현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 일에 대해서도 주님은 “나 주가 말하였으니, 내가 이룰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에 임하는 새 예루살렘을 보고는 “나는 그 안에서 성전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어린 양이 그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계 21:22)라고 했습니다. 에스겔은 자신이 27절과 28절에서 들은 그 예언이 마지막 날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것임을 까맣게 몰랐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어떤 경우에도 절망하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또한 마지막에 보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상하면 이 땅에서 겪는 모든 고난은 사소한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 에스겔서 36장: 모든 것이 새롭게 될 날이 온다

    해설:

    36장에서 주님은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의 산들을 향해 말하라고 하십니다. 지금 원수들은 이스라엘의 산들을 점령하고 자신들의 소유가 되었다고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그들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심판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으로 그 땅을 소유하게 되었다고 좋아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을 심판하고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을 그들의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황폐 해졌던 산들이 울창 해질 것이고 성읍들이 들어설 것이며 사람들이 모여들 것입니다. 그로 인해 이방 민족이 다시는 이스라엘을 조롱하지 못할 것입니다(1-15절).

    이어서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죄악에 심하게 물들어 있었고 그로 인해 심판을 받았습니다. 멸망한 후에 그들은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졌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이름이 이방 민족 가운데서 더렵혀지고 있는 상황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모으실 것입니다(16-24절). 그뿐 아니라 회복된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죄악의 부정을 깨끗이 씻어주고, 새로운 마음과 영을 넣어 주고,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며, 주님의 영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주님의 모든 율례를 지킴으로 진실로 주님의 백성 답게 변화될 것입니다(25-28절). 

    그 때가 되면 이스라엘 땅이 회복되어 풍성한 곡식과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과거 행실을 기억하고 부끄러워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온전히 회복되고 나면 이방 민족들은 그 모든 일이 주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놀라게 될 것입니다(29-38절). 

    묵상:

    주님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예언하십니다. 이것은 ‘회복’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창조’에 가깝습니다. 이스라엘 땅은 과거의 상태로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전보다 더 좋아지게”(11절) 될 것입니다. 여러 민족 사이에서 흩어져 살던 백성은 약속의 땅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 때 그들은 더 이상 같은 존재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내면과 외면을 철저하게 새롭게 만들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자신의 죄성을 억누르고 하나님의 뜻을 행했다면, 그 때에는 마음에서 내키는 대로 말하고 행해도 주님의 율례를 따르게 됩니다. 마음과 영이 새로워지고 주님의 영이 임하면 그렇게 됩니다. 인간의 죄성이 치유되면, 인간의 죄로 인해 깨어졌던 피조 세계도 회복됩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피조 세계의 회복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이 예언이 주어진 후 칠십여 년이 지나, 흩어졌던 유다 백성은 다시 조국 땅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에스겔을 통해 주신 이 예언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한참 지난 후에야 사람들은 이것이 메시아에 대한 예언임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분은 먼저 성령을 통해 각 사람이 새로워지는 길을 여셨습니다.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우리는 주님의 뜻을 따라 살게 됩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생각하고 말해도 주님의 뜻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믿는 이들은 이 땅에서 그렇게 살고 마지막 날 새 하늘과 새 땅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 때 일어날 일들을 환상으로 보면서 사도 요한은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계 21:5)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타락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 소망을 마음에 품고 오늘도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주님의 뜻을 따라 살기를 소망합니다.   

  • 에스겔서 35장: 에돔의 잘못

    해설:

    유다의 회복에 대한 예언에 이어 다시 에돔에 대한 심판의 예언이 나옵니다. 에돔에 대한 심판의 예언은 25장 12-14절에 간단히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 좀 더 길게 나옵니다. 에돔은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입니다. 태생적 관계로 인해 에돔은 이스라엘에 대해 원한과 시기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다가 시온 산으로 불리는 것처럼 에돔은 세일 산으로 불립니다. 주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세일 산을 향하여 심판의 예언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세일 산을 황무지로 만들겠다고 하십니다(1-4절). 그들이 유다 백성에 대한 시기심으로 도피하는 유대인들을 죽였기 때문입니다(5절). 주님께서는 에돔 백성이 유다 백성처럼 멸망 당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6-9절). 

    그들은 유다가 망하는 것을 보고 그 땅이 자기의 소유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영영 하나님께 버림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10절). 따라서 주님께서는 에돔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유다 백성이 멸망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망령되이 생각하고 말했기 때문입니다(11-13절). 그 때가 되면, 유다가 망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좋아했던 것처럼, 다른 민족들이 그들의 멸망을 보고 기뻐할 것입니다(14-15절).

    묵상:

    에돔 백성은 유다가 바빌로니아 군에 의해 포위되어 패색이 짙어지자 바빌로니아 편에 가담하여 도피하는 유다 백성들을 살해 합니다. 천 수백 년 동안 쌓인 민족적 원한 감정이 그렇게 표출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유다를 완전히 버리셨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에스겔을 통해 “그러나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셨느니라”(10절, 개역개정)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성전에서 당신의 임재를 걷어가셨지만(10-11장), 유다를 완전히 버리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은 버림 받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역설적 표현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징계 받을 때에 참아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녀에게 대하시듯이 여러분에게 대하십니다.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자녀가 어디에 있겠습니까?”(히 12:7)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의 징계 아래에 있다고 생각될 때, 우리는 그것을 연단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기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징계하십니다”(히 12:10). 또한 다른 사람이 고난 중에 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이 하나님에게 버림 받았다고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에돔 사람들의 잘못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그 사람을 함부로 여기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큰 죄를 짓는 것이 됩니다.  

  • 에스겔서 34장: 목자들에 대한 심판

    해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을 목자와 양에 비유하는 것은 구약성경에 자주 나옵니다. 시편 23편이 가장 유명합니다. 주님은 그 비유를 이스라엘의 왕과 정치/종교 지도자들에게 적용하십니다. 왕과 지도자들은 참 목자이신 하나님의 위임을 받아 하나님의 양떼를 돌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려움 당하는 양들을 돌보기는 커녕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 양들을 이용했습니다. 그 틈에 양들은 노략 당하고 유리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목자들을 폐하고 당신의 양떼를 도로 찾아 오겠다고 하십니다(1-10절). 

    주님께서는 몸소 양떼를 돌보겠다고 하십니다. 흩어져 유리 방황하는 양들을 다시 모으고 기름진 이스라엘 산지에서 좋은 풀을 뜯게 하실 것입니다. 또한 양떼들 가운데서 살진 것과 힘센 것을 멸하실 것입니다. 다른 양들을 괴롭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양들이 평화롭게 살 것입니다(11-22절).

    때가 오면, 주님은 다윗을 목자로 세우겠다고 하십니다(23-24절).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가 와서 주님의 양들을 다스릴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 왕이 오면 주님은 양들과 “평화의 언약”을 세우실 것입니다(25절). 그 때가 되면 모든 양들은 자신의 땅에서 복을 누리며 살 것입니다. 다시는 약탈을 당하지 않을 것이며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의 목자요, 그들은 주님의 양이기 때문입니다(26-31절).

    묵상:

    주님의 책망은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향합니다. 하나는 왕과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맡겨 주신 양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여겼습니다. 주님의 양들을 위해 잠시 고용된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백성들 중에 부하고 강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부하고 강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양들을 훼방하고 빼앗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징계하고 당신이 직접 양들을 돌보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다윗을 보내어 양들을 돌보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세상의 왕과 달리 하나님의 마음으로 백성을 사랑하고 섬길 메시아를 보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이 예언이 주어진 이후로 유대인들은 참 목자인 메시아의 도래를 기다렸습니다. 다윗과 같은 메시아가 와서 흩어진 이스라앨 백성을 불러 모으고 이스라엘의 영광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이 예언은 지상의 왕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왕에 대한 예언이었음이 나중에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이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요 10:11)고 하셨습니다. 지상의 왕들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백성을 이용하지만, 참되고 영원한 왕이신 주님은 백성을 위해 당신의 목숨을 버립니다. 우리는 그분을 향해 “주님”이라고 부르며 살고 있습니다.

  • 에스겔서 33장: 예언자의 사명

    해설:

    에스겔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1-24장은 유다에 대한 심판 예언이고, 25-32장은 주변 나라들에 대한 심판 예언입니다. 33장부터 48장까지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회복에 관한 예언입니다. 

    주님은 에스겔에게 파수꾼으로서의 예언자의 사명에 대해 말씀 하십니다(1-9절). 같은 말씀이 3장 16-21절에도 나옵니다. 예언자는 백성에게 심판에 대해 경고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소임을 다한다면 그의 경고를 듣고도 외면하여 망한 사람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예언자가 소임을 게을리 하여 백성이 망했다면 그 책임은 예언자에게 있습니다. 

    10절부터 20절은 18장 19-32절의 내용과 거의 같습니다. 과거에 악하게 살았다 해도 회개하고 의롭게 살면 구원 받을 것이며, 과거에 의롭게 살았다 해도 지금 악하게 살고 있다면 심판 받을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처사를 두고 공평치 못하다고 불평하지만, 의롭지 않는 것은 그들입니다. 주님의 판단과 심판은 공정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지 다섯 달이 지난 어느 날, 예루살렘에서 도망 온 사람이 에스겔에게 와서 그 소식을 전합니다(21절). 바로 전 날, 이미 주신 예언(24:20-21)의 약속대로 주님의 권능이 그에게 임하여 묶였던 혀가 풀려 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22절).

    주님께서는, 유다 땅에 남겨진 사람들이 자신들이 그 땅을 지킬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으나(23-24절), 그들은 그 땅을 차지할 자격이 없다고 하십니다. 율법이 금한 온갖 죄를 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5-26절). 그로 인해 살아남은 백성 마져도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27-29절).

    주님은 에스겔에게 백성이 그가 전하는 예언을 듣기만 할 뿐 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알리십니다. 하지만 그를 통해 전한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니 용기를 잃지 말라고 하십니다(30-33절).

    묵상:

    주님께서는 에스겔의 묶인 혀를 풀어 주시면서 앞으로 그가 예언할 때 마주하게 될 현실에 대해 경고하십니다. 그가 전하는 말에 대해 백성은 호기심을 보일 것이지만, 그들은 듣기만  할 뿐 그 말씀에 순종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입으로는 달갑게 여기면서도, 마음으로는 자기들의 욕심을 따르기 때문이다”(31절)라는 구절을 직역하면 “그들의 입에는 탐욕이 있고, 그들의 마음은 부정한 이익을 향하기 때문이다”라고 해야 합니다. 그들의 몸과 마음이 악에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아니,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언자를 “사랑의 노래나 부르는 가수쯤으로”(32절) 생각합니다.

    이 말씀이 오늘의 교회가 처한 상황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설교자가 자신들의 귀를 만족스럽게 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그들 자신의 행실을 돌아 보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설교자들은 사람들의 귀를 만족시켜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설교는 가수들이 부르는 사랑 노래 쯤으로 폄하되고 있습니다. 가수들 중에도 시대를 노래하고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늘의 설교에서는 시퍼런 칼날이 모두 제거되고 부드러운 솜사탕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설교자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바른 말씀을 전할 책임이 있고, 회중은 들려지는 말씀에 겸손히 고개 숙이고 자신의 삶을 돌아 볼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이 회복의 출발점이고 희망의 이유입니다. 

  • 에스겔서 32장: 스올에 내던져질 이집트

    해설:

    앞의 예언이 임한 지 1년 7개월 후(주전 585년)에 이집트에 대한 또 하나의 예언이 에스겔에게 임합니다(1절). 주님은, 이집트 왕 바로(호브라)가 스스로를 사자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나일 강에 사는 악어와 같다고 하십니다. 바로에게는 모욕적인 비유입니다. 주님은 그 악어를 잡아 육지로 끌어 올려 날짐승과 길짐승의 먹이가 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1-8절). 그 소식이 전해지면 뭇 민족은 두려워 떨 것입니다(9-10절). 그 예언은 주님께서 바빌로니아를 통해 이집트를 심판하실 때 이루어질 것입니다(11-16절).

    17절부터 32절은 앞의 예언보다 11개월 전에 임한 예언입니다. 주님은 에스겔에게 이집트를 애도하며 슬피 울라고 하십니다. 심판이 임하면 그들은 스올에 내려가 이미 그곳에 와 있던 앗시리아 사람들과 엘람 사람들과 메섹과 두발 사람들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에돔 왕과 그 백성 그리고 시돈 사람들도 그곳에 묻혀 있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심판을 받아 스올에 내려갈 때, 다른 민족들이 먼저 와 있는 것을 보고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살아 생전에 세상을 호령하던 바로도 결국 그의 군대와 함께 스올에 임할 것입니다.

    묵상:

    이 예언은 마치 단테의 <신곡> 지옥편의 한 장처럼 보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당하게 되어 있고, 그 후에는 스올 즉 죽은 자의 세계로 내려가게 됩니다. 이집트나 앗시리아 혹은 바빌로니아처럼 강한 나라의 민족도 그렇게 되고, 바로나 느부갓네살 혹은 알렉산더 같은 절대 권력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인데, 사람들은 그 사실을 너무나도 쉽게 잊습니다. 부나 권력이나 명성을 가진 사람은 더욱 그 사실을 쉽게 잊고 교만 해집니다. 그래서 로마의 현자는 정복 전쟁에서 승리한 군대가 개선 행진을 할 때, 맨 뒤에서 한 사람이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고 외치게 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제대로 살기 위해 꼭 기억할 사실은 모두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모두가 죽는다는 사실은 한편 두려운 일이지만 다른 한편 다행한 일입니다. 스올에 내려간 이집트 사람들이 그곳에 다른 강대국 민족들이 와 있는 것을 보고 위로를 얻은 이유(31절)는 죽음이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사실을 확인하였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불공평해 보이는 세상사와 인생사에 있어서 죽음은 공평하다는 사실은 큰 위로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위로가 있습니다. 우리의 주님께서는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부활 사건은 스올이 인간의 종착지가 아님을 증명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으로 인류를 창조하신 분이 인류를 스올에 쓸어 넣고 끝내지는 않으실 것이 분명합니다. 어떤 작가가 정성들여 만든 자신의 작품이 쓰레기통에 내버려지는 것을 참겠습니까? 전능의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리고 그분이 진정 사랑의 하나님이 맞는다면,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스올이 아니라 에덴이어야 합니다.   

  • 에스겔서 31장: 이집트의 교만

    해설:

    앞의 예언이 임한 지 2개월 정도 지나서 또 다른 예언이 에스겔에게 임합니다(1절). 이집트가 아직 심판 당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님은 과거형으로 말씀하십니다. 그 심판은 이미 일어난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한 때 불멸의 왕국으로 군림 했던 앗시리아에 이집트를 비유하십니다. 앗시리아는 레바논의 백향목과 같았습니다(2-3절). 이집트 역시 앗시리아 처럼 나일 강의 혜택을 입어 큰 나무로 성장했고 뭇 민족이 그 가지와 그 그늘 안에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동산 안에 있는 에덴의 나무들(즉 이스라엘과 유다)도 나일 강에서 뻗어난 나무를 부러워 했습니다(4-9절).

    하나님께서 그 나무를 영화롭게 하셨는데, 그 나무는 스스로의 능력으로 그렇게 된 것으로 여기고 교만 해졌습니다(10절). 그래서 주님은 그 나무를 심판하셨습니다. 나무는 베어지고 그 나무에 깃들었던 새들은 모두 도망쳤습니다(11-13절). 그렇게 심판하신 이유는 그 나무가 교만에 머물러 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14절). 그 나무가 심판을 받아 스올(죽음의 세계)로 내려갈 때 그 나무에 의지하고 있던 새와 짐승들이 같이 스올로 내려갈 것입니다(15-18절).

    묵상:

    두로 왕의 경우에도 교만이 문제였습니다(28장). 두로의 번영과 영광이 그로 하여금 스스로를 신으로 여기게 만들었습니다. 그가 누린 복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이집트 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이 외세의 침입에 대한 염려 없이 번영을 구가하고 영광을 누린 이유는 하나님께서 허락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와 그의 통치 아래에 있던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들의 능력의 결과로 여기고 스스로를 신으로 여기고 그 영광을 영구화 하려 했습니다. 오늘 남겨진 이집트 유적들은 인간의 자아가 최대치로 부풀려지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물입니다. 그 위용과 규모에 감탄하지만, 사실은 인간의 죄성을 보여주는 흉물입니다. 

    무력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우리도 때로 우리 자신의 능력 때문에 혹은 우리가 처한 상황 때문에 “이만하면 됐다! 이렇게만 가자!”고 생각하며 우쭐 해집니다. 우리의 본성이 이러하니, 두로와 이집트 같은 번영한 국가를 통치하는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교만에 빠지기가 더욱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로 왕과 이집트 왕의 교만을 두고 뭐라 할 자격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우리도 그런 자리에 앉으면 더 심한 교만에 빠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질적으로는 그들이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복을 누렸지만, 영적으로는 우리가 훨씬 안전한 자리에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 5:3)라고 하셨습니다. 가난한 것, 연약한 것, 무력한 것, 무능한 것이 세상적으로는 불행이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축복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축복은 하나님 안에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   

  • 에스겔서 30장: 심판은 정해져 있다

    해설:

    1절부터 19절까지는 이집트에 대한 심판의 예언입니다. 여러 민족이 멸망하는 날이 가까이 오고 있는데, 이집트도 그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이집트와 동맹을 맺는 나라들도 이집트와 함께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집트는 북쪽에 지중해가 펼쳐져 있고 동쪽으로는 광활한 사막이 자리잡고 있어서 외세의 침입을 받아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이 이집트와 그 동맹국들을 모두 멸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집트가 자랑하던 모든 도시와 문명은 폐허가 될 것입니다.

    20절부터 26절까지는 유다 백성이 포로 된 지 11년째 되는 해(주전 587년)에 주어진 예언입니다. 이 해에 예루살렘은 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 당합니다. “이집트 왕 바로의 한쪽 팔이 부러졌다”(21절)는 말은 이집트의 동맹국 유다가 멸망 당했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머지 한 팔도 부러뜨릴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예언처럼 그로부터 10년 후(주전 568년)에 이집트 왕 호브라는 느부갓네살에게 패합니다. 바로의 두 팔이 모두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묵상:

    바빌로니아는 지금의 이라크 땅에 자리 잡고 있던 제국이었습니다. 그곳에서부터 이집트까지 대군을 동원하여 침략하는 것은 무모해 보이는 일이었습니다. 그 사이에는 드넓은 사막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전차부대와 기병대 그리고 보병대를 이끌고 그 멀리까지 정벌을 나섰다면, 정작 전투가 시작되었을 때 군사들은 지쳐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게다가 이집트는 고대로부터 막대한 부와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주전 568년에 느부갓네살이 이집트를 점령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사람들은 공포와 전율을 느꼈을 것입니다. 초월적인 어떤 힘이 허락하지 않고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듣고 “그 때에야 비로소 그들은, 내가 주인 줄 알 것이다”(19절, 26절)라는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거대한 장기판 위에서 놓여져 있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하여 역사를 만들어 간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손이 판을 만들어 가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말을 옮기기도 하시고, 한 순간에 판을 쓸어 다시 시작하기도 하십니다. 실로 역사의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 에스겔서 29장: 이집트에 대한 심판

    해설:

    29장부터 32장까지는 이집트에 대한 예언입니다.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는 이집트의 도움을 받아 바빌로니아로부터 독립하려 했습니다. 그 의도를 알아차린 느부갓네살은 주전 587년에 유다를 완전히 멸망시켜 버립니다. 

    1절부터 16절까지는 유다 백성이 포로로 잡혀간 지 10년 되던 해(주전 587년)에 에스겔에게 주신 말씀입니다(1절). 그것은 이집트에 대한 심판의 말씀인데(2절), 주님은 이집트의 왕 바로를 나일 강에 사는 거대한 악어에 비유하십니다(3절). 그 악어는 나일 강을 자신의 소유라고 교만 떨지만, 주님께서는 그의 코를 꿰어 나일 강에서 끌어내어 사막에 던지겠다고 하십니다. 나일 강에 사는 모든 물고기도 같은 운명을 당할 것입니다(3-5절). 그런 일이 일어나면 이집트 사람들은 비로소 누가 주님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의지하려 하지만, 이집트는 의지한 사람까지 망하게 하는 갈대 지팡이와 같습니다(6-7절). 

    주님께서는 이집트를 심판하여 사십 년 동안 그 땅을 황무지로 만들어 버리고 이집트 사람들을 여러 민족 속에 흩어 살게 하겠다고 하십니다(8-12절). 사십 년이 지나면 흩어졌던 이집트 사람들을 상 이집트로 돌아가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과거의 영화를 회복하지 못할 것입니다(13-15절). 그 모습을 보고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의지하려 했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16절). 

    17절부터 21절까지는 유다 백성이 포로로 잡혀간 지 27년 되던 해(주전 571년)에 에스겔에게 임한 말씀입니다(17절). 느부갓네살이 두로를 치려 했으나 큰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두로 대신 이집트를 느부갓네살에게 넘겨 주겠다고 하십니다. 그것은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심판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하십니다(18-20절). 그 일이 일어나면 에스겔의 입이 열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외칠 수 있게 하겠다고 하십니다(21절).

    묵상:

    지금 대한민국은 반만 년의 역사 상 가장 화려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되었고, 문화적으로 온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경제 규모에 있어서 세계 Top 30 안에 든 나라는 지난 백 년 동안 변함이 없었다고 합니다. 순위는 바뀌었어도 30개국의 이름은 동일했습니다. 그런데 30위 바깥에 있던 나라 중 오직 한 나라가 30위 안에 진입 했고 10위까지 치고 올라갔습니다.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정말 ‘국뽕'(애국심을 의미하는 속어)이 차오르는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상들 앞에서 자랑스러움을 느낍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집트를 생각해 봅니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 였고 한 때 세상을 호령하던 나라가 지금은 약소국 중 하나로 쪼그라들어 있습니다. 지금 이집트 국민들은 과거의 영화를 생각하며 어떤 느낌을 가질지 궁금합니다. 아마도 우리와는 정반대의 감정을 가질 것입니다. 

    에스겔에게 주신 예언을 읽으며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며 전율을 느낍니다. 주님의 말씀 그대로 이집트는 바빌로니아에게 패망한 이후로 “나라들 가운데서 가장 힘없는 나라”(15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2천 5백 년 동안 이집트는 회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그 때에야 비로소 그들이, 내가 주 하나님인 줄 알 것이다”(16절)라는 말씀 앞에 엎드리게 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역사의 진정한 주인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