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지하 15장: 언약을 새롭게 하다

    해설:

    에티오피아와의 전면전이 끝난 후, 오뎃의 아들 아사랴 예언자가 아사와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1절). 먼저 그는 하나님을 찾기를 멈추지 말라고 권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도 그들을 떠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2절). 그러면서 북 왕국 이스라엘을 예로 듭니다. 여로보암의 정책으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을 떠났고 그로 인해 하나님도 그들을 버리셨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온갖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3-6절). 아사랴는 아사 왕과 유다 백성에게 이스라엘처럼 되지 말라고 권합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희생에는 반드시 상급이 따를 것이기 때문입니다(7절).

    이 말씀을 듣고 아사는 또 한 번 대대적인 종교 개혁을 단행합니다. 그는 이미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땅에서 산당을 제거한 적이 있습니다(14:3). 하지만 십여 년이 지나는 동안에 다시 산당이 지어졌습니다. 우상 숭배의 습성은 인간 본성에 깊이 배어 있어서 잠시만 놓아 두면 독버섯처럼 불어납니다. 그는 또한 이스라엘로부터 빼앗은 에브라임 산간 지방에서도 산당과 우상을 제거했고 성전의 제단을 보수합니다(8절). 

    그런 다음 그는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그리고 북쪽에서 망명한 다른 지파 사람들을 예루살렘으로 불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언약을 맺습니다(9-12절). 그들은 남녀노소를 가릴 것이 없이 하나님을 찾지 않는 자들을 죽이기로 결정하고(13절) 이 언약에 충성 하기로 맹세합니다(14절). 그 종교 개혁으로 인해 유다는 평안과 번영을 누립니다(15절). 아사 왕은 할머니가 섬기던 우상까지 제거하는 단호함을 보입니다(16절). 이렇듯 하나님을 향한 아사의 마음은 한결 같았고, 그의 통치 35년까지 다시는 전쟁이 없었습니다(17-18절).

    묵상:

    아사랴 예언자가 전한 메시지는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 줍니다. 옛 언약은 조건적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도 우리를 떠나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행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하십니다. 순종에는 축복으로 응하고, 불순종에는 징계로 응하겠다고 하십니다. 그것이 모세의 율법을 통해 주신 언약의 핵심입니다. 아사랴의 예언을 듣고 아사 왕은 언약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성실하게 지켰습니다. 그로 인해 그는 백성에게 태평 성대를 안겨 줍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유다는 결국 언약의 조건을 지키지 않았고 그로 인해 참담하게 심판을 받았습니다. 

    유다가 바빌로니아에게 패망한 후,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새 언약에 대해 예고 하십니다(렘 31:31-40). 모세를 통해 맺은 언약이 이스라엘의 불성실로 인해 파기 되었으므로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통해 조건 없이 사랑하겠다는 약속을 주십니다. 그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맺어졌습니다. 십자가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징표입니다. 우리가 그분께 등을 돌리고 우리의 타락한 욕망을 따라 살아간다 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무서워서 그분을 섬기지 않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모든 것을 다 내어 주시는 그분의 사랑에 항복하고 그분 앞으로 나아갑니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이유는 축복 받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미 주신 사랑 때문입니다. 그 사랑 안에 있으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상관 없습니다. 그 사랑으로 족하기 때문입니다. 

  • 역대지하 14장: 아사의 전반기 통치

    해설:

    아비야의 아들 아사가 왕위에 올라 41년 동안 통치 합니다. 그가 왕위에 오른 후 십 년 동안 유다는 별다른 문제 없이 평안을 누렸습니다(1절). 저자는 그 이유를 아사의 종교 개혁에서 찾습니다. 저자는 아사의 통치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립니다(2절). 그 이유는 유다 백성들 사이에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던 우상 숭배의 악을 제거했기 때문입니다(3-5절). 그 결과, 유다는 평화를 누릴 수 있었고, 그 사이에 유다 지방에 요새 성읍들을 만듭니다(6-7절). 그는 육십만 대군을 양성하여 국방을 튼튼히 합니다(8절).

    얼마 후 에티오피아(구스) 왕 세라가 백만 대군을 이끌고 유다를 치러 옵니다(9절). 스바다 골짜기에서 에티오피아 군대를 마주한 아사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병력에 있어서 유다는 에티오피아의 절반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침략 전쟁에서 이기려면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야 했기 때문입니다(10-11절). 아마도 그는 아버지 아비야의 ‘스마라임 대첩’을 통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을 배웠을 것입니다. 이번에도 하나님은 유다 군에게 대승을 안겨 줍니다. 에티오피아의 백만 대군이 전멸을 당한 것입니다(12-15절). 유다 백성은 이 전쟁을 ‘스바다 대첩’으로 기억했을 것입니다. 

    묵상:

    저자는 아사의 전반기 통치 기간을 “평화”로 요약합니다. 새번역에는 “조용하였다”고 번역해 놓았지만, 개역개정 성경에 따르면 “평안”이라는 단어가 다섯 번(2절, 5절, 6절 2회, 7절) 사용됩니다. 히브리어 개념에서 “평안” 혹은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온전한 상태를 말합니다. 한자에서의 “평화”는 모든 사람의 입(口)에 쌀(禾) 골고루(平)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히브리어의 ‘샬롬’과 한자의 ‘평화’는 같은 의미폭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삶의 모든 분야가 제 자리를 찾고 제 기능을 해야만 이런 결과가 오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삶의 상황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 관계가 왜곡되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왜곡이 일어납니다.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는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삶의 질서를 뒤집어 놓는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선택지 중에서 그들은 질서와 관계를 깨뜨리는 편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질서와 불화와 갈등은 인간 실존의 근본적인 조건이 되었습니다. 역대지 저자는 아사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전반기 형통과 번영의 원인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잡혀 있었기 때문이라는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합니다. 

  • 역대지하 13장: 하나님 편에 서는 것

    해설:

    르호보암이 죽고 그 아들 아비야가 왕위에 올라 3년 동안 통치합니다(1-2절). 그 사이에 북 이스라엘과 대대적인 전쟁이 일어나는데, 아비야는 사십만의 병사로 여로보암의 팔십만 대군을 맞섭니다(3절). 병력에 있어서 열세였던 아비야는 산 위에 올라가서 이스라엘 군을 향해 일장 연설을 합니다(4절). 일종의 심리전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언약을 맺으셔서 왕권을 주셨으니 정통성이 남왕국 유다에게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5절).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로보암은 반역자이며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을 추방하고 우상을 숭배하게 만들었다(6-9절). 반면, 유다 백성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오직 주님만을 섬기고 있다(10-11절). 따라서 그들이 병력에서 유다 보다 우세하지만 주 하나님께서 유다와 함께 계시므로 그들은 싸워 이길 수 없다(12절). 

    아비야가 이렇게 심리전을 벌이고 있는 사이에 여로보암은 복병을 보내어 유다 진영 후방을 에워싸게 합니다. 이로써 유다 진영은 이스라엘 군에게 포위되어 버립니다(13절). 심각한 상황에 빠졌음을 알게 된 유다 진영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붑니다(14절). 수적으로나 전략적으로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는 형편에 있던 유다 군사들은 이스라엘 군에 대해 대승을 거둡니다(15-18절). 그것이 이스라엘에게는 치명타가 되어 여로보암이 죽기까지 다시 회복하지 못합니다(19-20절). 반면, 이 승리로 인해 아비야의 통치권은 더 강해집니다. 하지만 그는 삼년 만에 죽음을 맞습니다(21-22절).

    묵상:

    저자는 아비야와 여로보암의 전쟁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독자에게 전합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아비야와 유다 군사들은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전력에 있어서도 유다는 이스라엘의 절반이었고, 전략적인 면에서도 유다는 앞뒤에서 공략을 당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하지만 결과에 있어서는 유다가 대승을 거둡니다. 아비야가 이스라엘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벌인 심리전은 실제로 유다 군사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는 결과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편에 서 있다는 확신이 용기를 백배로 올려 준 것입니다. 

    남북 전쟁 당시에 북군이 열세에 놓이자 링컨 대통령이 수심이 깊어졌습니다. 그 때 어느 목사가 그에게 “하나님께서 북군 편에 서 주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라고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그랬더니 링컨 대통령이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어느 편에 서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느냐 입니다”라고 답합니다. 모든 전쟁은 악입니다. 하지만 전쟁은 인류 역사에 항상 있어 왔습니다. 그래서 믿는 이들도 전쟁에 휘말리곤 합니다. 그럴 때 믿는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통해 전쟁의 지옥을 끝내고 평화를 이루어 주십니다.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생지옥의 현장 안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 편에 서기를 결단하는 사람들이 있기를! 그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 지옥을 속히 끝내시고 평화를 이루어 주시기를!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간혹 겪게 되는 작은 전쟁을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관계 속에서 갈등과 싸움에 휘말릴 때, 어떻게든 이길 욕심에 끌리지 말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에 순종하게 되기를! 그 뜻에 따라 때로 지는 편을 택하는 용기를 주시기를! 그래서 평화의 도구가 되어 살게 되기를! 

  • 역대지하 12장: 하나님의 길에서 멀어지다

    해설:

    북쪽 열한 지파를 포기한 다음, 르호보암은 자신에게 속한 영토를 견고하게 만들고 왕권을 안정 시킵니다. 권세가 커가는 과정에서 그의 마음은 점차로 하나님에게서 떠납니다. 하나님께 대한 임금의 불성실은 백성들의 믿음에까지 악영향을 미칩니다(1절). 

    그러는 중에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른 지 5년째 되는 해에 이집트 왕 시삭이 대군을 몰고 올라 와 유다의 견고한 성읍들을 점령하고 예루살렘까지 진군해 옵니다(2-4절). 시삭 왕의 기세에 눌려 르호보암과 대신들이 한 곳에 모여 숙의 하며 두려워 떨고 있을 때 예언자 스마야가 찾아 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징계하기 위해 시삭을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5절). 그 말을 듣고 왕과 대신들은 하나님의 징계가 마땅하다고 응답합니다(6절). 하나님은 그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낮추어 회개하는 것을 보시고 완전히 멸망 시키지는 않겠다고 하십니다(7-8절). 

    그 말씀 대로, 시삭은 예루살렘 성을 약탈하고 유다를 속국으로 만듭니다. 하지만 유다의 주권은 그대로 유지 되었습니다(9-12절). 르호보암은 17년 동안 유다를 통치 했는데, 그 기간 동안 이집트에 조공을 바쳐야 했고 여로보암과 자주 싸워야 했습니다. 그는 유다 역사에서 악한 왕으로 기억 되었지만, 죽어서 다윗 성에 안장되는 영예를 누렸고, 그의 아들 아비야가 왕위를 잇습니다(13-16절).

    묵상:    

    저자는 르호보암이 다윗과 솔로몬의 길을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고 악을 행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그의 불신앙과 불성실은 백성에게 영향을 미쳐서 국력이 쇠약해지는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그것이 이집트 왕 시삭에게 빌미를 주었고, 결국 거대한 국난을 만납니다. 예언자 스마야는 르호보암과 백성의 불신앙과 불성실을 징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시삭의 의도를 허락 하신 것이라고 질책합니다. 이 질책 앞에서 르호보암과 대신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합니다. 저자는 오늘 본문에서 네 번(6절, 7절 2회, 12절)이나 “잘못을 뉘우쳤다”(개역개정 “스스로 겸비하였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은 그들이 “가까스로 구원을 받게”(7절) 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죄에 오염되어 있어서 그냥 두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쪽으로 기울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에 비례하여 교만도 증가합니다. ‘하나님 없이도 괜찮다’는 생각이 교만의 출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겸비하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려는 마음을 붙잡고 하나님 없이도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머물러 있으면 우리의 마음은 저절로 낮아집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상황을 바로 인식하게 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는 것이 실은 자신을 높이는 일임을 알게 됩니다. 

  • 역대지하 11장: 남과 북으로 나뉘다

    해설:

    예루살렘으로 도피한 르호보암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모든 장정들을 동원하여 자신에게 반역한 북쪽 지파들을 치려 합니다(1절).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스마야를 통해 동족상잔의 전쟁을 하지 말도록 지시하십니다. 르호보암과 지도자들은 그 말에 순종 합니다(2-4절). 르호보암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만의 왕으로 통치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 영토를 지키기 위해 동서남북의 국경에 요새를 세우고 무기와 식량을 넉넉히 비축해 둡니다(5-12절). 

    얼마 지나지 않아 북쪽 지파들 사이에 살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모든 재산을 버리고 남 유다로 내려 옵니다. 여로보암이 남 왕국을 경계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지 못하게 했고 여러 산에 산당을 세워 숫염소와 송아지 우상을 섬기게 했기 때문입니다(13-15절).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남하할 때 그들을 따라 내려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성전에서 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원했던 사람들입니다(16절). 이들은 르호보암에게 충성하여 남 왕국 유다를 더 강성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르호보암은 신속하게 다윗과 솔로몬의 길에서 떠납니다(18절).

    이어서 저자는 르호보암의 가족 사항을 소개합니다. 그는 아내 열여덟 명과 첩 예순 명을 두었고 그 사이에서 수 많은 자녀들을 얻었습니다. 그는 아내들 중에 특별히 압살롬의 딸 마아가를 아꼈는데, 그에게서 얻은 아들 아비야를 후계자로 삼습니다. 고대 왕국에서는 왕위 승계 기간에 왕자의 난이 흔히 일어났기 때문에 르호보암은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왕자들을 각 성에 흩어져 보내어 편안하게 살도록 배려합니다(19-23절).

    묵상:

    북쪽 열 지파의 반란으로 왕위에 오른 여로보암은 자신의 왕권에 정통성이 없다는 사실로 인해 늘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왕좌에 오른 후 첫 번째 조치로 예루살렘 여행을 금지 합니다. 북쪽 지파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을 오가는 한, 자신은 ‘찬탈자’ 혹은 ‘비정통’의 오명을 벗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북쪽 지파들 사이에 흩어져 살고 있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억압 했고, 중요한 지역마다 산당을 세우고 우상을 섬기게 합니다. 그러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루살렘으로 망명합니다. 북쪽 지파 사람들 중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토지와 집과 재산을 버려 두고 남쪽으로 내려 옵니다.

    이 장면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 소수 종파 신도라는 이유로 박해 받던 청교도들이 종교적인 자유를 위해 조국과 가족을 떠나 미국 땅으로 이주 했던 역사를 생각나게 합니다. 또한 한국 전쟁 당시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로 인해 모든 것을 버려 두고 남쪽으로 이주 했던 역사를 생각나게 합니다. 그들에게는 물질적인 안정과 풍요보다 신앙적인 자유가 더 중요했습니다. 빈 손이 될지언정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편을 택한 것입니다. 그 결단과 선택으로 인해 그들은 많은 희생과 고초를 겪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희생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내셨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나의 믿음과 사랑이 이 땅의 모든 것을 포기할 만한 것인지, 하나님을 얻으면 다 얻는 것이고 하나님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라는 믿음이 내게 얼마나 살아 있는지, 자문해 봅니다. 

  • 역대지하 10장: 르호보암의 미숙함

    해설:

    솔로몬이 세상을 떠나고 그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온 지파의 왕으로 추대된 이후 70년이 넘도록 하나의 국가로 지내 왔음에도 남쪽의 두 지파와 북쪽의 열 지파 사이에는 여전히 거리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솔로몬이 벌인 지나친 영토 확장 사업과 거대한 토목 공사로 인해 북쪽 지파들의 반감이 누적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차에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르자 북쪽 지파들 사이에 분리의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르호보암은 세겜으로 가서 북쪽 지파의 지도자들을 만납니다(1절). 

    그 때 솔로몬의 충신이었던 여로보암이 솔로몬의 눈밖에 난 후에 이집트에서 망명 중이었는데(왕상 11장), 그가 솔로몬의 사망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하여 북쪽의 열 지파 지도자들에게 합세합니다(2-3절). 여로보암과 열 지파의 지도자들은 솔로몬의 대대적인 토목 공사로 인해 겪은 고충을 토로 하면서 그 짐을 줄여주면 그를 왕으로 모시겠다고 제안합니다(4절). 르호보암은 사흘 후에 답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돌려 보냅니다(5절). 

    그는 이 문제를 두고 솔로몬을 모셨던 원로들과 상의합니다. 그들은 북쪽 지파의 요구를 들어 주라고 답합니다(6-7절). 르호보암은 원로들의 대답에 만족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 함께 자란 젊은 신하들에게 묻습니다(8-9절). 이 당시에 르호보암은 41세였습니다. 그러니 “젊은 신하”라는 말은 나이가 젊다는 뜻이 아니라 미숙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북쪽 지파들과의 관계에서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합니다(10-11절). 그것이 르호보암이 듣고 싶었던 말입니다. 

    사흘 후에 르호보암은 북쪽 지파들의 지도자들을 불러 아버지 솔로몬보다 더 강력한 통치를 할 것이라고 으름짱을 놓습니다(12-14절). 그러자 그들은 르호보암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돌아섭니다. 그것은 예언자 아히야를 통해 주신 예언(왕상 11:26-39)이 성취되는 과정이었습니다(15-16절). 르호보암은 북쪽 지파들을 길들이기 위해 강제노독 감독관을 보냈고, 북쪽 지파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서 죽입니다. 르호보암은 감당 하지도 못할 강경책을 썼다가 북쪽 지파들을 돌아서게 만듭니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칠십여 년 만에 남북으로 나뉩니다(17-19절).

    묵상:

    솔로몬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백성을 잘 섬기기 위해 하나님께 지혜와 지식을 구했습니다. 반면, 르호보암은 자신에게 맡겨진 권력을 당연하게 여겼고 자기 욕망대로 함부로 사용하려 했습니다. 북쪽 지파들의 요구를 듣고 원로들에게 자문을 구했을 때 그들은 “임금님께서 이 백성의 종이 되셔서, 그들을 섬기려고 하시면, 또 그들이 요구한 것을 들어 주시겠다고 좋은 말로 대답해 주시면, 이 백성은 평생 임금님의 종이 될 것입니다”(왕상 12:7)라고 답합니다. 르호보암은 그 충고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40년 동안 궁궐에서 떠받침을 받고 자랐기에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절대 권력에 고개 숙이지 않는 북쪽 지파들에게 분노 했고, 힘으로 그들을 제압하려 했습니다. 그로 인해 70여년 동안 지켜 왔던 통일 왕국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열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타락한 본성이 이끄는 방향입니다. 우리는 섬기기를 원치 않습니다. 할 수 있는대로 많은 사람 위에 군림하여 부리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요구에 귀 기우리기 원치 않습니다. 당연한 요구인 경우에도 그것을 들어 주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대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요구대로 순종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우리의 병든 자아가 만족을 얻기 때문입니다. 미숙함이란 병든 자아의 요구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말하고, 성숙함이란 그 요구를 내려 놓고 자신을 낮추어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가장 위험한 일은 미숙한 사람들에게 큰 권력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은 나를 낮추는 일처럼 보이지만 실은 나를 높이는 일입니다. 원로들은 그것을 알았기에 르호보암에게 “먼저 종이 되어 주십시오, 그러면 당신이 진정으로 주인이 될 것입니다”라고 권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하셨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이라고 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막 10:41-45).

  • 역대지하 9장: 부귀 영화의 정점을 찍다

    해설:

    앞에서 솔로몬이 행한 전국적인 토목 공사에 대해 서술한 다음, 저자는 스바 여왕의 방문 이야기를 전합니다. 스바는 지금의 예멘 부근에 있던 고대 왕국을 말합니다. 그는 솔로몬에 대한 명성을 듣고 사신들을 데리고 여러 가지 조공물을 가지고 솔로몬을 찾습니다(1절). 그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솔로몬의 의견을 물었고, 솔로몬은 그의 질문에 명쾌하게 답합니다(2절). 스바 여왕은 그의 지혜에 놀랐고, 그의 통치 제도와 방식을 보고 감동합니다(3-4절). 스바 여왕은 자신이 소문으로 듣고 상상한 것보다 그의 지혜가 더 놀랍다고 말하면서 솔로몬과 그의 백성을 축복합니다(5-7절). 그는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시고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게 하시는 그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8절). 스바 여왕은 돌아가면서 전에 볼 수 없었던 풍성한 선물을 솔로몬에게 주었고, 솔로몬은 받은 것보다 더 많이 돌려 줍니다(9-12절). 

    이어서 저자는 솔로몬이 누렸던 부귀영화의 규모에 대해 서술합니다. 그가 다스리는 동안에 이스라엘에는 금이 너무나 많아서 금으로 방패를 만들어 장식할 정도였습니다(13-16절). 그는 상아와 금으로 왕의 보좌를 만들었습니다(17-19절). 그가 사용하는 모든 그릇은 금으로 만들어졌고, 은은 귀금속으로 치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해상 무역을 통해 이스라엘에는 없는 물품과 동물들을 수입했습니다(20-21절). 그는 물질적인 면에서나 지혜 면에서 세상 어느 왕보다 뛰어났고, 그래서 여러 나라 왕들이 그를 만나러 찾아왔습니다(22-24절). 그는 국방을 튼튼히 하여 영토를 확장하고 백성에게 평화와 번영을 안겨 주었습니다(25-28절). 그는 40년 동안 통치한 후에 죽어 다윗 성에 묻히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를 잇습니다(29-31절).

    묵상:

    솔로몬이 이루고 누린 부귀영화에 대한 기록을 읽는 동안 마음 속에 울리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전도서에서 그가 한 말입니다. 

    “나는 여러 가지 큰 일을 성취하였다. 궁전도 지어 보고 여러 곳에 포도원도 만들어 보았다. …… 드디어 나는 일찍이 예루살렘에 살던 어느 누구보다도 더 큰 세력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지혜가 늘 내 곁에서 나를 깨우쳐 주었다. 원하던 것을 나는 다 얻었다. 누리고 싶은 낙은 무엇이든 삼가지 않았다. 나는 하는 일마다 자랑스러웠다. 이것은 내가 수고하여 얻은 나의 몫인 셈이었다. 그러나 내 손으로 성취한 모든 일과 이루려고 애쓴 나의 수고를 돌이켜보니, 참으로 세상 모든 것이 헛되고,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고, 아무런 보람도 없는 것이었다”(전 2:4, 9-11). 

    솔로몬의 술회를 읽으면서 ‘그것은 누릴 것 다 누려 본 사람이 하는 사치스러운 고백일세!’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 하나 변변히 누려보지 못한 사람들은 ‘나중에 후회 하더라도 그렇게 누려 보았으면……’ 하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누린 것이 많을수록 그것을 잃을 때의 비참함은 커지고, 높이 올라갈수록 떨어지는 참담함은 더 고통스럽습니다. 전도서에서 솔로몬이 말하듯, 가장 복된 일은 창조주를 기억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분복에 자족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롭든 곤핍하든 그 마음이면 한 생애를 넉넉히 완주할 수 있습니다. 

  • 역대지하 8장: 태평성대를 이루다

    해설:

    솔로몬이 주님을 위한 성전과 자신을 위한 왕궁을 완성하는 데 20년이 걸립니다(1절). 그런 다음 솔로몬은 영토를 확장하고 곳곳에 양곡 창고와 요새를 건설합니다(2-6절). 그는 다윗이 확보한 영토를 더 넓혔고 이미 점령한 영토에 대한 방어를 견고하게 했습니다. 그로써 이스라엘 영토는 가나안을 넘어 아람 지역과 유프라테스 강에까지 확장 됩니다.

    고대 왕국에서 토목 공사를 할 경우에 하급 노동력을 노예들로부터 충당했는데, 솔로몬도 같은 방법을 사용합니다. 가나안을 점령할 때 그곳 원주민을 모두 진멸하지 않고 남겨 놓은 사람들이 있었고, 솔로몬 시대에 그 수가 많이 불어나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그들을 동원하여 이 모든 공사를 하게 했고(7-8절),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들을 감독하는 일을 맡겼습니다(9-10절).

    솔로몬은 이집트 왕의 딸과 정략 결혼을 하였는데, 언약궤를 모셨던 다윗 성에 이방인이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왕비를 위한 궁을 따로 지어 줍니다(11절). 그는 왕궁 현관에 제단을 쌓고 정기적으로 주님께 제사를 올립니다(12-13절). 또한 그는 다윗이 이미 정해 놓은 대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성전 제사가 매일 지속되도록 했습니다(14-16절). 그는 영토를 넓히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여러 항구를 확보하여 외국과의 무역을 발전시킵니다(17-18절).

    묵상:

    저자는 8장의 기록을 통해 주님께서 꿈에서 솔로몬에게 주신 축복의 약속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립니다. 무엇이든 구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그는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을 달라고 답합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대답에 흡족 하셔서 부귀와 영화까지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 약속대로 솔로몬은 마음에 품은 모든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백성은 외세의 침입을 염려하지 않고 모두가 자신이 가꾼 무화과 나무 열매를 수확하는 평화와 번영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이 받은 물질적인 축복은 나중에 영적인 시험의 원인이 됩니다. 물질적인 안정과 번영이 그들의 마음을 부패시킨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 가운데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패턴입니다. 미국 역사를 시작한 청교도들이 신실한 믿음과 근검절약 정신으로 미국을 발전 시켰지만, 그로 인해 얻은 안정과 번영으로 인해 마음이 부패 되었습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하게 되었지만 영적으로는 피폐 해졌습니다. 한 개인의 삶 속에서도 이 패턴은 반복됩니다. 가난하고 어려울 시기에 깨어 기도하며 성실하게 일하다가 안정과 풍요를 얻게 되면 그 마음이 부패하여 하나님을 잊고 욕망을 따라 삽니다. 

    이것이 죄성에 물든 인간 실존의 딜렘마입니다. 우리 모두는 물질적인 안정과 풍요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얻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라 욕망의 이끌림에 따라 삽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고난의 질곡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 역대지하 7장: 낙성제를 올리다

    해설: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번제물과 제물을 살라 버리고 성전에 주의 영광이 가득 찹니다. 그로 인해 제사장들은 성전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고 그 광경을 본 백성은 바닥에 엎드려 주님께 경배합니다(1-3절). 

    그들은 하나님의 응답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풍성한 제물을 바칩니다(4-7절). 그런 다음 일 주일 동안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을 초청하여 축제를 엽니다(8절). 성전 낙성 축제를 마친 후, 그들은 연이어 일 주일 동안 장막절을 지켰고 마지막 날에는 마감 성회를 엽니다(9절). 두 주간 동안의 축제를 즐긴 후, 백성은 주님께서 다윗과 솔로몬에게 축복을 내려 주신 것에 흡족해 하며 각자의 처소로 돌아갑니다(10절). 

    성전 건축을 위한 모든 일을 마무리 했을 때, 주님께서는 솔로몬의 꿈에 다시 나타나십니다(11절).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지어 재앙을 당했을 때 회개하고 성전에 와서 기도하게 되면 그 기도를 듣고 응답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12-16절). 주님께서는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주님의 율례와 규례를 지켜 신실하게 살라고 솔로몬에게 당부하십니다. 그러면 다윗에게 준 약속을 지키겠다고 하십니다(17-18절). 하지만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을 따라 살면 그들을 가나안 땅에서 뽑아내고 성전도 버리겠다고 하십니다(19-20절). 그렇게 되면 성전은 한낱 조롱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21-22절).

    묵상:

    저자가 이 글을 쓰고 있을 때는 솔로몬에게 주신 하나님의 경고가 이미 이루어진 후였습니다. 저자는 바빌로니아에 의해 성전이 멸망된 이후 칠십 여년 동안 폐허로 버려져 있던 성전을 생각하며 이 글을 쓰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또한 바빌로니아에서 포로로 살면서 혹은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후에 이방인들이 성전과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했던 말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어찌하여 주님께서 이 땅과 이 성전을 이렇게 되게 하셨을까?”(21절)라고 물으며,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들을 이집트 땅으로부터 이끌어 내신 주 자기 조상의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미혹되어, 그 신들에게 전하며, 그 신들을 섬겼으므로, 주님께서 이 온갖 재앙을 내리셨다”(22절)고 스스로 답을 했습니다. 그것이 저자에게 큰 아픔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아픔은 자신으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 당하는 일입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잘못을 하여 “네 부모가 누구냐? 어떻게 자식을 이렇게 가르쳤더냐?”라는 질책을 들을 때 가장 죄스러움을 느낍니다. 그 잘못으로 인해 내가 받을 벌보다 부모의 이름을 더럽힌 것이 더 고통스럽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죄와 허물로 인해 하나님께서 모욕 당하실 때 큰 아픔을 느낍니다. 죄로 인해 내가 받을 징벌보다 징벌 받는 나로 인해 하나님이 조롱 당할 것이 더 큰 걱정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과 거룩하심을 드러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 역대지하 6장: 성전 봉헌 기도

    해설:

    온 백성의 지도자들과 함께 제사를 드린 후, 솔로몬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는 주님께서 영원히 계실 곳으로 성전을 지어 바쳤다고 말씀 드립니다(1-2절). 그런 다음, 그는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얼굴을 돌리고 기도를 이어 갑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께서 아버지 다윗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회고 하면서 자신을 통해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3-11절). 

    솔로몬은 몸을 돌려 제단을 바라보고 무릎 꿇은 다음, 손을 들고 기도를 계속 이어 갑니다(12-13절). 그는 먼저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시는 분임을 언급 하면서 다윗을 통해 자신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그 약속은 주님께서 주신 율법을 지키기만 하면 왕위가 다윗의 후손들에게 영원히 이어지게 하겠다는 것입니다(14-17절). 그는 온 우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성전에 모신다는 것은 어불성설임을 인정합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이름을 두기로 약속하신 곳입니다. 따라서 자신과 백성이 성전을 바라보고 기도할 때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기를 청합니다(18-21절).

    이어서 솔로몬은 몇 가지 사례를 들어 기도를 이어 갑니다. 이웃에게 죄를 짓고 성전에서 거짓 맹세하는 경우(22-23절), 이스라엘이 죄를 지어 적에게 패배하여 성전을 바라보면서 회개하는 경우(24-25절), 이스라엘이 죄를 지어 자연 재해를 당했을 때 회개하며 기도하는 경우(26-27절), 여러 가지 재앙을 당하여 성전을 향해 회개하고 구원을 호소하는 경우(28-31절), 이방인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는 경우(32-33절), 전쟁터에서 성전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경우(34-35절) 그리고 죄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이 타국에 끌려가 그곳에서 성전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경우(36-39절),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그 기도를 들어 달라고 청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성전에서 혹은 성전을 바라보고 기도할 때마다 응답해 주시기를 다시 한 번 청하면서 기도를 마무리합니다(40-42절).

    묵상:

    다니엘은 바빌로니아 땅에 살면서 하루에 세 번 예루살렘 쪽으로 난 창문을 열어 놓고 기도 했습니다(단 6:10). 마음과 몸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마음이 몸을 지배하기도 하고 몸이 마음을 지배하기도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 방향으로 얼굴을 향하고 기도하는 것은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게 하려는 노력입니다. 무슬림들이 하루에 세 번 메카 방향으로 엎드려 기도하는 것도 그들의 마음이 그들의 신을 향하게 하려는 노력입니다. 솔로몬은 성전이 하나님을 보게 하는 가시적인 상징물임을 잊지 않습니다. 성전 건물 자체가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마음 다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불행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망각하고 성전 자체를 우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성전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잊지 않게 하려는 상징물이었는데, 그 상징을 우상으로 만든 것입니다. 불가의 비유를 사용 하자면,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보아야 하는데 손가락만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은 잊혀지고 성전 제사만 화려 해졌습니다. 성전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 진실한 회개가 선행 되어야 했는데, 회개하는 것은 망각하고 성전을 향해 기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기도는 주술이 되어 버리고 그들의 제사는 우상 숭배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이 버림 받았던 이유입니다.

    “The heart of the matter is the matter of the heart”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니 몸도 멀어지고 결국 하나님 없는 운명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